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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4일 14시 55분 등록
국민일보 오피니언 (11월 19일) - 피이드백 장치 절실하다

나아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이 바로 진보이다. 인류가 꿈꾸어 온 것이기도 하고 개인이 일상을 살며 바라는 것이기도하다. 그것은 그러나 앞만 보고 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발전의 이데올로기 속에 숨어 있는 잔인한 실상을 발견하고, 뼈아프게 반성하는 것이 곧 진보이기도 하다.

때로는 되돌아 가야한다. '돌아갈 때가 되어 돌아가는 것'도 진보일 수 있고, 환경 문제처럼 '보존이 곧 혁명'이기도하다. 정신은 이렇게 하여 확장되는 것이며 사회적 제도 역시 이런 자성과 반성을 통해 내실화 된다.

좋은 사회적 반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한 짓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씨랜드 화재 사건과 동일한 복제판이 인천에서 재발한 이유는 우리 사회의 반성이 일회적이며 전시적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 아닌 것만으로 그나마 다행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회는 아무런 비전이 없다. 룰렛 게임처럼 불운한 차례가 오면 당할 수밖에 없다.무기력한 수동성은 늘 사건을 얼른 해결하기만 바란다. 희생양을 만들고 단속을 강화하고 법석을 떨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느슨해져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사건이 터질 때까지 어찌 어찌 견디게 된다.

제도의 진보는 반드시 적절한 피이드백 시스템(feedback system)을 필요로 한다. 체계적 개선에는 체계적 방법이 필요한 것이다. 한 예를 들어보자. 나는 퇴근길에 자주 동네 수퍼마켓에 들린다. 빵도 사고 우유도 사고 술도 한 병 산다.
계산대에
오면 점원이 '봉지를 드릴까요?' 하고 물어 본다.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추가로 20원 씩 낼 때마다 나는 기분이 나쁘다. 바보가 된 기분이다. 왜 그럴까?

환경은 생존이 달린 주제이다. 먹고살기 힘들 때는 아무도 돌보지 않지만 눈 깜박할 사이에 우리를 살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갈 것이다. 20원을 받고 나중에 가져오면 돈을 환불해 주는 착상은 아마 플라스틱 봉지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일회용품 사용이 얼마나 줄었을까? 20원 씩 내어 모아진 돈은 누가 가지는 것이며, 그것은 환경의 보호를 위해 어떻게 재투자될까? 이 방법은 얼마나 유효한 방법일까? 이 제도의 영향을 받게되는 국민들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 제도의 내부에 피이드백 시스템이 있다면 이런 질문들에대답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 모든 전시행정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 안에 피이드백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입은 있지만 귀는 없다.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으려하지 않는다. 한 제도가 만들어 질 때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유효성을 평가하고 개선하기 위한 피이드백 장치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제도는 기껏해야 100점 만점에 30점을 넘지 못한다.
이렇게 점수가 박한 이유는 지속적인 개선이 없는 제도는 죽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결국 유효성이 떨어지게 되고 지켜지지 않는다. 법으로부터 강제력을 부여받은 제도가 실제와 다르게 되면 발목을 잡는 규제에 불과해 진다. 규제를 피해가려면 부패와 유착이 만연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또 터지고 결국 또 다른 제도를 만들어 내겠지만 피이드백 장치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이 충분히 규정되지 못한 상태이고 근거가 계량화되어 있지도 않다. 객관적 자료가 부족하면 이해집단 사이에서 흔들리고 절충되어

또 다른 졸속 대증요법을 만들어 내게 된다. 악순환은 그래서 반복된다.
정신병에 대한 정의 중의 하나는 '같은 일을 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 이다. 피이드백 시스템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반성하고 개선하지 못하는 사회는 바로 사회적 정신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제도의 내부에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피이드백 장치를 내장 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피이드백 장치는 제도의 개선과 존속을 결정하는 센서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상징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 극단의 시대를 살았던 20세기의 우리가 새로운 천년기에 번영하고 인류에게 기여하기 위해서는 20세기의 실패를 존중하고 그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21세기에 진정한 진보의 장을 열어 가는 자세일 것이다. 편견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한 제도를 보고 한 사회를 볼 때, 우리는 진보에 대한 해답에 이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 지금 필요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진보의 또 다른 얼굴,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이다. 그리고 숨을 길고 깊게 쉬어보는 것이다. 좋은 준비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IP *.208.14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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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웅
2006.12.30 08:03:07 *.117.23.244
덧글을 달고 있는 시점과 글이 쓰여진 시점에 몇년의 시간 흐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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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대연
2008.07.02 21:42:54 *.80.103.5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본질을 너무 정확하게 말씀하셨다고 생각됩니다. 저도 나라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소장님께서 말씀하신 사항을 중심에 넣어놓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봐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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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4 17:13:25 *.212.217.154

새상은 정말로 진보하는것일까?

하는 질문을 하게하는 요즘입니다...

십 수년전의 이 글에서 부터 지금의 이 사회는 얼만큼이나 진보하였는지...

혹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는지...

얼마나 더 긴 호흡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답답한 세상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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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22:26:33 *.212.217.154

피이드백이 필요한 것은

개개인에게도 마찬가지 이겠지요.


요즘 계속 나태해지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제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달라진 미래를 바란다면

선생님 말씀처럼 '정신병' 초기증상 이겠지요.


다시 무뎌진 마음을 잡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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