-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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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경영은 우리의 의식 안으로 영혼의 구루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 안에 두 개의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가슴이 바로 '신들이 황금과 보석을 숨겨 놓은 바로 그 곳' 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신화의 진원지라는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될 때, 인생 속으로 끊임없는 신탁들이 몰려들게 된다.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그리고 원시시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자신 안의 영혼의 구루가 하는 야생의 신탁에 귀를 귀우려야한다. 그것은 환상일까 ? 아니다. 그것은 무의식의 자기고백이다. 카를 융은 무수한 무의식층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자기의 소리'가 꿈의 상징을 통해 자아에게 말하려는 소리에 평생 귀를 기우리며 살았다. 그에게는 외적으로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그 사건이 불러 온 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중요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 문화 철학자인 에른스트 카시러 Ernst Cassirer는 '언어와 신화' 중에서 신화적 사고는 갑자기 마주친 직관에 넋을 잃고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당면한 경험 속에 느껴진 현재가 너무 강력해서 다른 모든 것들은 왜소해진다. 이런 태도의 마력에 걸린 사람에게는 마치 온 세계가 전멸한 것 같다. 당면한 내용만이 그것이 무엇이든 그 사람의 관심을 완전히 휘어잡아 그것 외에는 또는 그것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자아는 오직 이 대상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 안에 살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신화적 사고 속에서는 바로 이런 도취 때문에 생각하는 사람과 생각 자체가 구별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이 순간 서로 일체가 된다. 이런 긴밀한 유대를 바탕으로 경험의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신화가 묻혀있는 곳은 우리 마음 속 어디일까 ? 융은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이라는 책을 쓰기 위한 서곡으로 자신이 꾼 꿈 하나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신화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유추하게하는 멋진 꿈이었다.
그 꿈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낯선 2층집에 있었다. 그것은 '나의 집'이었다. 나는 2층에 있었는데, 로코코 양식의 고가구가 갖춰지고 벽에는 그림이 걸려있는 훌륭한 거실이었다. 그는 이곳이 정말 내 집일까 의아해했다. 문득 아래층은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그는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더 오래된 중세풍의 가구가 갖춰져 있었다. 마루바닥은 빨간 벽돌로 깔려있고 사방을 어두웠다. 그렇게 그는 집 전체를 둘러 보게 되었다. 이방 저방을 둘러보다가 한 방에서 육중한 문과 마주쳤다. 그 문을 열자 지하실로 통하는 돌계단이 나왔다. 그는 계단을 내려갔다. 그 방은 대단히 고풍스러웠다. 일반적인 석재로 덮어 치장을 했지만 그 석재의 틈 사이로 로마시대의 벽이 보였다. 바닥에는 석판이 깔려있었는데 그중 하나에 손잡이 고리가 달려있었다. 그가 고리를 잡고 잡아다니자 석판이 들어 올려졌다. 그러자 더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돌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바위를 뚫어 만든 동굴로 들어서게 되었다. 먼지가 잔뜩 쌓여있고 윈시문화의 유물들이 동물의 뼈와 함께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깨진 도자기들이 널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는 매우 오래된 반쯤 삭아 버린 두개골을 두 개를 발견하였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이 꿈을 스스로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2층 거실은 의식의 세상이다. 1층은 무의식의 표층이다. 깊이 내려 갈수록 점점 더 어둡고 이상해지고 깊어지고 기괴해진다. 사람이 오래 살지 않았던 중세풍의 1층, 로마시대의 지하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선사시대의 동굴, 이런 것들은 흘러간 시대와 지나버린 의식의 단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동굴 속에서 원시문화의 유적을 발견하는 것은 내부에 있는 원시의 세계, 의식이 다다를 수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는 세계가 존재함을 알게 된 것이다. 선사시대의 동굴은 동물들의 주거지였던 것처럼 인간의 원시적 마음은 동물의 혼 나아가 우주의 혼과 가까이 접하고 있다.
이 꿈은 융이 인간정신의 구조적인 도식을 그려가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이 꿈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비개인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이미지였다. 누구나 개인정신의 밑바닥에 선험적이고 집단적인 것을 품고 있다는 암시였다. 정신기능의 초기양식의 흔적인 것이다. 의식이 지배하는 낯 동안에는 감히 접근할 수 없었던 1층과 지하실 그리고 그 밑의 동굴을 오갈 수 있는 것은 바로 꿈이다.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오가는 통로가 바로 꿈길인 것이다. 꿈 속에서 우리는 의식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기괴하여 낯을 붉힐 수 밖에 없는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화란 무엇인가? 신화는 바로 인류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잇는 인류가 꾼 꿈이다. 바로 인류의 집단 무의식의 발산인 것이다. 신화는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결정적인 통로다.
우리는 왜 지금 오래되어 낡은 신화를 읽어야하는가?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한 즐거운 상상이었고, 인간이 무엇인지를 느끼기 위한 노력이었다. 성 바오로가 말했듯이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야기였다. 신화는 바로 이 이야기의 원형이 되는 뼈와 핏줄이다. 첨단의 21세기에,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낡은 신화를 지금 읽어야하는 이유는 하나만 들어 보라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렇게 말한다.
"나도 내 인생 전부를 걸고 사람을 사랑하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세상 하나를 만들어 가는 이야기 속의 영웅처럼 모험을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사랑과 고통과 슬픔과 승리와 환희를, 즉 나의 삶을, 한편의 서사시로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신화는 지난 몇년간 내게 북과 트럼펫이었다. 그것은 줄기차게 나의 여정을 떠나라는 선동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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