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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19일 05시 28분 등록

   언젠가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내게 남아 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  오늘, 그것을 시작하리라.  그리하여 나는 첫 장면을 만들었다.  쉬엄쉬엄 바람이 천천히 지나 듯,  그렇게 채워가리라.  

1.
  그 남자가 탄 차가 육중한 플라타너스 가로수를 들이 박았다. 그는 목과 척추가 부러져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러나 담가 위에 뉘어져 세찬 등불아래 보이는 그의 얼굴은 몹시도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져 자는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의 이마에는 길게 긁힌 자국이 나 있었다. 좍 그어 놓은 빗금처럼, 그것은 죽음의 서명처럼 이마에 그려져 있었다. 왼손에도 긁힌 자국이 있었다. 긴 침묵 속에서 마음을 추스르던 그의 아내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의 손이, 그 아름다운 손이', 그녀는 고통 속에서 그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그는 겨우 마흔 일곱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 1960년 1월 4일 월요일 오후 1시 55분 상스에서 파리로 가는 7번 국도, 아름드리 플라타너스가 궁륭을 이루는 빌블르뱅 마을 어구에서 일어났다.

  그의 주머니 속에는 미리 사둔 기차표가 들어 있었다. 기차를 탔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친구의 자동차로 파리로 향했다. 죽음은 기어이 그를 찾아 왔던 것이다. 그의 작은 가방은 자동차가 가로수를 들이 받는 충격에 의해 창밖으로 튕겨져나와 길 옆의 밭고랑에 떨어져 있었다. 그 검은 가방 속에는 그가 죽기 전까지 열중했던 육필 원고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한 번도 다시 손질하지 않은 원고였고, 종종 마침표도 쉼표도 없이 숨가쁘게 펜을 달려 썼기 때문에 읽기도 어려웠다. 사망 사건이 발생한 후, 34년이 지나 이 원고가 출판되어 세상에 나왔다. 그 소설을 이렇게 시작한다.

'돌투성이의 길 위로 굴러가는 작은 포장마차 저 위로 크고 짙은 구름 떼들이 석양 무렵의 동쪽을 향해 밀려 가고 있었다. 사흘전에 그 구름들은 대서양 위에서 부풀어 올라 서풍을 기다렸다가 이윽고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점점 더 빨리 동요하는가 싶더니 인광처럼 번뜩이는 가을 바닷 물위를 대륙 쪽으로 곧장 올라가 모로코의 물마루에서 실처럼 풀렸다가 알제리 고원 위에서 양떼들처럼 다시 모양을 가다듬더니 이제 튀니지 국경에 가까워지자 티레니아 바다 쪽으로 나가서 자취를 감추려 하고 있었다. '

  긴 문장이 골목을 휘감아 오르는 바람처럼, 봄바람 속 휘날리는 여인의 긴 머플러처럼 너울대는 듯, 속삭이는 듯 온몸을 숨가쁘게 감아 오르 듯 엄습해 왔다. 그리하여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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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5.19 06:51:25 *.36.210.66
두근 두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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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9 09:55:57 *.126.210.168
와, 사부님. 묘사가 예사롭지 않으신데요..와...기대기대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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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와 달
2010.05.19 21:49:30 *.233.250.60
시인에서 혹시 소설가로 데뷔?   다음 장을 기다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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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해
2010.05.20 00:36:07 *.67.223.107

삼가 아뢰옵니다.
주인공을 죽이실때에는 죽음 담당에게 신고를 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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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철
2010.05.21 00:07:33 *.186.58.25
오늘, 그것을 시작하리라.. 들이 박았다. 죽었다. 일어났다. 나왔다. 시작한다. 감추려하고 있었다. 왔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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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2010.05.21 07:42:15 *.116.190.222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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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6 17:19:08 *.212.217.154

내게 남아있는 가장 젊은날.

바로 오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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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5 10:50:13 *.212.217.154

찾아보니 묘사하신죽음은 알베르까뮈의 모습이었군요.


천재의 요절만큼 극적인 임펙트를가진 이야기가 또 있을까요,

그의 재능의 크기 만큼이나

그의 죽음이주는 부재의 크기또한 비례하지 싶습니다.

선생님의 빈자리 또한 그러하겠지요...


깊어가는 가을날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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