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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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대중들의 이야기가 될 때 문학이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저자 일연스님은 자신의 책을 '역사(史)'라 부르지 않고, '사건(事)'이라 불렀다. 이 수 많은 사건들 중에서 나는 욱면이라는 부잣집 계집종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욱면은 귀진이라는 관리의 집 여종인데,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매일 지성으로 염불을 외었다. 주인이 보니 종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 여겨 매번 곡식 두 섬을 주고 저녁까지 다 찧으라고 했다. 욱면은 초저녁까지 열심히 다 찧어 놓은 후, 밤이 제법 깊은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염불을 외웠다.
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가락을 뚫어 노끈으로 말뚝에 매어 졸음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욱면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불하라'는 하늘의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놀라 그녀를 법당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욱면이 불당의 대들보를 뚫고 솟구쳐 올라 날아가더니 부처의 몸으로 변했다.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미천한 한 여종의 황당한 성불기(成佛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그러자 이 황당한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욱면의 정성을 갖지 않으면 삶은 도약하지 않는다.
계집종 욱면이 종이 되어 매일 주인이 시키는 잡일이나 하고, 쌀 두 섬을 빻아야하는 고된 일과에 묻혀버렸다면 그녀의 일생은 불만과 탄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대한 전환이 다가왔다. 문득 불도를 닦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밤에 미타사 절 마당에서 염불을 외울 때와 마찬가지로 낮에 일을 할 때도 저녁에 나락을 빻을 때도 그녀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구도의 마음으로 일과 삶에 접근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계율이 있다. 모든 일을 할 때, 기도 할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뜰의 낙엽 쓸 때도 빵을 만들 때도 눈 내리는 겨울 내내 먹을 쏘시지를 만들 때나 포도주를 만들 때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곧 수도의 대상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만일 직장인을 위한 단 한가지의 계율을 만든다면 '일을 일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하면 제일 좋다. 놀 때 우리는 몰입한다. 만일 그럴 수 없으면 전략적 태스크로 설정한 직무들에 대하서만은 하루 일과의 절반 쯤 되는 4-5 시간은 집중 투자하여 구도자의 자세로 일하는 것이다.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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