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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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연구원 수업이 끝났다. 지난 1월에 자신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니, 그들은 이제 1년 동안 글과 마주 앉아 있었던 셈이다. 대부분 직장인들이니 그렇게 글 앞에 앉아 있어 본 것은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1년이 흘렀으니 내년에는 책을 내야한다. 그들이 작가가 될 것인지 그렇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약속이었고, 2년 동안 자신에게 쏟은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이 승리다. 승리는 자신을 복제하려한다. 그리하여 성장을 멈추지 않고 지속할 수 있게 한다.
첫 책을 쓰고, 그 승리의 맛이 너무 좋아 작가의 길로 들어서려는 사람에게 나는 할 말이 있다. 이것을 '나의 작가론'이라 불러본다.
작가는 좋은 직업이다. 책을 읽는 것이 공부하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 창조고, 글을 쓰는 것이 실천이다. 언제 어디서나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면 끄적거릴 수 있고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다. 평생 직업이고, 제 좋아 하는 일이다.
늙어서 몸이 삐걱거려도 즐길 수 있고, 다리몽댕이가 부러져 침대에 누워 있어도 할 수 있다. 어쩌면 늙어서도 잘할 수 몇 개 안되는 일 중의 하나고, 침대에서 몸져 누워있기 때문에 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한다. 거기다 지식노동자이니 말도 제법할 수 있고, 글로 제법 쓸 수 있다. 먹물이니 어디 가서 무식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법 대접도 받을 수 있다. 제일 괜찮은 것은 남에게 고용되어 있지 않으니 제법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 거 얼마나 좋은 말이냐. 제 맘대로 살 수 있으니 멋진 일이 아니냐.
거기에 더해 돈도 제법 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심한 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뭘 모르는 소리! 이구동성으로 말할지 모른다. 책이 잘 팔리던 때도, 전업 작가로 먹고 사는 사람은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였다. 지금은 책도 잘 팔리지 않는다. 그러니 몇 년씩 고생해서 책을 내어도 천 만원도 벌기 어렵다. 한 달에 이백만원이 벌리지 않아 작가폐업을 한 작가들이 무수하다. 그러니 돈을 제법 벌 수 있다는 말을 해서는 안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돈을 벌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승산이 있기 때문이다. 내 말을 들어 봐라. 다음 두 가지를 지키면 괜찮은 직장인의 년봉을 뛰어 넘을 수 있다.
첫째, 평범한 재주를 가진 사람 기준으로 책은 1년에 한 권 쯤은 나와야 한다. 그렇게 못나오면 놀기에 치중한 것이다. 적어도 직장인만큼이라도 매일 노력한 작가는 1년에 꽤 괜찮은 책 한권을 써 낼 수 있다. 아침에 출근하여 저녁 늦게 후줄근해져서 퇴근하는 직장인만큼, 매일 그렇게 지금 쓰고 있는 책에 시간과 관심과 기쁨과 스트레스를 쏟고 나면 책이 한 권 쓰여진다. 아이와 비슷하게 책의 회임 기간을 1년으로 잡아라. 더 긴 놈도 있고 더 짧은 놈도 있을 수 있지만 매년 책 한권을 출산하는 것을 이 프로젝트의 기본으로 삼는 것이 좋다. 영감이 떠오르면 신에게 감사하고, 그렇지 않으면 땀으로 쓴다. 매일 출근하는 직업인처럼 작가도 매일 제 땀으로 먹고 산다.
둘째, 저자와 독자가 교통할 수 있는 황금 광장을 구상해야한다. 어떻게 쓸까를 기획해야한다. 작가는 비즈니스맨이 아니고 예술가다. 그러니 시장과 대중이 원하는 것만을 써서는 안된다. 내가 들려주고 싶은 것도 써야한다. 대중이 원하는 것에 편승하여 그것만을 겨냥하면 장사꾼이지 작가가 아니다. 눈치보는 자의 천박함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그것은 작가의 영혼이 아니다. 그러나 듣고 싶은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 제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만 떠들어 댈 때, 세월이 지나 그 말들이 시대를 앞선 예언이었음이 입증되면 선지자가 되겠지만, 어림도 없는 이야기로 그치게 되면 추운 노숙자에 불과하다.
삶의 어디에나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듯이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세상이 듣고 싶은 이야기가 일치될 때 작가는 가장 행복하다. 대중과 나, 이 사이에서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훌륭한 소통의 통로들을 만들어 내기 위한 창조적 시도를 끊임없이 해야한다. 대중이 어렵다고 하면 더 이상 쉽게 쓸 수 없다고 버팅기지 말고 쉽게 써보려 애써야한다. 그러면 쉽게 쓰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대중이 지루해 하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나자빠지지 말고, 자신에게 빠져 들 수 있는 몰입의 방식을 찾아내려 애써야 한다. 세상이 듣고 싶어하지 않으면 그들이 즐겨 들을 수 있는 다른 통로를 개설해야한다.
내 심장의 소리를,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때에 제공해 주기 위해 기획하고 구성하면 삼만 부는 팔 수 있다. 그러면 대략 년봉 5천만원이다. 많지는 않지만 죽을 때 까지 작가로서 먹고 살 수 있다. 평생직업이다. 종종 훨씬 더 많이 팔릴 때도 있다. 그러면 이 우묵한 지점에 몇 년 먹고 살 수 있는 양식이 고인다. 이때는 원한다면 제가 쓰고 싶은 책을 대중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내 지를 수 있다. 세상에 나를 외치는 일은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
술 먹은 다음 날 아침에도 출근해야하는 직장인처럼 작가도 아침에 깨어 자신의 글로 출근해야한다. 무엇을 보고 느끼던 작가는 그것을 글감으로 데려와야한다. 모든 길은 글로 통한다. 나는 쓴다. 씀으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작가의 스피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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