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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3일 15시 30분 등록
국민일보 오피니언 - 자연과 인간 (1999, 12월 24일)

늑대는 사악하다. 그러므로 세상의 늑대를 다 없애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래서 미국의 한 젊은 산림청 직원은 평화로운 늑대 가족에게 라이플을 쏘아 대었다. 늙은 늑대가 쓰러졌다. 그는 늙은 늑대에게 다가가 그 눈에서 푸른 불꽃이 사라져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늑대의 눈 속에서 무언가 그가 모르는 새로운 것, 즉 산과 늑대만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일을 한번도 잊을 수 없었다.

자연 속에는 산과 늑대만이 알고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리고 늑대가 죽음으로 그것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의 사랑도 사라진다. 사라지지만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직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우리가 살다가 떠나더라도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아이들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남겨 놓을 수 있어야한다. 21세기는 그러므로 틀림없이 환경의 세기이다.

그러나 환경에 관한 한 우리는 낙관적이기 어렵다. 한 예를 들어보자. 인간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는 생명공학은 '녹색황금'이라고 불리운다. 독점적 유전자 조작 기술은 엄청난 부를 가져다준다. 그러나 이것은 늘 안정성의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제레미 리프킨은 유전자 조작을 '생태계를 대상으로 한 룰렛 게임'이라고 부른다. 돈은 가까이에 있고 우리가 망하는 것은 먼 후일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는 먼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겨우 70-80년을 사는 인간의 본성 자체가 멀고 불확실한 문제는 풀 수 없게 하는 지도 모른다. 결국 재난이 닥쳐오는 그때 살아 남은 사람이 치루어야 할 비용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이것은 '한 세대의 부가가치를 위해 다음 세대의 생태계를 훼손시키는

파우스트의 거래'라고 불리운다.

자연을 피폐시키지 않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원료의 공급처인 자연으로부터 덜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만들어 놓은 재화를 적절히 분배함으로 낭비를 줄이는 것이다. 더 이상 자연은 원료의 공급처이며 쓰레기 처분장에 불과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유감스럽게 자본주의는 분배에 관한 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한 예로 빌 게이츠는 개인 재산이 약 9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미국의 하위 19%에 속하는 사람들은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 이들 재산의 합은 마이너스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 혼자 가지고 있는 재산은 미국의 하위 49%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합한 것과 맞먹는다. 그런데도 자본주의의 분배구조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 분배 구조가 악화되면 자연의 자원 역시 균등하게 나누어 질 수 없다.
한 쪽은 늘 너무 많이 낭비하고 한 쪽은 늘 모자란다. 분배의 불균형은 그래서 자연으로부터 필요 이상을 빼앗아 온다. 오염 유발자에 대한 과세, 지구의 자정능력에 대한 공동 재산권 설정등 제도적 보완을 통한 조정에는 한계가 있다. 긍정적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부자들의 마음의 혁명이 절실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이 세대의 절제와 근신이 절박한 것이다.

또 하나는 생태효율성이 높은 기술력을 통해 자연으로부터 조금 가져오고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절약은 자연의 부담을 덜어준다. 예를 들어 독일 라슈테트(Lahstedt) 공동체는 갈대를 이용하여 하수를 자연 정화한다. 경제적 연료전지의 개발은 에너지 효율과 매연 예방에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업차원의 혁신적 노력이 중요하다. 환경 친화적이라는 것이 곧 21세기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임을 기업들은 명심할 필요가 있다.

칼 융(Carl Jung)은 미래의 재앙은 인간에게서 온다고 경고했다. 인간은 위험한 동물이다. 스스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늑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하다. 그리고 자연처럼 모든 요소를 결합하여 고려하는 총체적 균형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른 종끼리의 유전자 조작은 하나의 과학적 개가임에 틀림없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새로운 생물체가 생태계 전체를 교란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마치 전쟁은 한 국가의 정의이고 자존심이지만 젊은이의 죽음이고 어머니의 통곡인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불가항력적으로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반복했다. 이제 자연에 관한 한 우리는 신의 역할을 겸허히 사양하고, '보존이 곧 혁명'이라는 지혜로운 판단에 이를 수는 없을까? 반성 없이 인류는 장엄한 역사를 가질 수 없다.

21세기의 추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추세가 향해 가는 곳에서 인류는 더 행복할 수 있는 지를 물어야 할 시점이다.
IP *.229.1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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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웅
2006.12.30 07:56:47 *.117.23.244
미래의 모습.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갈 자연의 미래에 대해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으로 인식하고 싶어하는 것이 현실인것 같습니다. 소장님 말씀하신 '보존이 곧 혁명'이라는 생각을 곱씹어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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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연
2008.07.02 21:04:41 *.80.103.5
이 글을 1999년에 쓰셨는데 분명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력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때도 자연과 환경에 대한 문제가 많은 학자들과 단체에 의해 주장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석유만 보더라도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유가가 배럴당 10.72달러였지만 현재까지 사용량은 늘어만가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인류는 대체에너지, 자연에너지에 대한 대안을 적극적으로 마련하지 않았습니다(자본주의 특성상). 특히, 한국은 더더욱 그렇지요. 작금의 현실로 인해 기술적 진보도 이루어지겠지만 지구를 빌려쓰고 있는 우리들의 가치관도 바뀌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얼마 없다는 생각이 머리 한 켠을 쥐어잡고 흔드는 것 같습니다. 과연 전 인류와 기득권에 얽혀있는 자본주의를 설득하면서도 지구를 구원(곧, 인류의 구원)할 수 있는 방법과 명분은 무엇일까요? 기술적 진보? 가치관의 변화? 제3의 에너지?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나 인간은 이기적인 망각의 생물이지 않을런지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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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1 14:10:28 *.212.217.154

자연과 인간,

보존과 개발,

보수와 진보,

빛과 그림자.

빛이 없다면 그림자도 없겠지요,

그 균형을 어디로 잡아가야하는가

항상 고민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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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14 11:12:55 *.10.131.30

18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질문이네요. 

트렌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트렌드가 향하는 곳에 

우리 인류가 더 행복할 수 있을런지에 대한 물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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