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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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고전에 다가서는 법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만일 다시 젊어진다면 무엇을 꼭 해보고 싶은지, 그때 그것을 못해 봐서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무엇인지 말이지요. 그때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죠셉 캠벨이라는 세계적인 종교신화학자랍니다. 나는 그 사람이 했던 그 일을 내가 청년이었을 때 한 번 해 보았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를 졸업하고 캠벨은 유럽으로 건너 가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왔지요. 마침 그 때가 1929년 대공황기였습니다. 경제시스템이 무너지고, 사람들은 굶주리고 어디서든 직업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어려웠습니다. 캠벨 역시 직업을 구할 수 없었지요. 그때 그는 정말 중요한 결심을 합니다. 우드스톡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어가 푹 파묻혀 거기서 몇 년간 보고 싶은 책들을 모두 읽어야겠다고 계획한 것입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1 달라짜리 하나를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그 돈이 있는 한 자신은 굶어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답니다. 그렇게 책 속에 몰입하는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대학에서 교수로서 그리고 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드스톡에서 보낸 그 몇년동안, 자신이 읽어야할 책들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섭렵했다고 말합니다. 나는 직장인이었는데, 지금은 작가로서 책을 쓰고 강연을 하고 지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인 생활을 보내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젊은 시절에 그렇게 캠벨처럼 아무 일도 안하고, 나를 위해 책만 읽는 몇 년의 시간을 가졌더라면 지금 훨씬 더 많이 깊어졌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건 자신을 위해 아주 현명하고 훌륭한 투자였으니까요.
독서는 세계 최고의 스승들과의 만남입니다. 플라톤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은 플라톤이라는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사사받는 것을 말합니다. 정약용 선생이 두 아들에게 보내는 긴 서간문을 읽는 것은 조선 최고의 선비가 아들에게 말하듯 그대들에게 조근조근 말하는 조언을 무릎을 맞대고 듣는 것과 같습니다. 삼국지를 읽는 것은 그 속에 살아 있는 인물들의 드라마를 흥미진진하게 천둥같은 목소리로 들어 보는 것입니다. 책이야 말로 내가 가장 편할 때 편한 곳에서 내 마음대로 골라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오락이며 정신적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터득한 아주 괜찮은 독서법에 대하여 조금 소개할까합니다. 물론 정해진 독서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이 가장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나만의 독서법을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염두에 둘 몇가지를 말해보겠다는 것이지요.
첫째는 현재 자신의 관심사와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을 고르는 것이 좋아요. 그래야 재미있거든요. 독서의 첫 맛은 재미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에 대하여 관심이 있을 때는 사랑에 대한 책을 읽으라는 것이지요. 이 세상 책들의 절반 이상이 사랑에 관한 책입니다. 그 중에서 한 권을 골라 읽는 것이지요. 만일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미술에 관한 책을 읽으라는 것이지요. 마음이 끌리는 주제를 다룬 책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좋은 책이 됩니다.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 바로 그래서 두 번 째 중요한 조언이 책을 고르는 법에 대한 것이 되겠지요. 사랑에 대한 책을 읽고 싶은 데, 누가 쓴 무슨 제목의 책을 읽어야할까요. 이때는 선택의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어 좋은 책과 나쁜 책 두 권 중에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어떤 책을 골라야할까요. 당연히 좋은 책이지요. 다행히 나쁜 책에 대한 목록은 없는데, 좋은 책에 대한 목록은 잘 정리되어 있답니다. 그러니 그 중에서 제목도 맘에 들고, 표지도 맘에 드는 책을 한 권 골라서 읽어 보는 것이지요.
그런데 큰 맘 먹고 청소년을 위한 고전 중 하나를 골라 읽어 보니 첫페이지부터 별로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옛날에 쓰여서 표현도 좀 구닥다리 같고, 배경도 영 지금의 나와 동떨어져 있어 별로 맘이 당기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지요. 여기서 세 번째 중요한 독서법의 힌트가 생겨납니다. '딱딱하면 살살 녹여먹고, 비쩍 말랐으면 입속에 넣고 불려먹어라' 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만든 말이예요. 고전이라 불리는 아주 좋은 책들은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명장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그 맛이 깊고 감동적이랍니다. 문제는 오래 전에 쓰여졌기 때문에 딱딱하고 말라있다는 것이지요. 피라미드가 오래 되었을수록 그 속에 숨겨진 보석은 더욱 특별하고 값지듯이 이 희대의 작품은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그 진수를 알 수 잇습니다.
수 백년 전의 사람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왔다면 놀라 자빠지겠지요. 그러나 젊은 남녀가 키스를 하는 것을 보면 안심하고 웃을 겁니다. 그건 변하지 않았으니까요. 아이를 걱정하는 엄마를 보거나 학교에서 선생에게 혼나는 학생을 보면 아마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이렇게 중얼댈 것 같군요. "모든 것이 변한 것 같지만 인간의 소중하고 깊은 것들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구나"라고 말입니다. 옷을 바꾸어 입었지만 그 속의 사람은 같은 사람이듯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미래에 초조하고 또한 꿈을 품고 사는 것이니까요.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인생을 가르쳐 줄 선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읽기 쉽고 내용이 시시한 책만을 편식하는 것은 시시하고 말초적이고 믿을 수 없는 선생에게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인류 최고의 빛나는 인물에게 배우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며 많이 울고, 많이 웃고, 깊이 살아 번쩍이는 지혜를 얻어낸 스승들에게서 배우세요. 그들을 등불로 삼아 역시 많이 울고, 많이 웃고,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세상에 그대의 존재를 빛내도록 하세요. 시간이 없으면 시간을 찾아내고, 그래도 시간이 부족하면 하루에 한 페이지 한 줄이라도 입에 넣고 우물거리세요. 그러면 그대는 배움의 오묘한 맛을 즐기고 정신적으로 커다란 기쁨을 아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매력적인 사람, 그게 뭐 줄 아세요 ? 그건 그대가 바로 다른 누군가의 입 속에서 오래 동안 향기로운 맛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정신 속에 깊은 인상을 남기고 그의 어려운 시절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멋진 일이지요.
이봐, 동건친구, 오징어 씹어 봤지 ? 입 속에 넣고 좀 불리는거야.
내가 해 본 방법으로는 밑 줄이 촥 쳐지는 곳 --- -이게 건더기야--- 그 주위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앞 뒤 문맥의 통하게 돼, 그러면 잘 보이지 않던 것이 분명해 지거든. 문맥이 중요하니까 .
만일 이 '밑줄'에 관련되는 사례가 있으면 같이 이해해야해. 사례가 없다면 그럴 듯한 것을 하나 만들어 내는거야.
그 다음에는 그 밑 줄만 입 속에 넣고 다니며 우물거리는거야. 종종 써먹고.
이 밑줄이 많은게 고전이야.
책 전체를 넘겼는데 이 밑 줄이 하나도 없으면 시간 낭비한 것이고. 건더기가 없으니 씹을게 없었던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