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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2일 09시 02분 등록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키가 큰 아이가 있었는데, 바지가 작아서 그것을 친구 중에 키 작은 아이에게 주고, 그 아이가 입고 있는 더 큰 바지를 빼앗았다. 우리 선생은 내게 이 싸움을 판결하라 했다. 그래서 나는 양쪽이 다 이렇게 해서 맞는 바지를 입게 되었으니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틀렸다고 꾸짖었다. 왜냐하면 내가 '잘 맞는다'는 점만 고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는 먼저 정의를 좇아야 했으며, 정의란 자신의 소유물에 관하여 남의 침해를 받는 일이 없기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 판결을 잘못했기 때문에 선생에게 숙제를 안해왔을 때처럼 매를 맞았다. "

 

그리스의 역사가 크세노폰이 전하는 키루스왕의 교육 이야기다. 크세노폰은 좋은 삶은 곧 좋은 정치에서 온다고 믿었고, 좋은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키루스를 꼽았다. 키루스는 크세노폰의 사유체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는데, 그는 기원전 6세기 중엽에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왕으로 인류최초로 인권헌장을 만들어 낸 인물이기도 하다. 위대한 역사가인 헤로도투스의 '역사' 속에 키루스의 탄생에 대한 전설이 나온다.

 

메디아의 왕인 아스티아게스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그의 딸인 만다네에게서 솟아오른 물줄기가 메디아의 수도를 다 잠기게 하였다. 이윽고 홍수는 아시아 전체를 뒤덮었다. 꿈을 해몽하는 자가 말하기를 딸 만다네가 낳은 아들이 나라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 말했다. 깜짝놀란 아스티아게스는 딸을 비천한 신분의 사내에게 시집을 보냈다. 그후 아스티아게스는 다시 꿈을 꾸었는데, 딸의 음부에서 자라난 포도나무가 아시아 전토를 뒤덮는 꿈을 꾸었다. 다시 꿈을 해몽하는 자가 말하기를 딸의 아들이 왕을 대신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왕은 손자가 자신의 자리를 찬탈하지 못하도록 낳자마자 죽여버리리라 결심했다. 드디어 손자가 태어났다.

 

왕은 가장 신뢰하는 신하인 하르파고스에게 그 아이를 내주며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르파고스가 생각해 보니 그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왕은 이제 늙었고 왕위의 게승자는 아직 미정이지만 혹시 딸 만다네에게 계승된다면, 그녀는 반드시 아들을 죽인 자신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왕의 소를 치는 목동에게 갓난아이를 죽이는 일을 맡겼다. 마침 소치기기의 아내가 만삭이 되어 아이를 낳았는데, 사산되었기 때문에 만다네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키웠다. 이 아이가 바로 키루스로서 결국 폭군인 할아버지를 물리치고 메디아를 복속시키게 되었다. 마키아벨리는 키루스를 자신의 실력만으로 위대한 군주가 된 전형적인 인물로 부각시켰다.

 

 

키루스는 메디아 왕국을 합병하고, 리디아를 병탄했으며 바빌로니아를 복속시켰다. 그러나 그는 편입된 왕국들의 신전들을 파괴하지 않았으며, 행정체제를 대부분 지속시켰고, 기존의 관리들의 지위를 유지 시켜 주었다. 그가 건설한 페르시아 제국은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융합하여 구성한 관대한 제국이었다. 그 당시 모든 나라의 왕들은 가혹한 수단을 통해 나라를 통치했던 것으로 비추어 보아 이러한 관용은 매우 경이적이고 특별한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가장 훌륭한 지배자가 되었다.

 

 

키루스의 업적은 '키루스 비문'에 새겨져 있는데, 이 비문은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으며 유엔 건물의 2층에 그 복제품이 놓여있다. 왜 유엔에 이 비문이 있는 것일까 ? 200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60 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 1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모든 인류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엄성과 권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천부적 이성과 양심을 지니므로 형제애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유엔이 채택한 '인류의 인류에 대한 형제애'는 키루스의 비문으로부터 연유된 것이다. 그 비문 속에는 키루스는 바빌론을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입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비문은 황폐한 바빌론 인들의 주거지를 염려하고, 추방된 바빌론인들을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는 한편, 바빌론이 노예로 만든 사람들을 풀어 주었다. 그 중에는 바빌론의 나부 나이드 왕에 의해 70년 이상 억류되었던 유태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빌론인들의 신상을 영구적인 신전으로 옮겨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제국 내 다양한 종족들에 의해 존경 받았으며, 다양한 민족간의 이질성을 넘어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이상적인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의 올림픽 공원 내 바이센테니얼 공원에는 키루스의 옆면 부조 작품이 세워졌다.

 

 

 

 cyrus_relief.jpg

(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날개달린 수호신' 부조, 키루스로 추정)

 

 

어찌하여 그는 특별한 왕이 될 수 있었을까 ? 키루스는 인간이란 복종하기 싫어하는 동물이라고 이해했다. 복종하기 싫어하는 인간을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인물이 바로 키루스인 것이다. 크세노폰은 다시 이렇게 적고 있다.

 

 

"키루스가 있는 곳에서 며칠 혹은 몇 달 씩 떨어져 있는 거리에 있는 사람들,

키루스를 본적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키루스를 결코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 그에게 기꺼이 복종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키루스의 신민이 되고

싶어 했다. "

 

그의 위대성은 오늘날 크세노폰에 의해 '키루스의 교육' Cyropaedia로 알려진 바로 그 교육 덕분이었다. 그는 효율성을 배우기 전에 먼저 정의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그는 이미 그때 빼앗고 파괴하는 것이 통치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자기를 경영한다는 것은 먼저 가치를 배우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그 행위가 자신의 자치체계에 부합되는 지를 묻는 것이다. 예를들어 이익을 보면 먼저 그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돈은 되지만 그것이 가치에 위배되는 행위를 요구한다면 거기서 물러서야 한다. 이것이 자기경영이다.

 

그러면 이천 오백년 전 인물인 키루스가 스승에게 배웠던 것처럼 우리도 배운 것을 한번 써먹어 보자.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대하여 그대는 어떤 판결을 내릴 것인가?

 

동네에 구멍가게가 있었다. 두 부부가 젊어서부터 시작하여 먹고 살고 두 아이를 키웠다. 이제 두 부부는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되었다. 그들이 운영하는 그 가게는 그 동네의 오래된 풍경이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 그 가게를 운영하였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자리에 대기업이 경영하는 편의점이 들어섰다. 두 노인은 그 후 그 동네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네의 구멍가게들은 사라져갔다.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가족들 역시 딴 일을 찾아야 한다.   이 대기업의 행위는 사회의 공동선의 추구라는 기준에서 볼 때 정의로운 것인가 ?

IP *.128.22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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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4 15:46:40 *.96.137.237

 대기업이 구멍가게의 현재가치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고 그 지역을 차지했다고 해도,

그래서 부부가 당장 급했던 청구서에 지불할 일정 자금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결코 구멍가게를 계속 운영하는 노부부의 안정된 삶이라는 미래가치까지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정의란 자신의 소유물에 관하여 남의 침해를 받는 일이 없기를 요구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나,

사회의 공동선의 측면에서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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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16:28:36 *.180.232.156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애매합니다.

어려운 문제이지만, 지금까지 성장해온 자본주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대기업이 경영하는 편의점이 들어서면

다수의 서민 입장에서는 싸고 신선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경제적 효용이 생기는 것이라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멍가계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소규모 상인의 밥그릇을 뺐는다고 원망 할 수 있지요.

정의는 누구 편 인가요? 민주주의를 폭 넓게 해석하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피해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위의 이야기에 대한 판결은 '정의롭지 않다' 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편의점이 정의롭지 않다고 성토 해도, 대기업에서 이미 들어선 편의점을 폐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정의로운 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정의롭지 않은 그 대기업의 편의점을 불매하자고 외치지도 않을 것입니다. 소송을 해도 대기업이 지지 않을 것 입니다.'

 

편의점 이야기는 경제학 강의에서나 등장하는 소재일 뿐이고, 기업이 정의롭게 경영할려면 먼 미래, 수십년이나 지나야 가능할 것입니다. 아니, 영원히 바뀌지 않을 부정한 대기업도 더러는 있겠지요. 

 

그렇다면 대책은 우리가 정의로운 대기업이 되어서 편의점을 운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지속성장 가능한 대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받는 기업이 되어야 하므로 위의 구멍가게를 외면하면 안됩니다.

 

먼저, 편의점이 들어설 지역에 타격을 받을 구멍가계가 수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 합니다.

그들의 수가 많지 않다면 다행이지만, 숫자가 많아서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다면 이쯤에서 편의점 입점을 포기해야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의로운 대기업이라 다수 서민의 효용성을 포기할 수 없으니 구멍가게외 미팅하여 그들이 판매하는 물건을 제외한 매장을 운영하든지, 그들에게 편의점 운영을 위임하든지,  편의점을 구멍가게와 합병하든지, 여러가지 변수를 고려하여 편의점을 설치 합니다. 장사를 잘 하면 서로가 윈-윈 하는 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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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8 10:58:32 *.32.193.170

사부님, 대기업의 행위는 야만적이죠. 키루스의 정의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요?

일단 대기업은 복종하는 사람들보다 대기업에 반발심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잖아요.ㅋㅋㅋ.

 

저도 저를 자발적으로 복종할 수 있게 만드는 곳에서 일 하고 싶어요.. ㅜㅜ..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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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10:41:23 *.236.3.233
대기업은 분명 현재의 절차적 정의를 따라 합법적으로 움직였을 것입니다. 다만 장기적으로 이러한 현상이 소규모 자영업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하여 사회적인 불안요소가 되면 이는 결국 대기업의 수익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적정하게 법제도를 수정해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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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18 18:14:23 *.212.217.154

기본적으로는 탑거인의 의견에 많이 공감하는 입장입니다.

어려운 문제이지요,

그리고 현재의 상황에서는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닌,

구소상공인(구멍가게주인) vs 신소상공인(편의점주) 구도로 볼 수 있겠지요.

특정지역에 편의점이 없고, 동내슈퍼만 존재한다면(그런곳이 없겠지만) 

특별상권(직영이가능한)이 아닌한 보통은 일반인이 그 지역에 매장을 내기위해(프랜차이즈오픈) 준비하는 형식을 취할겁니다.

그렇다면 이 구도는 이미 대기업대 소상공인 구도가 아닌게 되어버리지요.


주주자본주의아래의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도덕성'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생각해요,

정의에 따라 움직이지 않지요, 이익에 따라 움직일뿐이지요,

그 이익이 공공의이익과 부합한다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이고요,


단기적으로는 자본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도덕'과 '정의'에 따르지 않는 '자본'의 속성은 우리에게 부매랑처럼 돌아오리라 봐요.

그런면에서 자본의 사회적 공공성을 강제할 수 있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보다 '도덕'적이고'정의'로운 기업, 상품에 대한 요구가 필요하구요^^


좀더 큰 틀에서 보면, 이런기업들,

'정의'로운 조직이 결국 살아남아 성장하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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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08 08:12:50 *.139.108.171

비지니스에서의 '정의'에대해 생각해봅니다.


사업은 '생존'을 위한 '전쟁'이지요.

그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한 모든행위가 모두 바른것은 아닐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현실이듯,

사업에서의 경쟁 또한 현실이겠지요.


위의 예시를드신 구멍가게와 편의점,

구멍가게가 경쟁력이 있다면, 사라질 수 있을까요?

저는 살아남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치열한 경쟁으로 힘들어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그 경쟁속에서 '진짜'식당, 진짜 써비스, 진짜 가치를 제공하는 곳은

영속해서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을것입니다.

그렇지않은곳은 자연도태되는것이겠지요.


마치, 자연의 섭리, 자연의 정의와 같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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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0 10:10:40 *.241.242.156

키루스의 통치 철학은

일면 동양의 '유가' 사상과 맥을 같이하는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란 것이 승자의 기록임을 감안한다면

이런 일화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답게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많겠지요.


그 수많은 나라들을 전쟁이란 수단으로 정복하기 위해 사용된 무력은

'유가'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만물이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그가 행한 자비로움은 결코 작게 볼 수 없는것이지요.


그런 그를 생각하면서

실크장갑속의 철의 손 이라는 프랑스 속담을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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