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8960
- 댓글 수 8
- 추천 수 0
여기 시가 하나있다. 이 시의 제목은 '내 고추'다.
변소에 가서
오줌을 누려고 하는데
해바라기가
내 고추를 보려고 한다
나는 안 보여줬다
어느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의 시다. 열 살짜리의 시인데, 귀엽다. 그러나 원래의 시는 다르다. 원작은 이렇다.
변소에 가서
오줌을 눌라고 하는데
해바라기가
내 자지를 볼라고 한다
나는 안 보여줬다
제목도 '내 고추'가 아니고 '내 자지'다. 사투리도 표준말로 고쳤다. 학교 선생은 다른 학생들에게 원작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불편해서 교육적 차원에서 젊잖게 고쳐두었다고 한다. 강제 개작을 통해 이 시의 어린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라는 정체성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되었다. 표준화 되었고, 무난해졌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거름망을 지나오는 동안 '열 살짜리 남자 아이'라는 본질을 잃고 말았다. 생명을 잃었고, 진실을 잃었고, 시(詩)를 잃었다. 해바라기가 보려고 하여 숨긴 것은 내 고추가 아니라 내 자지인 것이다. 고추라면 숨길 필요도 없다. 오직 자지이기 때문에 숨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신화는 문명의 고치지 않은 원판이며 야생의 사유다. 모든 어른 속에 아이가 들어 있듯이, 인류는 그 사유 속에 원시를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문명은 원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시를 품지 않은 문명은 죽은 것이다. 야생의 사유가 없는 문명은 아스팔트며, 가면이며, 생명이 다했거나 애초에 생명이 없이 만들어진 조화(造花)에 불과하다.
신화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오래된 원시의 철학이다. 그때 그들은 이 사유의 틀로 사람을 이해했고 자연을 이해했고 우주를 이해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미신이라고 불렀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원시를 야만이라고 모멸했다. 그러나 신화는 이야기 속에 체계적으로 위장되어 있는 진리의 상징이다. 그것을 풀어내면 옷 속에 감춰진 인류의 은밀함에 접근해 갈 수 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83 | 강연 여행 [2] | 구본형 | 2003.11.12 | 5777 |
582 | 대한민국 개발자 희망보고서- 오병곤 지음 [3] | 구본형 | 2007.03.15 | 5777 |
581 | 설득 당하지 말고 설득하라 [2] | 구본형 | 2002.12.25 | 5778 |
580 | 쟁취하지 말고 부드러운 혁명을 시도하라. [2] | 구본형 | 2002.12.25 | 5778 |
579 | 불면에 대하여 [2] | 구본형 | 2003.11.05 | 5781 |
578 | 아이들이 있는 일상 - 3개의 스케치 [3] | 구본형 | 2004.06.06 | 5786 |
577 | 동.서양 철학자의 현대 지성 이중주 [2] | 구본형 | 2002.12.25 | 5787 |
576 | 어려서 감꽃을 줍던 손으로 이제는 돈을 세고있네 [2] | 구본형 | 2002.12.25 | 5788 |
575 | 치열한 정신 세계에서 건진 '삶의 의미' -한국경제 [2] | 구본형 | 2002.12.25 | 5789 |
574 | 창조적 문제아가 되라 [2] | 구본형 | 2002.12.25 | 5791 |
573 | 이 여름날의 독서 [2] | 구본형 | 2004.08.12 | 5796 |
572 | 돈이 최선인 사회에서는 조지 소로스도 살기 어렵다 [3] | 구본형 | 2002.12.25 | 5798 |
571 | 헌신적인 반대자가 되라 [2] | 구본형 | 2002.12.25 | 5798 |
570 | 정열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곳을 만드십시요(2000.여름) [3] | 구본형 | 2002.12.25 | 5800 |
569 |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1999.7) [2] | 구본형 | 2002.12.25 | 5804 |
568 | 꿈과 별들의 시대(1999.12) [3] | 구본형 | 2002.12.25 | 5804 |
567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푸른숲 [2] | 구본형 | 2002.12.25 | 5804 |
566 | 5천만개의 꿈 [2] | 구본형 | 2002.12.25 | 5804 |
565 | 중기 기업인을 위한 몇가지 제안(1999.7) [2] | 구본형 | 2002.12.25 | 5806 |
564 | 각종게이트를 보면서 [3] | 구본형 | 2002.12.25 | 5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