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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4일 10시 11분 등록

 

다산(茶山)이 나를 잡고 놓지 않는다. 남도에 가고 싶은 이유도 남도에 가면 강진이 나를 잡아끄는 이유도 그곳에 다산 선생의 삶이 배어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비극적 사상가다. 내가 그를 비극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그의 삶이 마흔 살부터 18년 동안 유배된 유형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고 인생의 2막을 살게 되었으니 개인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렇게 근면하고 재기발랄한 천재가 조선이라는 작은 영역에 갇혀 세계적인 사상가로서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는 존재의 한계가 주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비극은 불행하나 생산적이다. 다산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산이 만일 18년 동안 유배의 생활을 하지 않고 조정의 정치가로서 무난하고 분주한 삶을 살았더라면 방대한 그의 저작은 탄생되지 못했을 것이니 조선 최고의 학자로서의 다산은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자리에 누울 때 까지 그는 오직 제자들과 함께 동서고금의 자료를 만지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상가로 우뚝 섰다.

 

선생의 저작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목민심서다. 12편 48권으로 되어 있는 목민심서는 당시의 목민관 그러니까 지금의 군수나 도지사 그리고 그 밑에서 행정의 실무를 담당한 지방관리들의 수신서(修身書)의 모습을 갖춘 경세의 책인 동시에 조선사회 전체의 병리를 파헤친 분노의 개혁서다. 제 1 편 '부임육조', 즉 부임할 때의 마음가지부터 제 12편 '해관육조', 즉 퇴임할 때까지의 처신의 요령을 적어 둔 것이다. 한 마디로 지방행정, 경찰행정, 세무행정, 농상행정, 병무행정, 사법행정 일체의 영역을 망라한 교훈서면 구체적인 개혁처방서다. 다산이 얼마나 논리적이며 치밀하며 뛰어난 지성인지를 '청렴'이라는 공무원의 핵심 미덕을 다루어 가는 솜씨로 가늠해 보자.

 

우선 다산은 청렴이 무엇인지 밝힌다. "청렴은 관리의 본무이며, 모든 선의 근원이고, 여러 덕의 뿌리다. 청렴하지 못한 자로서 능한 관리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한 다음 다산은 조선의 시작부터 역대의 청백리 110명을 선정한다. 청렴의 권화라 할 수 있는 사람을 등장시킨다. 건국부터 다산에 이르기 까지 조선조 400년 동안 관리라 칭하는 자들의 수가 수십만인데 겨우 백여명만이 청백리라 부를만하니 수치스럽다고 개탄한다. 대개 보통 사람은 이 정도에서 어물어물 정리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다산은 절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청렴의 행동 규범을 정해 실천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청렴에는 3종류가 있다. 봉급 이외에는 절대로 먹지 않는 것이 상이다. 봉급이외라도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명분이 없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이 중이고, 명분이 없더라도 관례가 되어 있는 것은 먹고, 관례가 없는 것은 먹지 않는 것은 하급이지만 그래도 청렴한 축에 든다고 규정해 두었다. 이것이 다산이 허용한 200년 전의 청렴기준이다. 200년이 지난 오늘의 청렴기준은 어디쯤 와 있을까 ? 더 깨끗해졌을까 ? 스스로 물을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다산이 말하는 청렴 속에 보이는 공리적인 대목이다. 이 대목이다,

"청렴한 자는 천하에서 가장 영리한 장사꾼이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하다. 청렴하지 않은 자는 머리가 나쁜 자들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 두었다. 그 예 중의 하나에 노나라 승상 공의휴(公儀休)의 에피소드다. 그가 승상으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생선을 보내왔다. 공의휴는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 보낸 사람이 생선을 몹시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왜 받지 않느냐고 물었다. 공의휴는 이렇게 대답했다.

 

 

"생선을 좋아하니까 받지 않은 것이다. 나는 지금 승상의 자리에 있으니 내 힘으로 생선을 사먹을 수 있다. 만일 이 생선을 뇌물로 받아서 내가 이 자리에서 밀려나면 누가 내게 생선을 바치겠느냐? 그래서 받지 않은 것이다"

 

한마디로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공직자는 청렴을 교훈으로 삼지 않는 자가 없고 탐욕을 경계하지 않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더러운 자는 탐욕이 눈을 가려 제 구덩이를 파는 멍청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청렴한 공무원이라는 칭송을 들으면 커다란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끝나면 다산이 아니다. 이 정도 까지는 웬 만한 현인들도 다 충고할 만하다. 다산은 여기에 '너무도 인간적인' 통찰을 더해 쐐기를 박아 균형을 취하게 해 준다. 즉 청렴이 훌륭한 바탕이지만 청렴하기만 하고 치밀하지 못하고, 그 행동이 과격하고 정사가 각박하여 인정을 펴지 못하면 손실만 있고 알맹이가 없으니 절대로 칭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청렴하되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관대하게 민원을 보살피라는 뜻이다. 자신이 깨끗하다하여 인정사정 보지 않고 법대로만 처리하여 일이 돌아가게 하지 못하면 탐관오리와 마찬가지로 백성의 원성을 사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능한 다산은 부패와 청렴의 역학 관계에 대하여 이렇게 인용하여 말한다.

"상관이 탐욕스러워도 백성에게는 아직 살길이 남아있다. 그러나 상관이 청렴하기만 하고 각박하면 백성의 생로가 끊긴다. 고금의 청백리의 자손이 대체로 부진한 이유는 너무도 각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공무원이 훌륭한 공무원일까 ? 다산은 조언은 이렇다. 청렴해라. 청렴해야 오래간다. 소탐대실하지 마라. 명분을 지켜 깨끗하되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인정과 세정의 기미를 잘 파악하여 융통성있게 공무를 처리하여 백성의 일이 잘 돌아가 생업이 번성하도록 도와줘라. 이러면 최고의 공무원이다.

 

목민심서를 읽는 재미는 무궁하다. 200년 전, 한 왕조가 저물어 가는 시대의 책이니 고리타분하고 현대에 맞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고전의 힘은 오랜 세월을 견뎌온 그 근육과 신경체계에 있다. 아직도 그 심장이 뛰는 영혼의 책이기 때문에 고전은 늘 오늘의 책이다. 다만 다산에 대하여 아쉬운 점은 그의 사고가 왕조의 사고에 갇혀있었다는 점이다. 폐쇄적인 시대를 살아야 했던 다산에게 천주교를 통해 중국 거쳐 들어온 18세기 세계의 지적 폭풍은 너무도 매혹적인 것이었으나 탄압에 의해 그는 세계의 숨결을 충분히 호흡할 수 없었다. 결국 좁은 조선에 갇히고 말았다. 왕조를 개혁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세계적 사상가로 크지 못하고, 현재의 타락하고 부패한 왕조를 다시 살려보려는 기존 가치체계의 건강한 지지자로 남고 말았다. 프랑스 혁명시기의 계몽사상가인 루소보다 더 근면하고 훨씬 더 뛰어난 천재였던 다산이 세계적인 사상가로 솟지 못하고 조선에 갇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박람하고 정치한 지식과 치밀한 사고력이 서양에서처럼 코페르니쿠적인 통쾌한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구질구질한 조선의 체제에 머물고 말았던 현실을 슬퍼한다. 우리가 글로벌을 지향해야하는 이유를 그는 전 인생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산동암.jpg

 

남도는 내가 좋아하는 곳이다. 강진에 가까워 질 때 마다, 비록 그 곁을 스쳐 그냥 다른 곳으로 빠져날 때 차 다산이 머물던 초당의 향기는 늘 은은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다. 맑은 계절이고 수확의 계절이다.  200년 전 다산의 심서(心書)속 통찰과 실천요강이 오늘의 공무 현장에서 가을의 열매처럼 결실을 맺기를 나는 바란다.

(2012년 8월 30일, LH공사를 위한 원고)

IP *.128.22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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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0 13:45:21 *.212.217.154

긴 시간, 공직에서 벗어나 유배를 당하였기에 가능했던 정약용의 성취.

이런 역설이 주는 삶의 역동성 앞에, 감탄과 겸손한 마음이 함께 합니다.

공직은 아니지만, 언제 어디서나 조직을 책임지는 입장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원리가 아닐까 합니다.

200년 전의 세계적일'뻔' 했던 선조의 지혜를,

세계적으로 이루는 것이 

우리들의 몫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9.08.04 22:05:48 *.212.217.154

다산을 완성케 했던

강진에서의 생활,


그 상징적인 공간인

다산초당이 그리워집니다.


그리움으로 구글링을하다

관련된 최신 기사를 발견하여

공유합니다.

http://omn.kr/11t5k


언젠가

다산이 걷고 숨쉬던 그길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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