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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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파스 1 . 2003 년)
얼마 전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 뜰에서 마흔 살이 무색한 한 아가씨의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기분은 공연을 보러 왔다기 보다는 어떤 도전 현장에 배석한 증인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 3시에 시작한 공연은 8시가 다 되어 어둑어둑해져서야 끝이 났다. 다섯 시간을 냉수 몇 잔 마시고 혼자 찢고 까불고 절규하고,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를 번갈아 넘나들며 버텨낸 것이다. 사람들은 흥겨워졌고 축하했고 함께 더불어 즐겼다. 그건 마치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길이기도 했고, 긴 마라톤이기도 했고, 철인 3종 경기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따분한 일상의 도전이기도 했고, 삶의 한때를 송두리째 바친 흥분과 몰입이기도 했다.
비실비실 그럭저럭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 천만에. 인생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쓰라고 늘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지 엄중히 물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준비하고, 이윽고 빠져들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고, 결국 그 일 때문에 살았고, 그 일을 하다 죽는 게 인생이다.
크게 보아 스물이면 힘써 배우고 서둘러 준비하기에 적당한 나이다. 서른이면 배운 것을 현장에서 익히기에 적절하다. 마흔이면 이미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표현하고 즐기기에 적합하다. 쉰이면 그 길에서 완숙해지고 예순이면 간단하고 명료해 진다. 일흔이면 하나씩 버리고, 여든에 다 쓰고 훌훌 떠나면 된다. 그래야 인생이 ‘즐거운 소풍’ 같아지는 것이다. 조금 일찍 죽으면 운이 좀 나쁜 것이다. 더 오래 살면 운이 조금 좋은 것이다. 정말 고약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대로 산 것이다. 떠날 때 참으로 섭섭할 것이다.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지금 이곳에서 시작한다. 오늘 이런 일들이 한번 일어나게 해 보자. 오늘, 일분간 숨을 참아 보자. 그러면 일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이 오늘 하루 내게 1440 번이나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선 흥분하자. 흥분이 안된다고 ? 그러면 또 일 분간 숨을 참아 보라. 호흡이 가빠진다고 ? 됐다. 그러면 흥분한 것이다. 이때, 오늘을 내 인생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생겨나는 날이라고 선언해 보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못했던 일을 오늘, 바로 지금 계획해 보자. 왜 그 일을 그렇게 오래동안 보류해 두었는 지 물어 보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다 쓸어 버리자. 만일 유럽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미루어 두었다면, 오늘 점심 시간에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소개하는 지도책과 안내서 혹은 스페인 역사책을 한 권 사가지고 오자. 그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내 유럽 여행이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권의 책이 쌓이고, 지도를 보고 루트를 정하고, 먹어야할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이 선정되고, 은행에 약간의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 이미 여행은 반쯤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젠가 어느 날 떠나기만 하면 된다. 지도를 보고 수없이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꿈꾸는 일, 그것이 이미 여행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들만이 어느 날 배낭을 메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벌써 알고 있다.
언제가 105 살이나 먹은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단다. “ 오늘, 오늘은 내가 그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아주 새로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날이다. ”
오늘, 지루하게 흐르는 아무 일 없던 불만의 강물이 되기를 그만두고, 갑자기 가던 길을 틀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고, 긴 산그림자가 거꾸로 서고, 절벽에 선 나무들이 절경을 이루는 흥미진진하고 도도한 강물을 꿈꾸어 보자. 그리고 오늘을 그 발원지로 삼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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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균관 명륜당 앞 은행나무 뜰에서 마흔 살이 무색한 한 아가씨의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 기분은 공연을 보러 왔다기 보다는 어떤 도전 현장에 배석한 증인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 3시에 시작한 공연은 8시가 다 되어 어둑어둑해져서야 끝이 났다. 다섯 시간을 냉수 몇 잔 마시고 혼자 찢고 까불고 절규하고,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를 번갈아 넘나들며 버텨낸 것이다. 사람들은 흥겨워졌고 축하했고 함께 더불어 즐겼다. 그건 마치 히말라야의 여러 봉우리에 도전하는 산악인의 길이기도 했고, 긴 마라톤이기도 했고, 철인 3종 경기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것은 따분한 일상의 도전이기도 했고, 삶의 한때를 송두리째 바친 흥분과 몰입이기도 했다.
비실비실 그럭저럭 사는 것이 인생이라고 ? 천만에. 인생은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쓰라고 늘 새로운 하루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침에 일어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왜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는 지 엄중히 물어 보아야 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준비하고, 이윽고 빠져들고,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고, 결국 그 일 때문에 살았고, 그 일을 하다 죽는 게 인생이다.
크게 보아 스물이면 힘써 배우고 서둘러 준비하기에 적당한 나이다. 서른이면 배운 것을 현장에서 익히기에 적절하다. 마흔이면 이미 세상에 자신이 있음을 표현하고 즐기기에 적합하다. 쉰이면 그 길에서 완숙해지고 예순이면 간단하고 명료해 진다. 일흔이면 하나씩 버리고, 여든에 다 쓰고 훌훌 떠나면 된다. 그래야 인생이 ‘즐거운 소풍’ 같아지는 것이다. 조금 일찍 죽으면 운이 좀 나쁜 것이다. 더 오래 살면 운이 조금 좋은 것이다. 정말 고약한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대로 산 것이다. 떠날 때 참으로 섭섭할 것이다.
나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지금 이곳에서 시작한다. 오늘 이런 일들이 한번 일어나게 해 보자. 오늘, 일분간 숨을 참아 보자. 그러면 일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게 된다. 그렇게 긴 시간이 오늘 하루 내게 1440 번이나 주어져 있다는 사실에 우선 흥분하자. 흥분이 안된다고 ? 그러면 또 일 분간 숨을 참아 보라. 호흡이 가빠진다고 ? 됐다. 그러면 흥분한 것이다. 이때, 오늘을 내 인생에서 커다란 변곡점이 생겨나는 날이라고 선언해 보자.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못했던 일을 오늘, 바로 지금 계획해 보자. 왜 그 일을 그렇게 오래동안 보류해 두었는 지 물어 보자.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다 쓸어 버리자. 만일 유럽 여행을 하고 싶었는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미루어 두었다면, 오늘 점심 시간에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을 소개하는 지도책과 안내서 혹은 스페인 역사책을 한 권 사가지고 오자. 그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내 유럽 여행이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권의 책이 쌓이고, 지도를 보고 루트를 정하고, 먹어야할 그 지방 특유의 음식이 선정되고, 은행에 약간의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 이미 여행은 반쯤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언젠가 어느 날 떠나기만 하면 된다. 지도를 보고 수없이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며 꿈꾸는 일, 그것이 이미 여행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들만이 어느 날 배낭을 메고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벌써 알고 있다.
언제가 105 살이나 먹은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단다. “ 오늘, 오늘은 내가 그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아주 새로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날이다. ”
오늘, 지루하게 흐르는 아무 일 없던 불만의 강물이 되기를 그만두고, 갑자기 가던 길을 틀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나가고, 긴 산그림자가 거꾸로 서고, 절벽에 선 나무들이 절경을 이루는 흥미진진하고 도도한 강물을 꿈꾸어 보자. 그리고 오늘을 그 발원지로 삼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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