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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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16일은 내 세례식이었다. 종교의 본질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제자 몇이 와서 기타치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은주가 바이올린을 켰는데, 삑살이 났다. 아주 귀여운 삑살이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경건해질 뻔 한 세례식이 유쾌해졌다. 구름 사이로 햇빛이 찬란해 지듯 우리 속으로 신의 웃음이 퍼져나갔다. 나는 근엄해 지거나 경건해 지기 위해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다. 삶은 기쁨이니 나는 웃음과 기쁨과 찬란한 인생을 위해 내 안에 신을 모시게 되었다. 하느님은 빛이시고 사랑이시니 가는 곳 마다 기쁨이리라. 눈오는 날 포도주를 마시다 제 흥에 겨워 세례를 받겠다했으니 신의 섭리가 얼마나 아름다우신가.
나는 거부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익을 대로 익은 순간이 좋다. 운명 같은 것 말이다. 종교란 신을 향해 마주 서는 것이다. 나는 이제 신을 향해 서게 되었다. 그동안 나도 다른 먹물들처럼, 더 분명한 기준, 객관적으로 확실한 것것이 나를 설득하여 믿을 수 밖에 없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런 '눈뜬 믿음' 같은 것은 없다. 확실한 다음에 떠나는 것은 모험이 아니다. 나는 인생의 모험을 원했다. 믿음이란 믿을 수 없을 때 믿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의 시작이다. 깊은 인생을 향한 모험은 오직 믿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얕은 인생을 버리고 깊은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꿈꾸어 보았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다음과 같으리라.
집착하지 마라
가지려 하지 않으면 매이지 않으니
그때 자유다.
산들 바람이 되는 것이니 그 따뜻한 봄날
날리는 벚꽃잎처럼 웃어라.
가장 먼저 자신의 모자람을 웃음의 대상으로 삼아라.
그러면 언제 어디서나 웃을 수 있다.
모두 내어줘라.
가진 것을 다 쓰고 늙고 빈 가죽포대만 남겨라.
재주가 끝에 닿아 더 나아갈 수 없을 때 절망하라.
그러나 신에게 절망해서는 안된다.
신은 무한이시니,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날개를 주실 것이다.
까보 다 로까의 절벽을 기억하라.
바다로 뛰어 내리는 자가 신대륙을 향하게 되지 않았는가 ?
받은 것이 초라한 것이라도 평생 갈고 닦아라.
영웅의 허리에 채워진 빛나는 보검이 되리라.
술과 구라를 즐기되 항상 혀를 조심하라.
어느 장소에서나 어느 주제에 대해서나 할 말은 다하는 자는
불행한 자니
말하고 싶을 때 마다 세 번을 더 깊이 들어라
특히 나이가 들어서는 혀를 잘 묶어 두어야 한다.
고약한 늙은이 옆에는 사람이 없으니 외로움이 끝없으리라
배워서 알고 있는 것을 다 쓰지 못하고 가는 것은 서운한 일이나
친구는 들어주는 사람 곁에 모이는 것이니
하나를 말하고 둘을 들어라
더 많이 노래하라
찬미하는 자는 영혼이 깃털 같으니
새가 하늘을 나는 이유는 노래하기 때문이다
신은 노래 부르는 자를 더 가까이 두고 싶어 하신다
더 많이 춤을 춰라
두 손을 높이 쳐들고 엉덩이를 흔들고 허리를 돌려라
육체의 기쁨을 축하하라
땅의 기쁨을 위해 몸을 주셨으니
쓰지 못할 때 까지 춤으로 찬양하라
온 몸으로 슬픈 단명을 사랑하라
나를 지배하는 세 가지 열정이 있으니
세상을 따뜻한 미풍으로 떠도는 것과
샘 솟듯 멈추지 않는 사랑과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하는 축제에 대한 그리움이니
나는 세상이 잔치이기를 바란다
고난은 사라지고
사위어가는 모닥불 옆에서
기나긴 인생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가장 초라한 모습 속에 감춰진 흥미진진한 긴 여정을 따라나서고
가장 부유한 자의 외로움과 후회를 위로하고
지난 사랑의 이야기를 눈물로 듣기를 좋아한다
그리하여 햇살이 쏟아져 눈을 뜰 수 없는 빛나는 바다를
하얀 돛배로 항해하고
달빛 가득한 여름 바다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헤엄을 치고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이 치는 날
촛불을 밝히고 포도주를 마시고
흰눈이 쏟아질 때 모자를 쓰고
설산을 걸어가리라
가까운 사람들과 더불어 낯선 사람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내 안에 더 많은 하느님을 품고
하늘에 가득한 별을 쳐다보리니
이것이 내가 꿈꾸는 일이다
이런 것들은 신이 없어도 가능한 일이 아닐까 ? 아니다.
자신에 대한 절망과 체념없이는 신에게 나아갈 수 없다.
'나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하오나 당신께 절망하지 말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는 늘 이래야한다.
구본형 바오로 너무 멋지신데요. 정말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선생님~~^▽^//
3년전 회사에서 제일 친했떤 상담심리사 언니가
수녀님이 되던 날 꽃을 들고 , 기쁨 반 슬픔 반인 기분으로
성당에 갔었는데 그 때 성당 이름이 미아리에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였어요.
막 달레나 라는 세례명을 듣고,
언냐~~~ 가끔 술 막달리더니..
막 달레나가 되었구나? ? 라는 말에 주변 사람이 빵 하고 터졌지요.
아까 방금 선생님 답글보고 제가 빵터진 이유입니다. 헤헤 (구라쟁이....구라빨..ㅎㅎ)
이제 새로태어나신 선생님의 인생에 더 많은 찬란하고도 즐거운 노래가
흐르길 기원 드리겠습니다. *^^* 안녕히 주무세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트레 폰타네 순교 성당에 바오로의 참수 장면이 부조되어 있고,
성당 안 제단에 참수된 바오로의 머리 조상이 덩그렇게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특히 걸출한 여제자들이 많았다는구나. 가장 아꼈던 공동체였던 필리피 교회의 창시자도 리디아라는
최초의 여제자였고, 그의 제자로서 최초의 여성 순교자가 된 성 테클라의 이야기도 대단하더구나.
훌륭한 스승은 역시 훌륭한 여제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창용아. 너도 부러워 말고
시시한 남자들 대신 걸출한 여제자를 잘 키우 도록해라.
그러러면 전화 질문도 제때에 잘 받아 주고 문자에도 재빨리 답해주면 좋아한다. 너도 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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