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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6시 22분 등록
푸른숲(1999. 1)-지성 23인의 자기성찰과 메시지
자기로부터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
'2000년 , 이 땅에 사는 나는 누구인가 ? '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사물의 밝은 면을 보려고 애를 쓴다. 타고날 때 나는 오히려 소심한 편이었고, 조심하고 근신하는 성격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고 싶은대로 하는 편이고, 가능하면 거침없이 삶을 살아가려고 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균형을 잡아 가는 것이다. 가지고 타고난 것과 살면서 얻어 체험한 것, 현실과 꿈, 사실과 허구, 지금과 미래가 시처럼 즐겁게 얽힌 양극단 사이의 어느 점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균형이라는 말은 참 좋은 개념이다. 균형을 잡아가기 위해서는 언제
나 가변적인 상태에 있어야한다. 변화의 상태에 있지 않고는 늘 균형의
상태에 머무를 수 없다. 나는 변화와 균형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자전거의 예를 많이 든다.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균형이 유
지되어야한다. 그리고 균형의 유지를 위해 우리는 두가지를 끊임없이
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는 패달을 밟아 주는 것이고, 또하나는
핸들을 조금씩 움직여 주는 것이다. 자전거를 잘타게 되면 두가지 동작
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변화와 균형도 그와 같다. 우리는 손
과 발을 움직여 줌으로써 안정에 이르를 수 있다. 참 이상한 것은 가만
히 있으면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는 점이다. 개인의 삶도 그렇고 사회
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와 개인이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려운 때이다. 나라가 어렵다는 거시적 관점을 떠나 개인들
에게 사회 보장이 전무한 상황에서의 실직은 곧 굶주림을 의미한다. 더
욱이 우리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혈연과 개인적 관계를 중심으로한 사
적(私的)인 사회 안전망이 이미 궤멸되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
운데 형제와 친척, 친구끼리 보증을 서주고, 조금씩 꾸어 준 돈들이 물
려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딱한 처지를 돌아 봐 줄 여유가 없게되었다.

제나라 환공을 도와 춘추시대의 패자로 만들어 주었던 관중은 먹고
입는 것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다움은 창고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창고가 풍족해야 비로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다. 융중에 누운 제갈량이 스스로 견주어 비긴 관중이 뛰어난 현실
적 정치가라는 것을 증명해 준 대목이다. 그는 '인간이란 모름지기 이
래야한다'는 이상주의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
해하고 받아들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결함까지 모두를 받아들여 정
치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아이의 손가락을 잘라 보험금을 타서 먹고 살려고
한 아버지를 만들어 내었다. 모두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고개를 흔
든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생겨났다. 병들고 힘없는 아비는 그렇
게라도 해서 아이를 먹이고 싶었는 지 모른다. 아비를 이해해 준 사람
은 손가락이 잘린 10살 짜리 아들뿐인 것 같다. 아비는 못난 사내였다.
다른 사람을 털어 먹고 사는 강도와 도둑조차 되지 못했다. 차라리 강
도와 도둑은 언제나 있어 온 일이지만,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는 누구도
되고 싶어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런대도 이제 이와같은 일이 생겼
고, 더 섬짓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른다. 흉년과 전쟁
속에서 굶어 죽게된 사람들은 서로 아이를 바꾸어 잡아 먹었다는 기록
이 있다. 먹고 사는 일이 얼마나 모질고 질긴지를 보여준다. 이것을
보며 나는 관중이 옳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한 일을 또 하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잡혀가 옥살
이를 하는 동안 이 10살난 아이를 돌보아 주겠다고 나선 사람이 신문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는 부유한 사람이 아니다. 창고가 가득차서
모름지기 사람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그런 부자가 아니다.
그는 아이를 가지지 않은 나이든 구두닦기였다. 아이를 가엽게 여기고
자신의 생활 속으로 아이의 아픔을 데려오려고 생각한 그와 그의 아내
는 부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관중은 틀렸다. 그는 그저 현실의 정치가
일 뿐이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인간에 대한 상이한 견해사이의 균형을
요구한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 우리는 홍수가 나면 모금함
을 채워 수재민을 도와 줄 수도 있다. 마더 테레사는 평생을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위해 살았다. 우리는 희생과 측은지심 그리고 봉사의 마
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아닌데도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
은 많지 않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만일 매주 매달
홍수가 난다면 수재의연금은 걷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나 테레
사 수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우아하고 거룩한 미덕만을
가지고 사회를 살아가지 못한다. 관용과 희생, 봉사와 양보는 좋은 가
치이지만 평생동안 스스로를 격려하고 흥분시키는 보편적 동기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오히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다. 이기심만큼 강력
하고 지속적인 욕망은 없다. 우리는 좀 더 나아지려고 한다. 좀 더
나아 질 수 없을 때 좌절한다. 현실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나은 미래
가 보이지 않아 쓰러진다. 자기를 사랑하는 힘이 없이는 다른 사람 역
시 사랑할 수 없다. 여기서도 우리는 보편적 가치와 이기심사이의 균
형을 요구한다.

관중 보다 훨씬 후에 태어난 사람으로 관중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있
는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이 있었다. 그는 오늘의 자유시장경제의 이론
과 원리의 대부라고 불리우는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였다. 그는 잘 생
긴 사람이 아니다. 개구리 눈에 엄청나게 큰 코, 그리고 아랫 입술이
튀어나온 신경질적이고 멍청해 보이는 사람이다. 실제로 엉뚱한 사고를
잘 저지르는 사람이었으며, 잠옷 바람으로 거리를 헤메는 묘한 잠버릇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그는 1776년에 아주
기다란 이름의 책을 한 권 출판하였다. '국가의 부에 대한 본질과 원인
에 대한 일 고찰'(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제목의 두꺼운 책이다.
보통은 '국부론'으로 알려져있는 책이다. 자본주의의 중심이 되어 있는
미국의 독립전쟁의 발발과 자본주의 이론의 원조인 책의 출간이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 졌다는 것은 우연한 일치 이상의 운명적 만남처럼 보인
다.

관중과 마찬가지로 그의 위대함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한 점에서
부터 시작한다. 인간을 이상화 시키지도 않았고 미화 시키지도 않았
다. 있는 그대로 허물과 이기심을 그대로 끌어 안았다. '도덕 감성
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의 저자 이기도 했던 철학자 아담
스미스는 모든 행성 가운데 태양이 있듯이 사람들은 세상의 한 가운데
자기 자신을 두고 산다고 믿었다. 그는 모든 행성이 각자의 궤도를 도
는데도 우주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유지 되는 것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 사회에도 이 우주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결국 자기 자신을 도움으로써 타인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사
람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인간이 오직 자신의 이기적 본능에 의해
서만 움직인다고 믿지는 않았다. 우리는 때때로 친절해진다. 또 가까운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하기도 한다. 보편적인 박애의 감정을 가지고 있
고, 불의를 보면 분노한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이기심이야말로 인간
에게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사실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인간의 고귀한 심성에만 사회의 미래를 맡기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를
윤택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자산이다. 한 번 상상해 보
라. 한 이기적인 인간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빵을 만든다. 다른 사람
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
이러니칼하게도 그는 모든 기준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다른 사
람의 기준에 맞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팔고 싶은 양만큼이 아니라 남들이 사고 싶어하는
양만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자신이 받고 싶은 가격이 아니라 남이 인정
해 주는 가격에 그것을 판다.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결국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메카니즘이 바로 시장경제이다. 그래서 이 단순한 시스템
은 기타의 시도들이 실패할 때에도 살아 남았고 이제는 인류의 유일한
경제 시스템이 되었다.

그는 그러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 잡혀지는 자유방임시장경
제 체제가 그렇게 쉽게 이루어 지리라고 믿지 않은 것같다. 왜냐하면
정치가의 귀에 속삭이는 상인의 목소리를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은 함께 모이는 경우가 드
물다. 하지만 일단 모이게 되면 그들의 대화는 항상 소비자들을 우롱할
술수나 가격 상승 결의 따위로 끝맺는다." 실제로 상인들 간의 비도덕
적인 담합과 결의는 그 자체로는 별로 효력을 보기가 어렵다.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누군가가 그들을 도와 주어야 비로소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덕 상인은 정치가를 필요로한다. 정부가 나서서
강제력과 규제를 통해 몇몇 악당들에게 독과점권을 부여하게 되면 국내
시장은 그들의 것이 되고만다.

아담 스미스의 우려대로 지금까지 한국은 자유로운 시장 경제체제와
거리가 멀었다. 독재정권은 재벌은 키워냈고, 재벌의 힘이 커지는 것
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만들어 활용하여왔다. 이 과
정에서 불투명한 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되었다. '교활하고 영악한' 정
치가들은 '탐욕스럽고 특혜를 바라는' 비도덕적인 상인들과 즐거운 밀월
을 즐겨왔다. 뿐만아니라 상인들은 로비활동을 벌려 외제품의 수입을
막아달라고 정부에 호소한다. 주로 두가지 수법을 사용하게 된다. 하
나가 바로 '애국심'에 대한 호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아산업보호론'(
infant industry protection)이다. 그들은 자생력을 갖춘 후에도 늘 해오
던 보호 육성책을 정부로 부터 기대해 왔고, 애국심을 부추겨 수입품을
배격하는 것이 나라 사랑이라고 소비자를 우롱한다. 외국 기업과의 자
유 경쟁을 피하여 가격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국내 기업은 막
대한 이윤을 취할 수 있었다.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물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수 시장에서 돈은 벌었지만 국제 경쟁력을 상실하
였다. 거대해졌지만 여전히 크지 않으려는 유아의 모습으로 남아 있었
다. 경영능력은 정치력과의 담합 능력과 동의어가 되었고, 그 과정에
서 기업의 자금은 불투명한 루트를 따라 흘렀다.

부패가 만연된 사회에서는 뇌물수수혐의로 고발이 되어도 수치로 여
기지 않는다. 재수가 나쁜 것에 불과하다. 그저 희생양일 뿐이고 그래
서 떳떳하고 거룩하다. 부패로 고발당해 9시 뉴스에 나오는 정치가들
은 하나같이 그렇다. 검은색 승용차에서 내려, 웃음을 머금고 걸어 나
온다. 건물의 입구에 벌써 와서 기다리고 서 있는 같은 패거리들로 부터
격려의 악수를 받는다. 그리고는 기자들에게 이것은 정치적 공작이고
편파 수사라고 젊잖게 말한다. 편파 수사라는 것이 무엇일까 ? 너도
썩고 나도 썩었는데, 그리고 우리 모두 흠뻑 썩었다는 것을 서로 알고
있는데, 왜 나만 미워하느냐는 것이다. ( 나는 9시 뉴스를 잘 볼 수가
없다. 그들이 등장하면 나는 TV를 끈다. 평범한 한 시민이 9시 뉴스
조차 볼수 없을 만큼 우리는 부패한 사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곳에 놓여있다. 균형을 잃
고 중풍 맞은 사람처럼 기괴한 모습으로 쓰러질 듯 간신히 그렇게 서있
다. 부패가 오장육부와 골수까지 침투해 있다. 중산층은 궤멸되어 가
고 부는 양극으로 나누어져가는 빈곤한 나라의 전형적인 현상인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 쪽에서는 '이대로'이고 다른 한
쪽에서는 당장 먹을 것이 없다. 관료과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은 정부 주도의 어떤 개혁도 실현될 것 같지 않은 어두운 그림자를 던
지고 있다. 한국의 정부,기업,금융기관에서 만들어낸 통계와 정보는 국제
사회에서 사실로 받아 들여지지 않고 있다. 거짓은 남을 속이고 또 스
스로를 속이게 되어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계와 자료로는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게 되었다. 한국 사회의 특징이었던 활력과 에
너지는 방향을 잃고 급격히 감소되었다. 지금 우리는 사회의 모든 분야
에서 미래를 위한 조율이 필요한 때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던져진 21세기의 화두는 무엇일까 ? 자유로운
시장경제에 모든 것을 맡겨 두는 것인가 ? '극단의 시대'(1997)의 저자
이며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은 '극단 사이의 균형'이
21세기 인류의 과제라고 말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 균형은 정부
주도적인 통제 경제와 극단적 자유시장체제 사이의 새로운 균형이라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엄격한 통제경제사회에서도 시장의 요소는
존재해 왔으며, 미국 같이 시장 만능식의 사회에서도 규제의 요소는 존
재한다. 문제는 언제, 어떤 조건하에서 이 두가지 요소의 균형을 다시
맞추어 갈것인지가 중요하다. 이것은 특정 국가내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국제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탈냉전 이후, 미국의 지배계층은 이른바 워싱턴 건센서스(Washington
Consensus)이루어 내었다. 이것은 중남미,동유럽,아프리카의 주변국들을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속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의한 것이
다. 이것은 결국 미국과 세계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다. 그리고 이를 위한 방편으로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조급하게 추진하
였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제프리 삭스 교수는 미국의 이러한 세계 시
장전략은 대상지역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에서 제외 시킴으로서 파
탄을 맡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태국과 한국의 금융 위기는 바로 이 성
급한 자본 시장 자유화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미국이 진정으로 자
국의 번영을 통해 전세계의 번영에 기여하고 싶다면, 인류의 85%에 해
당하는 개도국의 목소리에 귀를 귀우려야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일차적 과제는 세계 자본시장의 개혁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가능하려면 각국정부가 단기성 투기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을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적인 투기 자본가중의 한사람인 조지 소로스는 수십억 달러의 돈
을 잃었다. 이제 소로스조차 아시아 금융 위기의 주범으로 국제 금융자
본의 떼거리 이동을 들고 있다. 결국 단기성 투기 자본의 급격한 이동
을 규제할 수 있는 기구의 설립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개도국 내에 강력한 중산층의 창출과 시장경제의 참여자들에게 번영
을 비전으로 제시한 글로발 캐피탈리즘은 오히려 단기적 투기 자본의
급격한 이동을 통해 개도국 경제를 와해 시킴으로서 공동의 번영에 대
한 약속은 중대한 도전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다. 제프리 삭스나 조지
소로스는 모두 지금의 체제로는 세계 경제의 미래가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만을 가지고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망상이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새로운 균형이 필요하다. 국민의
참여와 무관심 사이에서 국민의 의사가 존중된 결정을 어떻게 내릴 것
이냐의 과제가 남아 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정부와 기업으로 대별되
는 조직과 개인의 역할상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주어야하는가가 중요하
다. 새로운 상황하에서 새로운 균형이 모든 분야에서 요구되고 있는 것
이다. 지식 사회라는 본질을 가지고 이미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와 있
는 미래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원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와 체제의 변화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제와 내각제 사이의 우열은 없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 뿐
이다.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리한 제도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완벽한 제도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제도와 체제 속에 숨어 이를 움직이는 정신이다.
어떤 제도든 정신이 죽으면 껍데기만 남게 된다. 그리고 그 제도는 장
점으로 기대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단점만 부각되고 확대되어 무
력한 시스템으로 남게된다.

새로운 균형을 위해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개인 혁명이 필요한 때이
다. 정부가 나서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목청이 터져라고 외치
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정부 역시 정치가라는 이기적 목적에
묶여 사는 개인들의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소거해 버릴만큼 위대한 영혼으로 가득차 있지 못하다.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산적한 국가적 현안 보다 당의 이해가 우
선인 그들 역시 정치가로서 자기혁명이 누구 보다도 절실한 사람들이
다. 논리적으로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 수준에서 머물러야
한다. 만일 우리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어야한다고 믿고 있다
면, 정부는 반대로 우리로 부터 모든 개인적인 것들도 빼앗아 갈 수 있
다는 것도 인정해야한다. 현명하고 좋은 정부를 가지기를 원하지만,
모든 권력을 가진 독재 정부를 바라지 않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정부
는 모든 것을 해 줄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하나의 조직으로서 시민
이 해야할 일이 있고, 또 개인으로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있기 때문이
다. 조직과 개인 사이의 새로운 균형이 또한 요구된다는 뜻이다.

나는 개인의 힘을 믿고 있다. 한국은 과거 독재 정권 아래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하고 하찮은 것이었는가를 체험했다. 그러나 그때 개인은
또 '우리'가 되어 정치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다. 깨
어 있는 사회는 깨어있는 개인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은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그 분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다. 그
러나 감동은 글 속에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오는 것이다. 혼자있는 시
간을 잘 보낸다는 것은 수행을 업으로하는 스님들에게도 어려운 것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은 무너지기 쉽다. 법정 스님은 혼자 있을 때를 경계
하여 대나무가치를 다듬을 때가 있다고 한다. 깨어있고 싶어서이다.
어떤 분야에 깨어 있는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면, 나는 많은 위로를 받
는다. 정신이 죽으면 인간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한 개인으로서 나는 다른 사람들의 손에 내 행복을 걸고 살
았다. 그리고 상황이 나를 지배하도록 놓아두었다. 세상은 언제나 내
게 잘 풀리지 않는 스트레스였다.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상의 관행을 따라왔고, 그 속에서 분개하고 또 우울해했다. 언
제나 일상에서 부터 떠나가려고 생각했지만 그 속에 다시 눌러 앉곤
했다. 모든 사람이 그저 그렇게 하찮은 일에 웃고 울며 살아 가는 것이
려니 했다. 꿈은 꿈이고 현실은 현실이어서 그 둘은 언제나 다른 세상
에 속해 있어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날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 처럼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몰입한 적도 없고, 기여한 것도 없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
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도 함께 느끼게 되었다. 아,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나에게 아직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이 아직 남아 있구나. 다행이다.

나는 나에게 몇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하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도 나를 버리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위대한 일을 느끼는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에너지이
다. 살아있지 않고서는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둘째는 오직 하나의 일을 위해 웃고 우는 것이다. 나는 인생이 무엇
을 이루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저 사는 것이
다. 그러나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가 보지 못하는 여정으로
남는다. 그 길을 가며, 다른 길의 모습을 그리워 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선택은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여행은 어디에 도착하는 것
이 아니다. 그것은 기차 안이고, 거리며, 만난 사람들이며,골목 속의 주
점이며, 산이며 바다이다. 내가 선택한 여정을 따라 보고 느끼며 그때
그 장소의 숨결이 되어 가는 것이다.

셋째는 하루 하루를 결정의 단위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 어
제의 내가 아니다. 또한 내일은 그저 오늘의 연속이 아니다. 오늘은
언제나 '결정의 순간'(The Moment of Decision)이다. 하루 하루 살다
보면, 일년이 되고 평생이 된다. 시간은 언제나 지금으로 이루어져 있
다. 과거를 잊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과거
에 얽매이면, 미래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지금은
개혁의 시간이고 혁명의 순간이다. 변화는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끊임 없는 균형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이다.

나는 이제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고 싶다. 그것
은 일상에서 부터 시작하라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부터 시작하
라고 권하고 싶다. 일상을 부수지 않고는 새로운 일상이 주어지지 않는
다. 일상이 바뀌지 않는 개혁은 실패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먹거리와 잠자는 습관을 바꾸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단식이다.
휴가를 오래 얻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포도 단식을 권하고 싶다. 단식
은 두가지의 믿음으로 부터 시작한다. 하나는 정화 작용을 통해 자연
적인 자생력을 우리 몸에게 되돌려 준다는 믿음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
은 정신에서 온다는 믿음이다. 이 믿음에 동의하는 사람은 해볼만 하
다.

언제나 우리는 자신을 돌아 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늘 다시 시
작해야할 모멘툼을 필요로 한다. 여행도 좋다. 그러나 일상으로 부터
몸을 떠나 보내는 것만으로 다시 시작할 수는 없다. '과거의 나'는 장소
의 이동과 관계없이 늘 나를 따라 다닌다. 몸과 마음과 습관을 함께
떠나 보내야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사이의 인과율을 바꾸어 주
기 위한 단절과 새로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균형을 위한 매우
단호한 조처를 스스로에게 취할 수 있어야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므로 1년 전과 똑같은 자신을 발
견한다면 1년 동안 죽어있었다고 생각하라. 어제와 똑 같은 생각을 하
고 있다면 주어진 24시간은 죽은 시간이었다고 여겨라. 변화는 살아있
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상황의 희생자가 아니다. 우리가 상황과 미래
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인생은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IP *.208.140.138

프로필 이미지
2015.07.09 22:22:03 *.212.217.154

변화,

자신으로 부터,

지금 부터,

여기서 부터,

시작하다.

프로필 이미지
2018.09.04 11:44:08 *.212.217.154

부패한 현실조차

그 곳에 발 디딘 우리들이 외면하지 않을때에

그 변화가 가능한것이겠지요.


약 20년이 지난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 '적패'를 청산하는 여정이 진행중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방해하는 기득권세력의 반발과 

진보세력에 대한 분열공작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후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게 모두가 그 변화에 힘을 합해야할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지금의 문재인정부를 적극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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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3 꿈과 별들의 시대(1999.12) [3] 구본형 2002.12.25 4680
102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 - 자유와 책임 [2] 구본형 2002.12.25 5692
101 인사관리의 의미 [2] 구본형 2002.12.25 4741
100 하고 싶은 일을 찾으면 40대에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다(1999.11) [2] [2] 구본형 2002.12.25 37061
99 시간을 벗삼아 ... [2] 구본형 2002.12.25 4852
98 헌신적인 반대자가 되라 [2] 구본형 2002.12.25 4621
97 자기 설득(1999.겨울) [2] 구본형 2002.12.25 4868
96 바람의 이야기를 들으려면 .... [2] 구본형 2002.12.25 4741
95 자기혁명의 지도를 만들어라 [3] [8] 구본형 2002.12.25 6616
94 중기 기업인을 위한 몇가지 제안(1999.7) [2] 구본형 2002.12.25 4648
93 21세기 항해를 위한 '십자지르기' [2] 구본형 2002.12.25 4634
92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다 [2] 구본형 2002.12.25 4789
91 고정관념 벗기(1999.4) [2] 구본형 2002.12.25 4664
90 사생활 키워줘야 기업도 큰다 [2] 구본형 2002.12.25 4608
89 자신의 강점을 찾아내는 법 [2] 구본형 2002.12.25 5947
» 이땅에 사는 나는 누구인가?(1999.1) [2] 구본형 2002.12.25 4773
87 '생각하는 방법'의 핵심은 한 번에 한 측면만을 본다는 것 [3] 구본형 2002.12.25 5375
86 좋아하는 일의 힘 [4] 구본형 2002.12.25 6220
85 아직 늦지 않았다(1998.8) [3] 구본형 2002.12.25 4793
84 변화는 어리석은 일관성을 깨는 것 [3] 구본형 2002.12.25 6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