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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9일 06시 33분 등록

 어떤 농촌에서 한 농부가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불만은 정치가나 역사가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 만개의 부락에서 수 십만명의 농부가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불만이 무엇이든 이 현상은 전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가가 달려가고 언론이 출동하고 역사가가 그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하려 한다. 그래서 레닌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치란 대중이 있는 곳에서 시작한다. 수 천명이 아니라 수백만 명이 있는 곳에서, 그곳이야 말로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는 곳이다."

민주주의는 그 개념의 발상지인 그리스 시대부터 회의적이었다. 어리석은 대중에 휘말리는 정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자들이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을 '거대한 비개인적인 힘"이라고 부르거나 '이름도 없는 너절한 인간들'로 폄하해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현재까지 인류가 발견한 가장 그럴 듯한 장치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사가 E.H.카는 그 이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람이 아닐 수 없고 개인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이름도 없는 수백만의 사람들이야 말로 많던 적든 간에 무의식으로 협력하여 하나의 사회적 힘을 형성하는 개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에서 수의 문제는 늘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민주주의의 매우 핵심적 개념이다.

나는 해멀의 책 ' 경영의 미래' 속에서 경영의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사례 하나를 보게 되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미국의 일류 가전제품 소매업체인 베스트바이(Best Buy)의 브랜드 마케팅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제프 서버츠(Jeff Severts)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광고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자신의 평판이 월간 매출실적에 따라 지나치게 연동되는 것이 불쾌했다. 즉 영업부서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실한 광고와 판촉 때문이고, 이것은 마케팅의 잘못이다'라는 단순 논리에 마케팅 팀이 안절부절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는 광고가 수요창출에 영향을 주지만 목표를 맞추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판매 예상 매출을 잘못 예측한데서 오는 괴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영업부의 전문가 예측치가 10% 이상 틀리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예측에 영향을 주는 복잡한 관리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반발이 클 것이고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한 강연장에서 "집단이 가장 똑똑한 개인보다 더 똑똑하다'는 주장이 그를 자극했다. 변수가 많은 사건을 예측할 때는 정보가 보잘 것 없는 다양한 개인의 집단이 소수의 전문가들에 비해 예측력이 우월하다는 메시지는 그를 자극했다. 서버츠는 대중의 지혜를 믿어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반발을 줄이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영역 안에서 간단히 실험해 보기로 했다. 마침 그는 마케팅 책임을 맡고 있었지만 베스트바이의 10억 달러 규모의 상품권업무도 총괄하고 있었다. 그는 베스트 바이 매장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다음달 예상 상품권 판매액을 예측해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예상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몇가지 통계자료를 첨부해 보내며, 가장 근접한 수치를 낸 사람에게 50달러의 상품권을 선물하겠다고 덧붙였다. 192명이 자신들의 예측치를 보내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마케팅팀 전문가들의 예상치는 실제와 평균 5% 정도가 어긋나는 반면 일선 판매 직원들이 예상한 예측치의 평균은 실제와 0.5% 정도 밖에는 빗나가지 않았다. 집단의 예측치는 전문가 등의 예상보다 10배나 정확했던 것이다.

서버츠는 조금 더 나가 보기로 했다. 그는 다시 매장의 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여름 휴가철 예상 판매액을 예측해 주기를 요청했다. 정확한 예측을 도와 주기위해 지난해 휴가철의 수입, 회계연도 첫 3달간의 수입등 간단한 자료를 제공했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에는 가장 근접한 예상치를 적어 보낸 직원에게 두 배의 보상으로 100 달러 상당의 상품권을 받을 것이라고 공표했다는 것 뿐이다. 결과는 역시 놀랄만 했다. 영업부 전문가들의 예상치는 실제와 93% 정확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집단의 예측은 99.9 %가 맞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베스트바이 최고경영진은 이 두 가지 실험결과를 인정하게 되었다. 결국 서버츠는 원하는 것을 얻었다. 막강한 영업팀과의 갈등을 만들어 내지도 않고, 더욱이 대대적인 비용을 쓰지 않고도- 그가 두 번의 실험을 위해 쓴 투자비는 150 달러의 상품권과 총 40시간 남짓한 시간이 전부였다 - 조용히 자신의 혁명을 만들어 냈다.

서버츠는 대중을 믿었다. 더 정확하게는 아무도 모르는 어떤 정보의 한조각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개인들의 집단력을 믿었던 것이다. 결국 복잡한 환경 속에서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 변하는 미래 예측을 정확하게 해 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때 가장 훌륭한 예지력을 가진 것은 소수의 전문가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의 상상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알 수 없는 민주주의 힘과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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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에서는 어떨까 ? 경영의 민주주의가 행해지고 있을까 ? 유감스럽게도 기업 내에서 민주주의는 선진 사회의 수평적 발전 노력에 비해 매우 뒤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기업은 여전히 상사와 부하로 나누어진 수직적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고, 관리자가 지시하고 통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한다. 기업 전략은 여전히 경영진의 전유물로 남아있고, 중요한 결정은 모두 높은 직위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 전문가들과 엘리트들이 평범한 다수의 의사결정을 대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여전히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 그렇다. 당신의 CEO와 힘있는 임원들이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들 뒤에는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누군가 있다. 바로 20세기 초반에 경영원칙을 창안한 이론가와 사업가들이 그림자처럼 버티고 있다. 21세기의 격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쓰는 경영의 방식은 근본적으로 100년 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새로워야할 사람들이 낡아있고, 가장 빨라야할 순간에 경영은 머뭇거리고 있다. 경영의 종말이 찾아오는 듯이 보인다.

뛰어난 경영학자 개리 해멀은 '현대의 경영 방식이 왜 점점 더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지'를 지적하며 이것은 명백한 경영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이제 관리 계층을 만들지 않고 수천명의 개인의 노력을 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할 때고, 인간의 창의성을 억압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고, 법과 통제가 자유와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조직을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결정한다' 가 아니라 '우리가 결정한다'는 경영 혁명 없이는 관료주의의 진창을 벗어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제 우리는 '경영자 없이 경영하고 조직없이 회사를 운영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많은 업적을 쌓아 왔지만 현대의 경영은 이제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할 중대한 숙제를 우리에게 남겨 두었다.

IP *.160.3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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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향
2009.09.09 07:25:27 *.249.57.63
아...경영의 민주주의.
시장의 거센 공격에 역공을 당하는 듯한 민주주의를 이렇게도 볼 수 있는 있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경영의 민주주의에서 관계의 민주주의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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썽이리
2009.09.09 10:15:10 *.48.246.10
우생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인류학자(찰스 다윈의 사촌) 프랜시스 골턴이 어느 시골에서 보았던 소 무게 알아맞히기 로또식 게임도 비슷한 예라 생각되네요. 800명의 참가자 가운데 무게를 맞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무효 처리된 13명을 제외한 참가자 787명이 제시한 무게를 모두 더해 평균을 낸 무게는 소의 실제 무게와 1파운드 차이.

** 한국경제 7월 7일 38면에 실린 정규재 논설위원의 칼럼 "시장상인이 웃을 집단지성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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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4 12:55:36 *.212.217.154

민주주의적 경영조직, 흥미로운 도전이지요.

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결국 지금의 관료적 조직의 한계는

자율적 조직으로 바뀔거에요.

조금씩 변화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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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3 17:17:52 *.212.217.154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의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서 다른 글에도 소개해 드렸지만,

다시한번 좋은 글 링크걸어봅니다.

https://brunch.co.kr/@younghakjang/15

이 글에서 작자는, 수직적 조직구조와 수직적 조직문화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는데요,

아마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민주적 요소에 해당하는것이

수평적 조직구조가 아닌, 수평적 조직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조직문화에 관심있는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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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11:16:59 *.212.217.154

세상은 우리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디게 변하는 듯 합니다.

그만큼 깨어있는 자들에게 기회가 되기도 하지요.

기성문화의 정체와, 내가가진 비젼 사이에서

세상을 바꾸는 그 기회를 낚아체어

위대한 도약을 준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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