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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일 12시 24분 등록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Arbeit macht frei) 뮌헨에서 북서쪽으로 기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다카우 나치 포로수용소 정문에 쓰여진 글귀다. 일만 있고 삶이 없으므로 그곳은 가장 참혹한 곳이 되었다. '살고 사랑하고 일하는' 아름다운 균형이 바로 삶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 균형과 상생에 이를 수 있을까 ?

기업은 인간의 유용함에 주목한다. 즉 그 직원이 인재인지 아닌지 어떤 재능이 있는 지 얼마나 창의적이고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결국 그리하여 얼마나 조직을 위해 기여하고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에 관심을 갖는다. 사람의 쓸모에 따라 직원을 평가하는 곳이 바로 기업이다. 그러니 늘 이해관계에 민감해야하고 강한 노동 강도에 노출되어야하고 성과의 달성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직장인의 운명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그런 조건 하에서는 오래 견딜 수 없다는 점이다. 정신의 긴장을 풀을 곳이 있어야 하고, 몸이 쉴 곳이 있어야 하고, 쫒김의 무의식으로 부터 평화로울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쓸모, 즉 유용성이 아니라 자신의 '있음' 즉 존재만으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일상적 삶 속에 꼭 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천국이 있을까 ? 없다.

그건 곳이 없다면 그런 천국의 대체물이라도 혹시 존재할 수 있을까 ? 가장 유력한 대안이 바로 가정이다. 여전히 해야할 일과 역할로 가득 차있지만 사랑이 흘러나오는 곳, 우리가 부모가 되고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바로 그곳 말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상처를 받는 곳이기도 해서 앙드레 지드는 '나는 가정을 증오한다' 라고 외치기도 하지만 인간은 여기마자 놓치게 되면 갈 곳도 쉴 곳도 없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가정을 '존재가 드러나는 곳' 이라고 정의해 두었다. 가정에서 만은 유용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있음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유용함을 추구하는 직장에서 받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고, 다음 날 다시 일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직장과 가정은 잡아당겨 긴장하게 하고 풀어서 느슨하게 하면서 삶의 탄력을 유지하게 하는 상생의 개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직장과 가정은 너무도 자주 부딪힌다. 어느 회사에서 올해의 직원을 시상했다. 그 빛나는 자리에 그 직원의 아내도 초대받았다. 그리고 그 직원의 아내에게 소감을 말해 보라고 했다. 마이크를 잡은 아내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올해의 직원으로 뽑아 주지 않아도 불평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제발 제 남편을 일찍 좀 보내 주세요. 아이들은 아빠가 필요하고, 저는 남편이 필요합니다." 이 회사의 경우는 회사와 가정이 분리되어 있고, 일이 가정을 압도하는 경우다. 성공하기 위해서 가정을 희생할 수 밖에 없도록 몰아간다면 그곳은 직장이 아니라 다카우 포로수용소에 지나지 않는다. '있음만으로 존중되는 건강한 가정'이 없다면 유용성으로 평가받는 직장 인간은 꿈을 꿀 수도 쉴 수도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도 없다. 삶의 몰락을 거칠 수 밖에 없다.

'노자'(老子) 속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혜자가 장자를 찾아와 '자네 말은 하나도 쓸모가 없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자가 웃으며 '쓸모 있음'의 함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탁월한 묘사를 해 두었다.

"그런가? 그러나 무용을 알아야 유용을 말할 수 있네. 대지는 한없이 넓지만 사람이 걸어 갈 때 필요한 것은 그저 발을 디딜 수 있는 넓이만 있으면 충분하네. 그렇다고 그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땅을 황천에 이르기 까지 깊이 파 버리면 사람이 밟고 있는 그 땅이 쓸모가 있겠는가 ? "

마찬가지다. 회사는 직원의 유용함을 쓰지만 그 유용함만을 따로 떼어 가져다 쓸 수 없다. 대지가 있어야 걸을 수 있듯이 사람이 있어야 그 유용함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유용함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 버리면, 발을 딛고 있는 땅만 남기고 그 주위를 황천까지 파냄으로써 그 유용함마저 쓰지 못하게 되는 것과 같다. 가정은 바로 직장의 무용의 용(無用之用)이라는 대칭적 보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가정의 지원과 응원을 받지 못하는 기업은 좋은 기업이 될 수 없다.

코카콜라 사의 더글러스 테프트 회장의 신년사가 우리를 끊임없이 감동시키는 이유를 상기하자. "인생은 공중에서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이다. 각각의 공은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영혼이다. 일이라는 공은 고무공이어서 떨어 뜨려도 다시 튀어 오른다. 그러나 다른 4개의 공은 유리로 되어 있어 떨어뜨리면 긁히거나 깨지고 흩어져 다시는 전과 같을 수가 없다"

그렇다. 그러므로 유리 공들에게 더 신경을 쓰자. 바로 이런 배려가 직원뿐 아니라 그 가족 까지도 회사를 더 아끼고 사랑하게 만든다. 바로 이런 회사가 '가장 존경 받는 기업'이 된다. 사례가 입증한다. 가정의 지원을 회사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일상의 업무 중에서 일과 가정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면 가정을 선택하게하자.

(SK 사보 기고문 - series 연속 기고문)

IP *.160.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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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11.05.04 16:19:40 *.169.188.35
"가정에서 만은 유용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있음 그 자체로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내를 그리고 아이들을 또 더욱더 사랑해야겠습니다. 무엇인가를 잘했기에 또는 무엇인가를 나에게 주었기에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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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택
2011.05.20 17:25:29 *.138.34.60

구본형 선생님 칼럼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제가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들을 항상 글로써 너무 잘풀어 주셔서 제생각 정리하는데 또 사물과 세상을 넓게 보는데 칼럼 만으로도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에 얘기하신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장자에서 나온 이야기 아닌가요? 저도 요사이 장자를 보고있는데 노자가 장자보다 대략 사오백년 전 시대의 인물로 알고 있는데 노자에 장자와 혜자의 대화가 나왔다는것이 좀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저도 확실하지 않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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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4:34:23 *.212.217.154

직원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훌륭한 리더의 자격이 없는거지요.


'일과 가정중 한가지를 택하라면 가정을 택하라.'

항상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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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8 11:44:34 *.212.217.154

이제는, 단순히 생산성만 높은 조직과 회사는

그 지속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이

여러가지 사례로 증명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워라벨'

그것이 바로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것이겠지요.

그것은 조직과 회사의 크고 작음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작은 회사라 하더라도 그 조직과 리더가 가지고있는 철학의 문제이겠지요.


좋은 철학과 문화를 가진 조직이

장기적으로 성장하여 존속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 세상에서 선생님의 글은 좋은 등불이 되어줍니다.

늘 감사해 하며 글을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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