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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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고 싶구나 2008년 3월, 현대해상
얼마 전 나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다녀왔다. 그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 그곳에서 제주도를 보길 바랐다. 봄볕은 따뜻하고 날은 맑았으나 수평선 위에서 아름다운 제주도의 실루엣을 찾을 수는 없었다. 봄의 아지랑이가 시야를 좁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좋은 봄날 바다를 실컷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내게 늘 알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모든 것을 담고도 푸를 수 있다는 자기 절제가 좋았고, 그러다가 못 참겠으면 가끔 비바람 속에 거침없이 포효하고 흥분하는 그 자유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두 딸 들의 이름에 모두 바다를 담아 두었다. 성을 빼고 겨우 두 자 남은 선택 중에서 망설이지 않고 바다 ‘해’ 자를 가운데에 덥썩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왜 차거운 푸른 색 출렁임이 그렇게 그리운지 나는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추측컨대 내가 마음 속에 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어느 날 우연히 나를 본 스님 하나가 내 속에 불 화(火)가 3개나 들었다 했다. 아마 그래서 나는 변화 경영 전문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싸질음으로 써 새로워지는 불의 특성이 내 기질의 근저를 이루기 때문에 늘 변화와 개혁과 혁명에 도취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변화의 피곤함 속에서 그 반대에 서 있는 물의 고요함이 그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무 빨리 간다 싶으면 삶의 여유가 그리워지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먹고 사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다 보면 문득 오래 잊고 있었던 꿈과 이상이 그리워진다.
삶은 늘 불안정한 것이다. 어쩌다 이쪽으로 경도되어 균형을 잃고 살다 보면 다시 그 반대의 것이 그립고 그리하여 그쪽으로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잡으려는 이 불안정한 움직임이 바로 삶이 아닌가 한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그래서 ‘매순간 형평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해 가려는 불안정한 체계, 이것이 바로 삶’이라고 명명했다.
변화 경영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물처럼 흘러 바다를 향하는 작은 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 그러나 하류로 흐르면서 더 많은 물을 품고 더 낮아지고 유장해져 바다에서 다른 강물들과 만나는 삶, 나는 그것이 변화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 명함에는 ‘변화 경영 전문가 ’ 구본형‘ 이라고 적혀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나와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내 직업의 이름이다.
그러나 쉰 살의 중반을 맞아 나는 ’변화경영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 전문인에서부터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과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나이가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평화를 지향하는 노년은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왜 시인이 되고 싶은 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시적인 삶,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사람들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계절이 바뀌었다. 자연의 절제와 죽음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은 맨발을 한 여신처럼 산들거리면 온다. 얼었던 땅이 녹아 푸근히 들뜨고, 몸을 움추려 겨울을 난 잡풀이 어느새 조금씩 녹색 빛을 띈다. 죽음 속에서 삶이 나고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 봄이다. 내 안에서도 그대의 마음속에서도 다시 살아야겠다는 초록빛 목소리가 낭랑하다.
다시 살자. 내게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이유도 이 날이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매일 세 끼의 밥을 먹는 이유도 밥을 먹을 때 마다 ‘내가 다른 것들을 죽여 그것들을 먹고 내 삶이 살아지는 것이구나’라는 각성을 주기 위해서다. 죽음을 먹고 삶이 자라는 것이니 어찌 치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날마다 새로운 인생, 이 봄에 물오른 나무처럼 다시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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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를 다녀왔다. 그 섬의 남쪽 끝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 그곳에서 제주도를 보길 바랐다. 봄볕은 따뜻하고 날은 맑았으나 수평선 위에서 아름다운 제주도의 실루엣을 찾을 수는 없었다. 봄의 아지랑이가 시야를 좁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좋은 봄날 바다를 실컷 본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바다는 내게 늘 알 수 없는 흥분을 주었다. 모든 것을 담고도 푸를 수 있다는 자기 절제가 좋았고, 그러다가 못 참겠으면 가끔 비바람 속에 거침없이 포효하고 흥분하는 그 자유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두 딸 들의 이름에 모두 바다를 담아 두었다. 성을 빼고 겨우 두 자 남은 선택 중에서 망설이지 않고 바다 ‘해’ 자를 가운데에 덥썩 넣어 두었다. 그리고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왜 차거운 푸른 색 출렁임이 그렇게 그리운지 나는 아직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추측컨대 내가 마음 속에 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한다. 어느 날 우연히 나를 본 스님 하나가 내 속에 불 화(火)가 3개나 들었다 했다. 아마 그래서 나는 변화 경영 전문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싸질음으로 써 새로워지는 불의 특성이 내 기질의 근저를 이루기 때문에 늘 변화와 개혁과 혁명에 도취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변화의 피곤함 속에서 그 반대에 서 있는 물의 고요함이 그리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너무 빨리 간다 싶으면 삶의 여유가 그리워지고, 너무 현실적이어서 먹고 사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다 보면 문득 오래 잊고 있었던 꿈과 이상이 그리워진다.
삶은 늘 불안정한 것이다. 어쩌다 이쪽으로 경도되어 균형을 잃고 살다 보면 다시 그 반대의 것이 그립고 그리하여 그쪽으로 몸을 움직여 균형을 잡으려는 이 불안정한 움직임이 바로 삶이 아닌가 한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그래서 ‘매순간 형평을 잃고 다시 정상을 회복해 가려는 불안정한 체계, 이것이 바로 삶’이라고 명명했다.
변화 경영을 시작하면서 나 역시 물처럼 흘러 바다를 향하는 작은 강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 번도 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는 것, 그러나 하류로 흐르면서 더 많은 물을 품고 더 낮아지고 유장해져 바다에서 다른 강물들과 만나는 삶, 나는 그것이 변화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내 명함에는 ‘변화 경영 전문가 ’ 구본형‘ 이라고 적혀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나와 내 스스로의 정체성이 필요할 때 나를 지탱하게 해준 스스로 명명한 내 직업의 이름이다.
그러나 쉰 살의 중반을 맞아 나는 ’변화경영사상가‘ 라는 이름으로 나를 부르고 싶다. 말 그대로 어떤 기술적 전문인에서부터 변화에 대한 철학과 생각을 일상과 녹여내는 사상가로 진화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가능할 지 모르지만 나는 ’변화경영의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다. 나이가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는 젊음의 그 반짝임과 도약이 필요한 것이므로 평화를 지향하는 노년은 아마도 그 빛나는 활공과 창조성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시처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시처럼 아름답게 살 수는 있지 않겠는가. 자연과 더 많이 어울리고, 젊은이들과 더 많이 웃고 떠들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할 것이다. 내가 왜 시인이 되고 싶은 지는 잘 모른다. 그저 시적인 삶,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사람들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리라.
계절이 바뀌었다. 자연의 절제와 죽음이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은 맨발을 한 여신처럼 산들거리면 온다. 얼었던 땅이 녹아 푸근히 들뜨고, 몸을 움추려 겨울을 난 잡풀이 어느새 조금씩 녹색 빛을 띈다. 죽음 속에서 삶이 나고 새롭게 다시 시작된다. 봄이다. 내 안에서도 그대의 마음속에서도 다시 살아야겠다는 초록빛 목소리가 낭랑하다.
다시 살자. 내게 시간이 아직 남아있는 유일한 이유는 인생은 다시 시작하기 위함이다. 아침마다 세수를 하는 이유도 이 날이 어제와 다르기 때문이다. 매일 세 끼의 밥을 먹는 이유도 밥을 먹을 때 마다 ‘내가 다른 것들을 죽여 그것들을 먹고 내 삶이 살아지는 것이구나’라는 각성을 주기 위해서다. 죽음을 먹고 삶이 자라는 것이니 어찌 치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날마다 새로운 인생, 이 봄에 물오른 나무처럼 다시 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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