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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1일 10시 55분 등록

 

역사가 대중들의 이야기가 될 때 문학이 된다.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이야기 책이다. 그래서 저자 일연스님은 자신의 책을 '역사(史)'라 부르지 않고, '사건(事)'이라 불렀다. 이 수 많은 사건들 중에서 나는 욱면이라는 부잣집 계집종에 대한 이야기를 특히 좋아한다. 욱면은 귀진이라는 관리의 집 여종인데, 주인을 따라 절에 가서 매일 지성으로 염불을 외었다. 주인이 보니 종의 주제에 걸맞지 않는 행동이라 여겨 매번 곡식 두 섬을 주고 저녁까지 다 찧으라고 했다. 욱면은 초저녁까지 열심히 다 찧어 놓은 후, 밤이 제법 깊은 후에 지친 몸을 이끌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절에 가서 염불을 외웠다.

 

 뜰에 긴 말뚝을 세우고 두 손가락을 뚫어 노끈으로 말뚝에 매어 졸음에 몸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정성을 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욱면은 법당 안으로 들어가 예불하라'는 하늘의 외침이 들렸다. 승려들이 놀라 그녀를 법당 안으로 들어서게 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욱면이 불당의 대들보를 뚫고 솟구쳐 올라 날아가더니 부처의 몸으로 변했다.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미천한 한 여종의 황당한 성불기(成佛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그러자 이 황당한 이야기는 곧 나의 이야기로 바뀌었다.   욱면의 정성을 갖지 않으면 삶은 도약하지 않는다.

 

계집종 욱면이 종이 되어 매일 주인이 시키는 잡일이나 하고, 쌀 두 섬을 빻아야하는 고된 일과에 묻혀버렸다면 그녀의 일생은 불만과 탄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대한 전환이 다가왔다.  문득 불도를 닦기로 맘을 먹은 것이다. 밤에 미타사 절 마당에서 염불을 외울 때와 마찬가지로 낮에 일을 할 때도 저녁에 나락을 빻을 때도 그녀는 수도자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마음을 먹으면 누구나 구도의 마음으로 일과 삶에 접근할 수 있다.

 

중세 수도원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명한 계율이 있다. 모든 일을 할 때, 기도 할 때와 같이 정성을 다하라는 것이다. 뜰의 낙엽 쓸 때도 빵을 만들 때도 눈 내리는 겨울 내내 먹을 쏘시지를 만들 때나 포도주를 만들 때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것이 곧 수도의 대상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만일 직장인을 위한 단 한가지의 계율을 만든다면 '일을 일처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하면 제일 좋다. 놀 때 우리는 몰입한다.  만일 그럴 수 없으면 전략적 태스크로 설정한 직무들에 대하서만은 하루 일과의 절반 쯤 되는 4-5 시간은 집중 투자하여 구도자의 자세로 일하는 것이다.

 

삼국유사.jpg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한국 거래소를 위한 원고에서 욱면 부분만 발췌하여 수록함)

IP *.128.229.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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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3 18:32:43 *.192.208.83

 " 너는 한 번이라도 욱면처럼 하루를 지성으로 살아 보았느냐?"

참으로 부끄럽게 만드는 질책입니다. 욱면처럼 살아 본 나날이 있었고 그런 나날들이 가져다 준 찰나의 풍요에 취해 어느덧 병들고 나약해진 자신을 보았기에 더더욱 부끄럽습니다. 어쩌면 진정 욱면처럼 살아 본 날은 없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히 읽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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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22:04:48 *.68.172.4

처리해야 할 차트를 쌓아놓고 있는 저를 부끄럽게 만드는 글입니다. 하핫.;;; 얼른 일을 열심히 끝내놓고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책 읽고 차트 쓸게 아니고...=_=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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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9 14:32:41 *.6.57.60

불쑥 사부님의 삼국유사 칼럼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 왔습니다. 욱면. 욱면. 생경한 이름을 입에 붙여 보려고 되뇌여 봅니다. 퇴근하면 삼국유사 욱면 부분을 다시 찾아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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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17:58:16 *.212.217.154

나에게 주어진 것에

진심을 다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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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10:31:07 *.32.9.56

세상 누구나

이야기 속 욱면같이

정성을 다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겠지요.


스티브잡스의 말 처럼

오늘 하루,

정말 내가 하고싶었던 일을 한 것인지

말 할 수 있는 하루가 되도록

힘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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