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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6일 10시 20분 등록

  로마는 심장을 뛰게 하고 아시시의 고요는 그 심장을 쉬게 한다. 피렌체는 오백년 꽃의 향기로 우리의 정신을 취하게 만든다. 지금 뭐하고 싶어 ? 잠깐의 침묵이면 된다. 사람들 열 명 중 일곱 여덟은 이구동성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왜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할까 ? 나는 감탄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난다. 우리의 영혼은 호기심 가득 낯선 것에 다가서고 고대의 유산에 마음껏 경탄하고 인류 최고의 손길에 찬사를 보낸다. 건조한 땅에 비가 내리듯 우리의 가슴은 젖어든다.

여름휴가가 막바지다. 대부분 어딘가 다녀왔을 것이다. 휴가가 끝나가는 바로 지금이 우리의 휴식과 여가 그리고 그 꽃이라 할 수 있는 여행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기에 적합하다. 기억이 싱싱할 때 사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우리가 여행을 좋아하는 까닭은 삶의 현장이 장기판에서 바둑판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장기나 바둑이나 기본적으로 격자처럼 생긴 판 위에서 말을 두어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그러나 이 놀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장기의 말은 이미 그 지위와 역할이 정해져 있다. 졸은 한칸 씩 밖에 움직이지 못하지만 차는 마치 천군만마 속을 질주하는 장수처럼 직선이면 어디나 쳐 올라 갈 수 있고 포는 다른 말을 넘어 적을 겨냥한다. 정해져 있는 배역, 한정된 임무는 일상의 우리가 작동하는 기본 원칙이다. 기획실 차장, 혹은 영업 사원, 이것이 회사 내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아버지, 이것이 가정에서 나에게 주어진 배역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나는 이런 주어진 배역과 임무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된다. 마치 바둑돌처럼 말이다. 바둑돌에게는 미리 정해진 배역이 없다. 누구나 그저 한 개의 돌일 뿐이다. 어떤 돌은 쓸모없는 자리에 놓여 있기도 하고 어떤 돌은 결정적인 자리를 점함으로써 판의 승부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돌이든 이미 놓인 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모든 돌은 평등하며 연결되어 있다. 여행은 정해진 배역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장기판 위의 내가 하나의 자유로운 돌로 아무런 계급도 없이 삶의 판 위에 던져지는 것이다. 오직 신의 손길에 의지하여 그저 한 인간으로 인간들 사이에 섞이는 것이다. 이 무명성(無名性), 이것이 바로 여행의 자유인 것이다. 신기하게도 평소에는 이름을 얻어 유명해지기를 바라다가 느닷없이 그 각박한 경쟁의 구도에서 벗어나 홀가분해지는 여유가 찾아온다.

유연한 관절이 가장 기능적이며, 들이 쉬기 위해서는 숨을 내 쉬어야 한다. 늘 긴장한 근육은 통증을 유발할 뿐이다. 이것이 우리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일이 있으면 휴식이 있어야 하고, 긴장이 있으면 풀어주어야 한다. 여유란 영혼과 육체가 들이 쉬기 위하여 천천히 내쉬는 과정이다. 삶의 절반이다. 늘 잊고 있지만 여유의 경영이란 바로 바쁜 우리가 종종 잊고 있는 이 절반의 삶의 경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유를 경영하는 무수한 방법이 있다. 그러나 원칙은 간단하다. 다음 네 가지 여가경영의 원칙을 일상에 적용해 보자.

첫째는 쓸모없음의 쓸모있음을 찬양하라. 이 대목에 이르면 나는 늘 장자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걸어 갈 때는 발자국이 찍힌 땅 만큼만 필요하다. 그러나 그 만큼만 남기고 나머지 주위의 땅을 전부 파내어 절벽을 만들어버리면 그 누구도 그 위를 걸을 수 없다. 그러니 발자국이 찍히는 필요한 땅은 주위의 필요 없는 땅이 없다면 쓸모없게 된다. 이것을 '무용의 용 (無用之用)'이라고 말한다. 쓸모를 따지는 것이 경제이고, 존재를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다. 여가의 경영이란 나의 쓸모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끌어안아 위로하고 사랑해 주는 작업이다.

둘째는 나의 지금에 몰입하라. 오직 '지금'만 생각하라. 불안과 염려의 대부분은 미래로 부터 온다. 이 일이 나의 성장에 어떤 좋은 영향을 줄지 생각하지 마라. 오직 지금 여기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 인생은 무수한 '지금들'로 이루져 있다. 그 지금들이 훌륭하면 위대한 인생을 산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숨쉬고 있는 나, 지금 웃고 있는 나를 사랑하라. 카르페 디엠 Carpe Diem ! 나는 지금 여기 살아 있다네.

셋째는 때를 놓치지 마라. 종종 사람들은 '지금은 일하고 나이들어 한가해 지면 여행을 가지. 그 땐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을 테니까'라고 말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여행은 사랑과 같다. 젊을 때의 왕성한 사랑 같아서 늙고 시들어 모처럼 떠난 여행은 그저 힘들고 덤덤할 뿐이다. 살까말까 망설여 질 때는 사지 마라. 사고나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갈까말까 망설여 질 때는 가라. 체험은 꼭 그때 해야 제 맛이 난다. 가슴이 두근거릴 때 떠나야 한다. 잿빛 심장으로 낯선 거리를 걷지 마라.

넷째는 감탄하고 경탄하라. 세느강을 보고, '한강 보다 작네' 라고 말하지 마라. 비교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저 눈에 들어오고 코로 맡아지고 손에 만져지는 그것, 그곳, 그때에 경도 되어야 한다. '작은 들꽃, 자세히 보니 아름답다 너도 그렇다' 바로 이 시인의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기억하자. 이 세상에는 기적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감탄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를 잊고 내 속으로 우주가 스며들게 하라.

한국인만큼 휴식과 여가를 전투적으로 쓰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빨리빨리 앞으로 달려가는 우리는 가장 스트레스가 높은 사람들이 되었다. 여름 찌는 더위 속에서 주로 이루어지는 휴식과 여행이 앞만 보고 달리는 직장 속에서의 관성으로 한 곳이라도 더 봐야하고, 1키로라도 더 달려야 하는 전투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자.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부동(不動)과 무위(無爲)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일깨워주자. 그저 우리의 근육을 생각하자. 힘을 주었으면 이내 느슨하게 풀어 주어야 함을 기억하자. 그저 우리의 호흡을 생각하자. 들이 쉬면 이내 곧 내 쉬어야한다. 그러면 일과 휴식이 서로 어떠해야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경직과 이완, 들숨과 날숨, 바로 그것이다.

(포스코를 위한 원고, 3회,  2011년 8월)

IP *.160.3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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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22:49:13 *.37.102.58
스마트폰으로도 눈어지럽지않고 쉽게읽을수있게

문장폭좀 줄여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글자크기도 키워주시고요.
선생님 글을 좋아하는 독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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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5 11:24:27 *.212.217.154

1. 무용의 용

2. 지금에 몰입, 집중하기

3. 여행은 가슴이 움직이는 그때 가기 (미루지 않기)

4. 마음을 열고 작은것에 감탄하기 (연습이 필요할수도)

여행과 같이, 삶에서 일 이외의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짧은시간이라도, 푹 쉬며 근심을 잊는 훈련이 필요하지않을까 싶습니다.

오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발견해봅니다.

바로 이 글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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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5 11:43:28 *.212.217.154

작은일에도 감사하는법을 연습한다면,

하루하루가 모험이고 여행이 될 수 있겠지요.

오늘 하루를 그저 주어진 하루가 아닌,

특별히 선물받은 하루로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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