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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3일 19시 50분 등록

  캐롤라인 오르테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한 데이터 웨어하우징 업체에 취직했다. 그 분야에서 가장 큰 회사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성장해 온 회사이기 때문에 좋은 이미지로 잘 알려진 회사였다. 두 번째 직장이었고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한창 의욕에 불타올랐다. 그러나 그곳은 그녀가 기대하던 그런 멋진 회사가 아니었다. 어느 것도 그녀의 의욕의 수준을 채워 주지 못했다. 최근 격감하는 매출과 경쟁업체의 강력한 대두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컨설팅업체에 회사 전체의 비전과 미래 성장 전략을 의뢰해 놓았다는데 전담반에서 무엇을 하는 지 조차 직원들에게는 알려 지지 않았다.

  평사원인 그녀의 눈에 비친 회사의 수준은 적당주의와 무사안일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회의는 자주 소집되었지만 참석자들은 핵심사안에 대해서 충분히 사전 준비가 되어 참석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다음 회의 일정만 정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다음 회의 때에는 참석해야할 사람들도 제때에 제대로 모이지 않았다. 시장이나 신기술, 경쟁업체에 대한 사항 보다는 내부 문제가 늘 중요한 장애였다. 누구하나 나서서 주요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회피하거나 다른 부서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려는 것이 어디서나 관찰되었다. 당면 문제는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보기 보다는 기껏해야 마취제를 맞거나 임시방편적인 대안으로 구멍을 막는 듯했다. 그 구멍에서는 늘 물이 흘렀고 언제 다시 터질 지 몰라 불안해 보였다. 많은 경고 신호들이 깜박거렸다.

  평사원 캐롤라인이 이 회사의 변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먼저 도전했다. 그리고 무엇인가 하기로 작심을 했다. 이 결심이 그녀를 움직였다. 먼저 동료 직원들을 통해 그들이 이사회에 대하여 알고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 그리고 가장 개방적이고 비권위적이며 포용력이 있고 최고 경영자와 사심없이 회사의 주요사안을 말할 수 있는 중역이 누구인지 찾아냈다. 한 사람이 있었다. 인적자원과 법률및 시설 관리를 총괄하는 최고관리책임자 (CAO, chief administrative offier) 였다. 그녀는 CAO 와 30분 면답을 신청했다. 면담은 1시간 30분이나 진지하게 이어졌다.

  CAO는 회사의 문제를 알게 되었고, 3주에 걸쳐, 캐롤라인과 같은 직급에 있는 다른 직원들을 만났고, 오랬동안 같이 일해온 중간 관리자 4명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뿐 아니라 신제품 판매전략, 대형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 북미지역 공장들에 대한 효율성에 대한 최신의 보고서들을 챙겨 읽었다. 자신의 분야가 아니어서 어려운 대목도 있었지만 그는 이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 준비되자 그는 최고경영자를 만났다.

  다행스럽게 최고 경영자는 경각심을 보였다. 그리고 임직원을 만나고 직원을 만나고 공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의 소리를 들었다. 들으려 하니 많은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들리지 않는 소리였던 고객의 소리, 경쟁업체의 소리, 시장의 소리들이 들렸고 보이지 않았던 경고등들의 깜박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최고 경영자는 전담반을 재편하고, 자신이 주관하는 경영회의의 의제를 바꿨고, 공식적으로 변화에 대한 강한 신념을 전직원에게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변화와 조직 혁신에 반발하는 부회장에 대하여 신속하고 단호한 조처를 취했다. 결국 부회장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다.

   변화의 시간은 오래 걸렸다. 그러나 진정한 위기감이 빨리 공유되었고 2년 동안 신제품개발과 생산, 판매및 사후 관리에 일대 혁신이 일어났다. 결국 이윤은 증대 되었고, 업계의 기술우위는 다시 확보되었다. 자칫 커질 수도 있었던 인력 구조조정은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주가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큰 폭의 하락을 막을 수 있었다.

   누가 이 변화를 일으킨 가장 큰 주역이었을까 ? 최고 경영자와 CAO는 변화에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최고의 공로자는 평사원인 캐롤라인이다. 그녀의 솔선수범은 무사안일과 적당주의의 저격수였고, 변화를 만들어 낸 기폭장치의 뇌관이었다.  경고를 감지하고 진정한 위기감을 가진 사람으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위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평사원 캐롤라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적합한 직무를 맡은 사람만이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면 CAO는 변화가 자신의 업무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그 골치 아픈 일을 시작하는 총대를 매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변화의 뇌관을 폭파하기 위해 도화선을 가설하는 점화행위를 캐롤라인 효과라고 부르려고 한다. 캐롤라인 효과를 만들어 내려면 먼저 스스로 이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을 다짐해야한다. 이것은 자신을 기폭장치로 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무사안일과 적당주의의 활성화된 타성* (주 1) 을 폭파시킬 수 있는 강력한 화약에 도화선을 가설해야한다. 최고경영자라는 폭파력을 쓰지 않고서는 활동성 타성이라는 난공불락의 요새를 폭파하기 어렵다.

  평사원 캐롤라인은 최고 경영자에게 접근하기 어렵다. 자신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이 경고를 최고경영자에게 전해 줄 효과적인 도화선 하나를 얻어야 한다. '폭약과 기폭장치를 연결할 도화선을 찾아라' 이것이 두 번째 캐롤라인 효과의 작동원리다. 그녀는 훌륭한 파트너를 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다행스럽게 CAO는 그녀의 생각을 회사 전체의 차원에서 폭넓게 정리된 형태로 최고 경영자에게 전달했다. 드디어 최고경영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동안 변화는 개가 꼬리를 흔들 듯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가끔 꼬리가 개를 흔드는 현상을 보기도 한다. 캐롤라인 효과의 본질은 '꼬리가 개를 흔드는' (wag the dog)는 재미를 느끼게 해 준다.   힘의 역학구조상 늘 최고경영자로부터 시작하는 개혁과 혁신이 일개 평사원에 의해 점화된 이례적인 사례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우리는 깨닫게 된다.    내 직위가 무엇이든 조직의 변화 조차도 언제 어디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말이다. 

꼬리의 위대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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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1 '활동성 타성'( active inertia)이라는 개념은 런던비즈니스스쿨의 도널드 설(Donald Sull)이 차용한 개념으로 과거의 성공 경험이 새로운 변화와 혁신의 추구를 방해하는 족쇄가 되어 기업을 몰락하게 하는 역기능으로 작동하는 것을 설명하려 했다.

IP *.160.3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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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09.09.04 11:03:50 *.32.165.40
멋져요^ 캐롤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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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09.09.04 13:25:36 *.35.254.135
들으려하니 많은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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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븅
2009.09.07 16:55:38 *.106.57.117
꼬리가 개를 흔든다 란것이 쉽지않을꺼라는 생각했는데요. 더욱더 용기가 생기네요.
너무도 공감가는 글 감사합니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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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은주
2009.11.03 08:44:58 *.12.160.171
저 꼬리가 개를 흔드는  그림 제가  살께요.
호당 얼마나 되는지요?
개 그림은 제가 사야하지 않겠습니까?  ㅎㅎemoti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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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21:30:14 *.212.217.154

감동적인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엄격한 계급구조가 시스템 화 된 기업문화에서

이런 케롤라인 효과가 얼마나 가능할지... 개인적으로 많이 회의적입니다.

일개 20대 여사원이, 이사를 만나고, 그 이사가 대표를 설득하여 변화를 만들어 낸다.

어두운 시나리오긴 하지만, 케롤라인의 사례보다는

그 여직원이 왕따를 당하거나, 변절자로 몰려 회사에서 쫒겨나는 모습이 먼져 그려지네요.

작년에 우리사회를 시끄럽게한 '땅콩회항' 사건과,

조직의 변화를 위한 공익 제보자를 내 쫒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서 더욱 암울한 생각이 듭니다.


현 시대상황에 맞는 개혁(케롤라인효과)은 힘들고,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혁명(예를들면 퇴사후의 창업과 같은)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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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9 10:47:56 *.212.217.154

캐롤라인이 조직을 위해 쓴 소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캐롤라인이 자신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수평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직을 만들겠습니다.

언젠가는 다가올 조직의 위기를 대비하는 키워드로 삼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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