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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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을 담은 눈길과 함께 '고마워'라고 말하는데, 3초면 넉넉하다. 신은 우리에게 매일 86,400 초를 선물로 준다. 그 중에서 오늘 얼마쯤은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써야하지 않을까 ? 만일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었는데, 선물만 냉큼 받아 챙기고 고마워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선물을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혹시 인생도 우리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은 아닐까 ? 삶으로부터 더 멋진 것을 받아내고 싶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할 일이다.
나도 한국적 문화 속에 오래 살았던 사람이기에 감사와 고마움을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마음에 품어두는 편이었다. 말로 표현하는 멋쩍음과 가벼움보다 품어두고 잊지 않고 보답하는 것이 더 진중한 일이라 생각했고, 눈빛으로도 이심전심의 마음이 통하는 깊은 만남은 그렇게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방법이 나쁜 것은 아니다. 진심은 언젠가 교감되고, 그 깊은 뜻을 알았을 때, 기쁨으로 사람의 참맛을 즐긴 적이 제법 되었다. 그러나 이런 군자의 교제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니, 가벼운 만남이 주류를 이루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는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내 막내딸이다. 그 아이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고맙다는 말을 한다. 가족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이 고마움을 말로 표현한다. 어찌 보면 입에 밴 버릇 같기도 하다. 어디서 그것을 배웠는지는 모르지만 가족에게서 배운 것은 분명 아니다. 가족 누구도 그렇게 감사를 표현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살면서 누군가에게서 어디선가 그 좋은 것을 배워 습관화했다는 점에서 그 아이는 정말 값진 것을 얻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보다 이 아이와 함께 있을 때, 훨씬 더 많이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감사는 감사로 되돌아오고, 고마운 말은 고마운 말로 되돌아오기 때문인 듯하다. 그 후 나도 더 많이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작은 일에 감사함을 느끼고, 늘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을 환하게 하는 유쾌한 일이다.
감사의 표현 역시 일종의 습관이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서는 줄을 서고, 칫솔질을 할 때는 잠시 틀어 둔 수도꼭지를 잠궈 물이 흐르니 않도록 하는 것처럼 약간만 마음을 쓰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습관이다.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삶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아주 좋은 습관 중의 하나다. 덤덤하고 다소 무뚝뚝한 내가 감사의 습관을 길들이는 동안 도움을 받았던 세 가지 비방을 공유하면 좋겠다.
첫 번째 비방, 좋은 슬로건을 상징적인 가이드로 삼아서 도망가려는 마음을 잡아둘 필요가 있다. 내가 차용한 슬로건은 '고마움을 느끼고도 표현하지 않는 것은 편지를 써두고도 부치지 않는 것과 같다'라는 다소 우스운 비유였다. 써둔 편지는 이미 내 것이 아니라 수취인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부쳐야한다. 그러자 고마움을 느낄 때 마다 표현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이 일면, 나는 늘 고맙다고 말하게 되었다.
두 번 째 비방, 감사의 표현에 그치지 말고, 받은 고마움에 대하여 보상할만한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적극적인 일이다. 감사를 표현하다보면 신기하게 친절한 마음이 동하게 된다. 고마움을 표시할 뿐 아니라 그 사람에게 그 고마움을 나의 방법으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감사의 생산성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주고 받는다'라는 거래의 원칙보다는 진정성과 순수함이 존중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 부담이 없는 기쁨의 교환이 가능하다. 이 대목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받을 것을 바라지 말고 베풀라'는 원칙이다. 그러면 생각과 행위 자체로 즐겁고 풍요롭다.
세 번 째 비방, 감사의 표현이 일회적인 변덕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감사를 느끼고 표현하고 되돌려주는 과정이 세포 속에 각인될 수 있도록 하나의 습관으로 정착되도록 해야한다는 점이다. 나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는 '100일의 법칙'을 늘 주장한다. 100일을 계속하면 웬만한 습관은 체득된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실제로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매일 쓰는 습관을 들이는데 첫 100일을 투자했다. 그 후 13년 동안 나는 4시에 일어나 매일 두 세 시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작은 감사를 놓치지 않고 느끼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언젠가 적당한 때에 받았던 감사를 그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훈련을 100일 정도 관심을 가지고 계속하다보면 자연스러운 감사의 습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면 최고의 습관 하나를 획득하게 된다. 좋은 일이다.
감사는 현금과 같아서 언제나 즉석에서 꺼내 쓸 수 있는 훌륭한 미덕이다. 더욱이 얼마를 쓰더라도 고갈되기는 커녕 더욱 더 출렁이는 샘물과 같다. 감사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인생으로부터 훨씬 더 많은 기쁨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방법이기도하다. 봄에 감사하고, 꽃이 피었음에 감사하자. 그러면 그대의 삶의 꽃도 어느 날 찬란하리라.
(로레알을 위한 원고 중에서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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