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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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문득 나는 더 이상 경쟁력이란 말을 쓰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마치 한 겨울에 두껍게 꽝꽝 얼은 호수 바닥이 쨍하고 갈라지는 소리처럼 내게 명료한 메시지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 무의식의 기본 바탕은 경쟁과 승리라는 패러다임에 속해있었던 모양이다. 내 의식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내 무의식은 그것이었나보다. 심연의 한 복판에는 '이곳은 전쟁터이고 날마다 나는 싸워야 하고 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비록 나는 호전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지고는 못 사는 사람이기도 했다. 승리는 기분 좋은 것이고, 쟁취할 만한 것이다. 승리야 말로 마음의 느긋한 평화를 즐기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직장인이었다. 경쟁력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고, 그것이 내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고 믿었다. 전문성을 살리기 위해 배우고, 실험하고, 책을 읽고, 책을 썼다.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 나는 변화 경영전문가라고 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분야에서 꽤 잘 알려 지게 되었다. 말하자면 개인 브랜드의 힘을 가지게 되었다. 스스로 경쟁력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뭘 모르고 있었다. '모든 비즈니스는 고객을 돕는 사업'이라는 것이 올바른 명제라면, 나의 경쟁력은 고객을 돕는 힘에서 나와야 한다. 그 힘은 근본적으로 내 경쟁자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고객을 잘 돕는 힘이어야한다는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내 목표는 내 경쟁자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 서비스의 수혜자가 나에게 환호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모든 언어는 그 속에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이 담겨있다.
경쟁력이라는 말은 레드오션에서 피흘리며 싸워야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각박한 언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푸른 바다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제공할 수 없는 것, 나만의 차별성, 바라고 있었지만 그동안 충족되지 않았던 새로운 수요를 창조할 수 있는 힘, 그것은 경쟁력이 아니라 고객에 대한 공헌력이라는 문득 알게된 것이다.
나는 오늘 송두리째 내 생각을 바꾸어 버렸다. 통쾌하다. 나는 생각했다. 영향력은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재능이 많으면 재능을 기부할 수 있다. 그때 선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공헌력이다. 돈이 많으면 돈을 나누어 줄 수 있고, 젊음이 있으면 젊음을 나누어 줄 수 있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이디어를 나누어 줄 수 있고, 정보가 있으면 정보를 줄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것, 그 자체로는 힘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먼저 자신을 위해 쓰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쓰고, 점점 넓혀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을 위해 쓰고, 나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그것이 힘이 된다.
무엇이든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은 다른 사람과의 싸움을 전제로한 전투무기가 아니라 참여하여 도울 수 있는 나만의 차별적 공헌력을 의미할 때,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혼자서 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을 더불어 창조해 낼 수 있다. 경쟁력은 친구를 만들기 어렵지만, 공헌력은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공헌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세상을 보는 인식의 전환이다. 빼앗을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나눌 수 있는 힘에 대한 동경이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다. 나를 정복하려는 힘에 대해서는 대항해야 하지만 나를 도우려는 힘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다. 만일 동료들과 어울려 하나의 팀을 이룬다면 반드시 내가 공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한다. 마치 파티에 내가 가장 잘하는 요리하나를 가지고 나타나듯, 잔치를 흥겹게 만들어 줄 멋진 선물하나를 가지고 나타나라는 것이다.
공헌력을 강화할 수 있는 첫 번 째 요소가 '나누려는 마음과 태도'라면 두 번 째 요소는 바로 그 '선물' 의 품질이다. 가지고 나타난 그 선물이 특별하고 멋진 것이면 내 공헌력도 커진다.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최고의 공헌은 역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재능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축제가 흥겨우려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로, 춤을 잘추는 사람은 춤으로, 사람을 잘 웃기는 사람은 유머로, 고기를 잘 굽는 사람은 맛있는 구운 고기로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죽여주는 기술', 즉 필살기 하나를 갖춰야한다. 오해가 있을까봐 '죽여주는' 이라는 말을 좀 설명해야겠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여준다'는 것은 진한 감동을 표현하는 가장 서민적인 표현인 것 같다. 그건 아마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인가보다. 나는 이 저속한 표현을 좋아한다. 가린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적나라한 솔직함 때문에 그렇다.
공헌력을 강화하는 세 번 째 방법은 공헌의 과정에서 관계의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누가 얼마나 훌륭한 삶을 살았는가를 평가할 때, 아마 우리는 그 사람이 남긴 업적을 생각할 것이다. 피라미드를 보고 파라오의 권력을 생각하게 되듯이 말이다. 이집트가 강력한 힘을 가졌던 조상 덕에 후손이 좀 더 많은 관광 수입을 얻게된 것을 보면 그 업적이라는 것이 중요한 평가 기준일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역시 삶은 '살아있다는 떨림'의 맛이 없이는 살았다 할 게 없다. '살아있음', 이것을 많이 느낄수록 나는 그 삶이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산 사람일수록 남은 사람들이 기억할 업적도 많을 것이다. 살아있음의 떨림은 일에서 오는 기쁨도 크지만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가로부터 온다. 멋진 사랑이 누구나의 로망이고, 우정이 인류의 자부심이었듯이 사람은 관계를 통해 깊은 삶의 맛을 체험하게 된다. 공헌력은 이 관계의 깊이를 겨냥한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공헌할 수 있는 특화된 힘을 만들어 두고, 늘 훈련하자. 재능과 기질이라는 개별화된 특성 위에 '죽여주는 기술' 하나를 익혀두자. 그 리고 그 기술을 우리의 좋은 관계를 위해 활용하자. 동료가 나의 출현을 불쾌해하고, 두려워하고, 불편하게 하지 말자. 나의 출현이 사람들의 기쁨이 되게 하자. 내가 그곳에 존재한다는 것이 가장 멋진 선물이 되게 하자.
(혁신 경영, 2009년 10월 21 일)
이 그림 바탕색 말이죠... 죽여줍니다.
찰스의 '코끼리와 벼룩' 속표지 색깔과 같으네요.
이 마음좋은 벼룩은 쉽게 풀어쓰는 글로 지구를 몇바퀴나 돌고돌아
우리 앞에 서 있네요. 참 좋은 친구입니다.
"이 사람을 초대해서 한판 걸지게 놀아볼까요? " 그런 얘기를 한 선배랑 나누다 돌아왔습니다.
이 색깔은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때의 색깔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른 블루를 즐겨입으시는 구나' 생각했었지요.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생각이
두꺼운 얼음장 깨지는 소리와 함께 와서 좋고
물결처럼 출렁이며 함께 흘러갈 수 있어서. 좋고
쨍쨍하게 맑은 하늘, 호수 . 블루, 공헌력이 함께하는 이 가을 , 진짜 쥑이네요..
급성장한 코스닥 벤처기업에 몸담았던 몇 년전, 경쟁 사고로 무장한 창업 멤버가 임원으로 다시 부임하면서, 조직원들의 조화로운 참여와 협업을 추구하던 제 가치와 팀운영 방식으로는 배치된 가치를 내건 기업을 위한 공헌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혁신적인 제품을 통한 사회 공헌이라는 기치를 내건 기업의 목적이 있었고, 고개의 중요하니, 고객의 목소리를 힘껏 들어야 한다는 외침과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체된 시장 타개와 기업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하여, CEO는 경쟁사를 죽이는 독점 전략을 줄기차게 외쳤고, 그 임원은 조직 내부에서조차 영업팀을 1,2팀으로 나눈 뒤, 팀간 경쟁을 자극하였습니다. 물론 그렇게하여 점점 더 조직원들간의 협력보다는 경쟁 중심과 개인주의의 문화가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이켜 생각하건데 그 기업은 글로벌 피인수합병을 통하여 미래를 기약하였지만 조직을 이끈 리더가 글로벌 성장을 이끌어낼 가치로 독점과 경쟁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나는 그 기업이 결국 지금 성장과 반대되는 길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결과에 대하여 시장의 요인을 배제할 수 없겠지만 말입니다.)
제가 그때 가졌던 생각이 이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조직의 성장속에 내걸어야 하는 가치가 지속적이기보다는 그때그때 바뀔 수 밖에 없고, 때로는 경쟁이라는 가치가 극대화되어 도구로 쓰여질 수 밖에 없는 그것이 엄연한 오늘의 시장 현실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기업의 리더가 내걸어야 할 가치는 경쟁이 아니라 공헌과 조화가 아닐까 하고...오늘 선생님의 글에서 그때 가졌던 생각에 다시 불을 지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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