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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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 때마다 석양같은 후회가 묻어오곤 한다. 해가 지는구나.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첫 해가 밝을 때 세워두었던 몇 가지 계획들은 또 다음 해의 아젠다가 되고 마는구나. 한 두 개는 제법 커다란 결실을 맺을 수도 있었을텐데...중간에 더 힘을 실어둘 껄하는 아쉬움이 있게 마련이다. 실망할 것 없다. 인생은 무수한 반복을 통해 때가되면 제 갈 길을 가기 마련이다. 세월과 함께 나는 조금 더 낙관적이 되었다.
새해의 첫 날이 되어 한 해를 디자인할 때 나는 늘 3가지 핵심 개념을 마음에 둔다. 사람, 업(業), 그리고 성장에 대한 그리움이다. 첫해를 그리고 실천해 갈 때, 한 번 사용해 보면 좋겠다.
첫째는 사람이다. 사람을 얻는 것은 새로운 세계 하나를 얻는 것과 같다. 올해는 어떤 사람과 좀 더 깊은 관계를 맺어갈까? 먼저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에서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사람 두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 보라. 이 두 사람과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두자. 술이 있는 저녁 식사도 좋고, 스터디그룹도 좋고,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도 좋다. 무엇이 되었든 기존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창조적 교류를 위한 시간 배정을 해 두는 것이 좋다. 이어서 두 명의 새로운 사람을 만날 계획을 세워두자. 알고 있는 사람 리스트에 두 명의 새로운 이름을 더 하는 것이다. 회사 안에서 찾아도 좋고, 회사 밖에서 찾아도 좋다. 회사 밖에서는 동종업계 사람이어도 좋고, 동호인 중 하나여도 좋고, 감명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굴하여 관계를 맺는 것 도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친구와 네트워크 모두를 얻을 수 있다. 사람이 자산이다.
두 번 째는 업(業)이다. 나는 업을 일과 좀 다른 뉴앙스로 쓰고 있다. 일을 내게 주어진 것이지만 업은 내가 발굴한 것이다. 직장인으로 매일 내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한다면 그건 그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왕 내게 주어진 그 일을 최고의 수준까지 높여 그 일이 내 천직에 육박하도록 끌어 올리면 내 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업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일에 관한한 전문가들이다. 새해가 되면, 내가 맡은 일 중에서 스스로 프로젝트 하나를 기획해 보자. 주어진 업무 범위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관 프로젝트 하나를 구상하고 회사에 제안하여 내가 주도하는 프로젝트 하나를 만들어 한 해 동안 실행해 보자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재미있는 창조놀이로 구상하여 스스로 팀원을 선택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성사시켜보자. 설사 결과가 예상보다 저조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몇 년에 걸쳐 몇 개의 연관 프로젝트를 돌려가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분야를 잘 알게 되면 그 분야가 곧 자신의 세상이 된다. 그 분야에서 브랜드 파워를 쌓아가게 될 때, 언젠가 그 일을 아주 잘하는 대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셋째는 성장이다. 이것은 정신의 성장과 영혼의 확장을 의미한다. 종종 훌륭한 일꾼이지만 지나치게 세속적인 가치에 절어있고, 늘 일상을 떠나지 못하고 전전하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담대한 정신적 도약을 꿈꾸지 못한다면 또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할 수 없다. 정신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아젠다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 두 개만 소개해 보자. 가장 보편적이고 실속있는 것이 독서다. 매년 초에 자신을 위하여 열 권의 고전을 정해 매달 한 권씩 읽어가자. 고전은 '진실에 진실한 작가에 의해 쓰여진 책' 이다. 인류의 스승이 쓴 책을 고전이라 한다. 오래되어 낡은 책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동안 잊혀지지 않고 살아남은 최강의 경쟁력을 가진 책들이다. 될 만한 것에 투자를 하듯 검증된 고전에 시간을 투자해야 얻음이 풍족해 진다.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 여러 리스트를 놓고 그 중에서 마음을 끄는 책을 우선 골라라. 마음이 통해야 읽는 기쁨도 배가 된다. 처음에는 동양 고전으로 절반 이상을 채워두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책을 읽다 보면 몸에 밴 문화권의 책이 훨씬 이해가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서를 통해 지적 근육이 좀 늘면 조금 더 어려워 보이는 책으로 접근해야 중간에 읽기를 포기하지 않게 된다. 한 달에 한 권씩 읽고, 나머지 남는 두 달에는 열 권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골라 세 번 읽기를 시도하자. 그러면 그 책 한 권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접근이 가능하고, 결국 '내 인생의 책'이 될 것이다.
독서와 더불어 병행해야할 정신적 작업은 창작이다. 남의 것을 읽었으니 내 식으로 사유하여 표현할 길을 함께 찾아 주어야 한다. 창작의 방식은 자신에게 잘 맞는 표현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취미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조각을 배우기 시작해도 좋다. 작곡을 해 볼 수도 있고, 연극에 입문할 수도 있다. 글을 쓰기 시작해도 좋고, 여행을 다니거나 명상을 시작해도 좋다. 세상에 자신을 쏟아낼 수 있는 표현법을 찾아 조금씩 익혀가는 것이다. 정신적인 작업은 매일 해야 한다. 독서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명상도 그렇다. 매일 해야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어야 하루가 개편되고, 하루가 바뀌어야 인생이라는 거대의 운명의 배가 비전을 향해 기수를 틀게 된다.
운명을 벽은 높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운명이 있다. 일단 주어지면, 그것이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니더라도 감사히 받아야 한다. 운명의 벽은 너무도 높아 누구도 그 벽을 넘어설 수는 없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무한대로 많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수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첫해가 다가온다. 그 많던 새해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내 삶을 바꿀 첫 해가 다가온다. 사람을 얻고, 업을 얻고, 새로운 차원의 삶의 경지로 도약하는 원년이 되게 하자.
(12월 브레인답을 위한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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