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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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표정전'은 아주 멋졌네. 나는 아무 많은 순간들을 보았네. 그 순간들이 사람의 얼굴에 남긴 '바로 그때'의 섬광 같은 눈빛들과 감정을 잘 보았네. 그 사람들은 다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그 표정들은 모두 다 내것이었네. 마음을 빼앗긴 그 찬란한 기쁨의 순간, 황당한 새로움에 대한 놀람, 예기치 않게 맞닥들인 두려움, 뜻밖의 횡재가 주는 행복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것이겠는가 ! 나는 무수한 다른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내곤 했다네.
우리가 하나이며, 바로 그 동일한 인생의 순간순간 바로 그 사람들이 내 위로며 기쁨이라는 것을 알아내는 즐거움에 젖어 보았다네. 자네 전시를 둘러보는 동안 나는 과거의 자네가 겪어왔던 그 길들을 잠시 되돌아 볼 수 있었네. 내가 보았던 자네의 표정들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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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하나. 내가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자네는 답답해 보였네. 얽힌 실타레 속에 갇힌 듯 했네. 가야할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나 그 길은 너무 멀고, 수없이 얼키고 설켜 풀어야할 매듭들로 가득한 길처럼 보였던 모양이네. 가야하나 갈 수 없는 자신 때문에 가슴 속에 치미는 분노를 품고 한숨처럼 살고 있는 듯 했네. 그때 아마 자네는 미술학원을 접고, 막 다른 일을 시작한 다음이었던 듯하네. 자네는 화가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지. 다른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지.
그러나 화가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찾아온 현실을 해결해야했지. 미술학원을 열고 아이들 입시 지도를 시작했지만 그대의 회의는 깊어 갔다네. 예술이 밥벌이가 되고, 작품이 상품이 되고, 인생은 요령이 되어가는 하루하루를 견디게 어려웠을 것이네. 자네가 가진 미술에 대한 애정이 순수할수록 자네의 하루는 스스로에게 기만적이고, 영혼을 파는 듯한 모멸이었던 것 같네. 밥벌이는 되었지만 혼을 잃어가는 생활이라고 여겼는지, 자네는 미술 학원을 접었지. 그림 옆에 있었으나 화가는 되지 못한 사람, 그것은 마치 아직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했으나 마음으로 짝사랑한 애인이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지켜보는 아픔같이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지. 결국 그 곁을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일테지. 미술 학원을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길에서 멀어진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지. 그때 나는 그대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네. 떠나서는 안되는 곳을 '떠나가려 마음먹은 자의 혼란'.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대의 첫 번 째 표정이었네.
두 번째 표정, 이 두 번 째 표정을 꽤 오래 가서 그것은 순간의 표정이었다기 보다는 그대 얼굴에 일상의 흔적을 만들어 냈을 지도 모르네. 나는 창원의 어느 강연장에서 그대를 다시 만나게 되었던 것 같네. 아마 그때가 그림과는 전혀 무관한 세상에 살고 있던 때가 아닌가 하네. 친구 회사에서 그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림의 세계와 전혀 맞닿아 있지 못한 시간들이었을 것이네. 자네가 창원에서 공항까지 나를 태워다 주는 동안 차안에서 나눈 이야기는 체념과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네. 일을 끝내고, 그래, 밥을 벌어야하는 시간을 끝내고, 휴식이 찾아오면 파레트와 붓을 들고 이젤 앞에 앉아 있는 그대를 상상했지만 그대는 밤이 되면 그저 쓰러져 잘 수 밖에 없는 생활인으로 살고 있었지. 다음 날 아침, 회한으로 스스로를 미워하고, 그 날이 다시 저물면, 그림 그리기가 두려워지는 자신을 다시 만났을 것이네. 그림마저 종종 잊고 있다가, 문득 송곳처럼 파고드는 회한 때문에 자신을 다시 추슬러 보려고 해보지만 그저 생각에 지나지 못하고 만 시절이었을 것이네.
나는 그 때 그대의 얼굴이 '떠난 자의 시절', 바로 방황과 무기력과 일상이 지배한 '범벅 표정'의 시절이 아니었나 추측해 보네. 우리는 그때 여러 번 만났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네. 만날 때 마다 그대는 그 표정으로 머물러 있었네. 결혼을 하고 개를 키우고, 다른 사람들과 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술을 마시는 하나의 생활인으로 그림을 잊고 지낸 시절, 그대의 마음은 무수한 시도와 실패, 그리고 그것을 잊어가는 생활의 반복 속에서 세월에 닦여가는 듯 했네. 아마 그것이 몇 년 동안 그대 표정 속에 어린 그늘의 정체였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네
세 번 째 표정, 그것은 어떤 '결심을 품은 자의 얼굴'이었네. 자네는 내게 편지를 보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다시 참석하고 싶다고 했네. 이번 여행은 사람이 다 찼으니 다음에 오면 어떻겠냐고 했을 때, 자네는 꼭 이번이어야 한다고 말했네. 그래서 우리는 몇 년 전 만나 함께 했던 미래여행을 다시 떠나게 되었지. 그때 자네는 앞으로 10년간 벌어질 아름다운 열 개의 풍광을 그려가기 시작했네. 그 아름다운 풍광 중의 하나가 바로 '현대인의 표정전'이라는 전시회를 갖는 꿈이었지. 나는 그때 자네가 스스로 '얼굴의 화가'로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네. 자네는 확고한 결심을 하게 되었네. "매일 그리자. 천개의 얼굴을 그려보자. 그러면 마음이 본 것을 손이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네. 그게 바로 얼마 전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 있었던 일이었네.
네 번 째 표정, 나는 이 표정을 아직 보지 못했네. 그후 나는 그대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그대가 거의 매일 그려 내 홈페이지에 올리는 얼굴들을 보며, 자네가 드디어 매일 그리기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표정을 담은 습작의 얼굴들이 하나 둘 모이고 다섯 여섯이 되는 동안 나는 자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 지 추측해 볼 수 있었네. 그 표정은틀림없이 '매일 그 일을 하는 자의 성실함'일 것으로 생각하네.
그림의 갯수가 하루하루 늘어가고, 그림이 올라오는 간격이 일정해 매일 그리기가 조금씩 정착 되어 가는 것을 보며, 나의 믿음도 점점 확실해져갔네. 자네는 3년이 지나는 동안 '천개의 얼굴'을 그려보게 될 것이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을 거쳐, '얼굴의 화가'로 세상에 알려지게 될 것이네. 이것은 마치 이미 일어 난 일처럼 확실한 미래가 아니겠는가 ? '현대인의 표정전'이라는 자네의 아름다운 풍광 중의 하나는 아직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 진 것이나 다름없는 확실한 미래가 된 것이네.
나는 이것을 확신하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매일의 맛'을 알고 있기 때문이네. 매일 새벽글 쓰기를 시작한 다음, 13년이 흘렀네. 그동안 나는 17권의 책을 내게 되었네. '1년 1책' 이라는 나의 꿈의 풍광은 내가 매일 새벽 글쓰기를 하는 한, 이미 일어난 과거처럼 거의 확실한 일이 되었네. 미래도 과거처럼 확실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매일의 힘과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또한 믿고 있기에, 나는 '매일 그리기'가 '얼굴의 화가'라는 그대의 꿈은 이루게 해주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네.
그래서 하는 말이네. 자네가 아주 유명해져 그림 값이 비싸지기 전에 자네 그림을 몇 점 소장하고 싶네. 얼마간의 습작기가 지난 다음에 자네 마음이 편안해 졌을 때, 내 얼굴을 하나 그려주게. 그리고 우리 가족의 그림도 하나 그려주게. 내 얼굴 그림은 웃고 있는 것으로 책만한 사이즈면 되네. 나는 평생 책을 읽다 이제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니 책만한 크기가 마음에 당기네. 나는 이 그림을 내 명함과 책의 프로필 사진으로 쓸까하네. 물론 그 아래 '송암 홍정길 그림' 이라고 써두겠네. 급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책이 나올 때 까지 필요하네. 나는 매일 쓸 것이고 그대는 매일 그릴 것이니, 나의 새 책이 나오기 전 그려 주게. 나는 좋은 그림을 좋은 가격에 사고 싶네. 그러니 내 기쁨의 순간을 잘 그려주기 바라네.
가족 그림은 제법 크게 그려주게. 책 크기의 4배 쯤 되게 그려주게. 좋은 자리를 잡아 걸어 두겠네. 언젠가 가족들이 함께 놀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즉흥적으로 사진관에 들러 가족사진을 찍었다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네. 언젠가 다시 찍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밋밋한 사진 대신 '얼굴의 화가'인 자네에게 부탁하는 것이네. 가족의 얼굴들이 한 화면에 들어간 다이나믹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을 때, 내게 알려 주게. 나는 모두 정면을 쳐다보고 있는 사진 같은 그림은 원하지 않네. 각자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로의 세계를 애정으로 지켜보는 가족의 사랑을 그려주게. 그것이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이라네. 매일 그리는 자네라면 나를 감동 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네. 지금 주문하니 때가 되면, 그려 주게.
어떤 일은 바랬으나 이루어 지지 않고, 어떤 일은 바라지 않았으나 뜻밖에 이루어지기도 한다네. 그리고 알게 되네. 그 바라지 않았던 일이 정말 내가 마음을 다해 바래왔던 바로 그 일이라는 것을 말이네. 젊었을 때 나는 역사학자가 되어 혁명사를 전공해 보고 싶었네. 그리고 대학에 남아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이 꿈이었네. 그리고 그 과정을 밞았다네. 그러나 나는 도중에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역사학 교수가 되지 못했네.
그 후 20년이 더 지난 다음 나는 지금의 내가 되었다네. 나는 가끔 자문해 보네. 어느 것이 더 나다운 삶인가 ? 나는 지금의 내가 좋네. 나는 자유와 독립 없이는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내가 되기 위해 나는 그 긴 세월을 둘러 왔네. 그 둘러 온 인생이 바로 내 삶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네.
몇 년 전에 자네는 미술 학원을 접었고, 이제 다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그때와 지금은 마음가짐이 완전히 다를 것이네. 지금 그대는 미술 옆에 있으며, 매일 미술과 함께 있으니, 미술을 통해 밥도 먹고, 미술을 통해 자기실현도 해 가니, 그것이 진정한 화가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 삶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예술가가 아니라네. 이제 자네는 진정한 화가로 입문한 것이네. 비로소 세월 속에 그대를 담게 되었네. 축하하네.
(월간중앙을 위한 기고문, 5월 1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