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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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나는 알베르 까뮈를 읽었다. 태양을 그리워했기에 비를 미워하며, 그러나 비가 있기에 태양을 더 그리워하며 읽었다. 물론 나는 태양이 너무 뜨거운 날, 그리하여 내 밭의 채소들이 신음할 때, 이글거리는 태양을 미워하고 비를 그리워 한다. 모든 지속되는 것들, 날씨만한 변덕이 없는 것들은 심드렁한 것이다.
까뮈는 말한다.
"부정적 사고만큼 예술에 이바지 하는 것은 없다....'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하여' 일하고 창조하는 것, 찰흙에 조각하는 것, 자신의 창조가 미래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의 작품이 여러 세기를 거쳐 내세울 만한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니 못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면서 하루 사이에 자신의 작품이 파괴되는 것을 보는 것, 이것들이 바로 부조리한 사고가 정당화되는 험난한 예지다. 이러한 두 가지 노력을 동시에 하는 것, 한편으로 부정하고 한편으로 열광하는 것, 이것이 부조리한 창조자에게 열리는 길이다. 그는 허공에 색칠을 해야만 한다. "
그렇다. 심오한 사고는 계속 생성되는 과정에 있다. 삶은 다양한 경험과 결합되고 거기서 만들어 진다. 한 인간의 창조는 다양하게 계속되는 모습 속에서 다져진다. 철회하고 부정하고 수정하고 보완한다. 무언가가 지속적인 생성 과정을 멈추게 된다면 완벽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해 내는 창조자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말한다.
" 창조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파격적 증언이다. 그것은 나날의 노력, 억제력, 진리의 한계에 대한 명확한 판단, 그리고 절도의 힘을 요구한다. 그것은 하나의 고행이다. 더욱이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서' 반복하고 발버둥치기 위한 것이다"
나는 오늘 동의한다. 예술이란 작품 그 자체의 중요성 보다, 인간에게 요구되는 적나라한 현실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정신은 삶과 작품의 성숙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계속되어 온 모든 작품은 성숙에 이르는 실패의 수집에 불과하다. 남는 것은 운명이며, 죽음이라는 숙명을 제외하면, 기쁨, 행복, 결국 그 모든 것이 자유다.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