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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즐기는 법, 2004년 1월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나는 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었었다. 선비의 섬세함을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면 일상의 작은 일을 감지하고 그것에 감탄하는 것이다.
삶을 즐기는 요결은 오히려 매우 간단한 데 있다. 하루를 짜만드는 작은 일들을 즐길 수 있으면 일상이 행복하다 할 수 있다. 작은 일들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결국 인생의 긴 강이 흐른다.
무엇이 선비의 섬세함일까 ?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의 기분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햇빛이 환한 바람 살랑이는 따뜻한 날, 깨끗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온 여자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그 오묘한 뜻을 깨닫게 되어 기뻐하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비소리를 듣다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되돌아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첫사랑 그녀의 환하게 웃던 그 웃음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던 그때 오후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눈이 오는 날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만년필의 잉크를 다시 넣고 아끼는 노트를 펴서 정성스럽게 옮겨 적을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게 어울리는 모습이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일상에서 조금씩 실천해 온 일들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바라왔던 것들이 아주 작은 일들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놓치기도 했지만 또한 이루기도 하며 살았다.
오늘 아침에는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연달아 두 명이나 전화를 주었다. 한 사람은 신문을 읽다 우연히 내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하고, 사업에 바쁜 또 한 친구는 그리운 얼굴이라 전화했다 한다. 그들의 전화가 다시 내게도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동안의 적조함과 무관심을 반성하게 한다. 혹은 메일을 보내고 혹은 전화를 하고, 혹은 며칠 후의 약속으로 가만히 마음 속에 일정을 잡아 두기도 한다.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며 혹은 비판하고 혹은 동조하며 홀로 즐기다가, 혼자 있음에 시들해지면 보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으면 그것이 또한 즐거움이다.
행복이 너무 멀리 있으면 매일 친하게 지내기 어렵고, 너무 거창한 것을 바라면 일생에 기뻐할 일이 몇 번 없게 된다.
가끔은 분주함을 밀어두고 아무 이해 관계도 없이 그저 일상의 어디서건 만나게 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즐기는 것이 하루를 잘 사는 것이고 결국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사람 사이의 감동은 미소 하나에도 있고 어려울 때 어깨를 안아 준 따뜻함 속에 있다.
오래 만에 받은 이메일 속에 ‘오늘 갑자기 네가 보고 싶구나’라는 문귀에서 행복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턴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감탄이다 ” 얄미울 만큼 통렬한 말이다.
산다는 것은 진지한 것인데 특별한 요령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면 춤추듯 걸을 수 있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그 주인을 닮듯, 사람의 인생도 그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돌아보니 내 인생 역시 나를 닮았고, 나에 맞게 하루를 보내야 그 하루가 내 것이 되어 품에 안겼다. 이 보다 더 좋은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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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나는 이 표현을 학교 다닐 때 소설가 최인훈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는 데, 지금까지 늘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었었다. 선비의 섬세함을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면 일상의 작은 일을 감지하고 그것에 감탄하는 것이다.
삶을 즐기는 요결은 오히려 매우 간단한 데 있다. 하루를 짜만드는 작은 일들을 즐길 수 있으면 일상이 행복하다 할 수 있다. 작은 일들이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결국 인생의 긴 강이 흐른다.
무엇이 선비의 섬세함일까 ? 다른 사람의 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집에서 키우는 작은 화분의 기분을 읽어 낼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햇빛이 환한 바람 살랑이는 따뜻한 날, 깨끗한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온 여자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다 그 오묘한 뜻을 깨닫게 되어 기뻐하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비소리를 듣다 어린 시절의 소년으로 되돌아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첫사랑 그녀의 환하게 웃던 그 웃음을 30년이 지난 지금도 빛나던 그때 오후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눈이 오는 날 편지를 쓸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만년필의 잉크를 다시 넣고 아끼는 노트를 펴서 정성스럽게 옮겨 적을 수 있다면 섬세하다 할 수 있다.
이것이 내게 어울리는 모습이라 생각하며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일상에서 조금씩 실천해 온 일들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바라왔던 것들이 아주 작은 일들이었기 때문에 때로는 놓치기도 했지만 또한 이루기도 하며 살았다.
오늘 아침에는 오래 만나지 못한 친구들이 연달아 두 명이나 전화를 주었다. 한 사람은 신문을 읽다 우연히 내 글을 보고 전화를 했다하고, 사업에 바쁜 또 한 친구는 그리운 얼굴이라 전화했다 한다. 그들의 전화가 다시 내게도 그리운 얼굴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 동안의 적조함과 무관심을 반성하게 한다. 혹은 메일을 보내고 혹은 전화를 하고, 혹은 며칠 후의 약속으로 가만히 마음 속에 일정을 잡아 두기도 한다.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보며 혹은 비판하고 혹은 동조하며 홀로 즐기다가, 혼자 있음에 시들해지면 보고 싶은 사람들과 약속을 정하고 좋은 장소를 물색하여 함께 술을 마실 수 있으면 그것이 또한 즐거움이다.
행복이 너무 멀리 있으면 매일 친하게 지내기 어렵고, 너무 거창한 것을 바라면 일생에 기뻐할 일이 몇 번 없게 된다.
가끔은 분주함을 밀어두고 아무 이해 관계도 없이 그저 일상의 어디서건 만나게 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을 즐기는 것이 하루를 잘 사는 것이고 결국 인생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다. 사람 사이의 감동은 미소 하나에도 있고 어려울 때 어깨를 안아 준 따뜻함 속에 있다.
오래 만에 받은 이메일 속에 ‘오늘 갑자기 네가 보고 싶구나’라는 문귀에서 행복을 찾기도 한다. 그래서 영국의 작가 G.K. 체스터턴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부족한 것은 기적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감탄이다 ” 얄미울 만큼 통렬한 말이다.
산다는 것은 진지한 것인데 특별한 요령이 있을 수 없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면 춤추듯 걸을 수 있다. 집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두 그 주인을 닮듯, 사람의 인생도 그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돌아보니 내 인생 역시 나를 닮았고, 나에 맞게 하루를 보내야 그 하루가 내 것이 되어 품에 안겼다. 이 보다 더 좋은 행복이 어디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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