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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5시 21분 등록
월간 에세이(1999. 6)-계절의 뒤끝에서
이제 5월이 막 시작했건만 봄은 벌써 지나 가려한다. 봄은 꽃이 예쁜 계절이다. 그래서 봄은 꽃처럼 짧다. 어떤 시인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여의도의 샛강을 따라 걷다 생각해 본다. 내 안에도 바깥으로 뱉지 않으면 안될 안타까운 것이 있는가? 나도 식물처럼 꽃으로 그것을 피워 낼 수 있는가? 예쁜 것을 보면 우리는 꽃과 같이 곱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것을 고운 것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변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며칠 전 아침에 처가 아파트의 정원 어느 나무 아래서 나를 불렀다.

작은 주목처럼 생긴 나무 가지의 끝에 연두 빛으로 새로운잎이 돋고 있었다. 작년에 남아 있던 짙은 초록 빛 침엽 끝 눈으로부터 돋아난 새 잎은 침엽답지 않게 보드라웠다. 처는 그 부드러움에 놀라고 있었다. 힘은 오히려 부드러움에서 온다.

벌써 사십의 중반을 넘어 이제 젊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마흔 댓 번 보았다는 뜻이다. 이제 보니 '춘추가 얼마나 되시나?' 는 표현은 시처럼 우아한 일상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보고 사는가? 나이의 의미는 그것이다.
사십이 넘어 스스로 닦아 갖추어야하는 덕성 중의 최고는 관용이다. 그리고 관용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샛강을 걸으며, 개미취가 자란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도 새로 올라와 의젓하게 서 있는 것도 보았다. 보라색 붓꽃이 약간 볼록한 둔덕 위에 피어 돋보인다.

서로 다른 작은 들꽃 들이 모여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다른 것 보다 못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모두 가슴 속 가득 '뱉어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연을 안고, 한 자락 진실을 붙들고 산다.

인간만이 쑥부쟁이로 태어나 벚꽃이 되지 못하는 것을 서러워한다. 혹은 이름도 없는 들풀로 태어나 사람이 가꾼 장미처럼 곱지 못한 것에 분개하고 좌절한다.

인간만이 자신이 무엇으로 세상을 태어났는 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신,사회가 무엇을 원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탈을 뒤집어쓰고 남이 되어 산다.

속은 곪아 터지는데, 그 아픔을 고운 꽃으로 피워내지 못한다.
노랑 들꽃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확신이 보인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분명하고 확고한 힘이 전해진다.
IP *.208.14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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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4 14:01:09 *.212.217.154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 힘이

우리들을 아름답게 하는

자연의 순리이겠지요.

오늘도 내 안에 숨겨진 그 길을 찾아서

한발 한발 걸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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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0 13:35:06 *.93.9.79

자기답게 사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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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2 12:04:40 *.143.63.210

등대같은 선생님의 글로

저 스스로를 찾아간 것에 감사합니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그 빛을 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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