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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20일 11시 35분 등록

그래, 사랑이 너를 괴롭히는구나. 모든 기쁨이 눈물이 되는구나. 그 조차도 감미롭구나. 젊은 사랑은 '내려칠 장소를 찾고 있는 벼락'같은 것이니, 너무도 성급하고 갑작스럽게 찾아온 후 또 그렇게 사라져 간다.    줄리엣은 이 사랑의 갑작스러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지. "번개를 닮았어요. '번개가 친다'라고 말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리는 번개 말이예요"   로미오와 줄리엣의 그 사랑은 7월 더운 여름의 나흘 동안 벌어진 일에 불과했으니 모든 것은 그렇게 갑작스러웠지. 모  든 사랑은 그렇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심지어 몇 년을 친구처럼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느 날 고목에 꽃이 피듯, 느닷없는 새로운 감정이 꽃피게 될 수 있다. 어떤 조건에서든, 마치 그것이 오래전부터 서서히 존재해 왔다는 생각이 들 때 조차, 사랑은 소나기처럼 찾아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마음을 점령하더니, 짧은 기쁨으로 가득한 밀월의 시기를 지나간다. 그리고 이내 깨닫게 된다. 사랑은 '한숨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연기'이며, 동시에 '너무도 거칠고, 난폭하여 가시처럼 콕콕 찌르기도 하는' 감정의 폭풍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랑이 있다. 사람마다 하나의 사랑쯤은 가지고 있고, 몇 개를 가진 사람들도 제법 된다. 나이가 어린 소녀나 소년들의 풋사랑은 대개 그 대상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 자체를 사랑한 경험으로 남을 때가 많다. 그래서 실제의 사랑과 머릿속 사랑이 늘 섞이게 마련이다.   나이가 많은 부모들은 사랑조차 세상을 사는 지혜의 범위 속에 가두어 두려한다.   어머니들은 사랑은 사랑으로만 살아지는 것이 아니므로 좋은 남자란 육체를 건사할 돈도 있고 세속적 능력도 있어야 한다고 늘 딸들에게 말한다.   대체로 아버지들은 딸의 사랑이 분별있고 정숙하기를 바란다. 사랑은 절대 쿨할 수 없건만, 종종 쿨한 사랑이 존재하는 줄 안다. 상처없이 헤어지기를 바라는 사랑은 사랑조차 아니건만 사람들은 기쁨의 반대 편에 서있는 어두운 사랑의 반을 두려워한다.

    여기까지 너에게 편지를 쓰다가 나는 이쯤에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랑은 늘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는 잘못을 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너의 오랜 선배였기 때문에 남자 고르는 법이나 몇 가지 들려주려한다. 사랑이 지혜일 수는 없는 것이니, 사랑에 빠져들기 전에, 아직 정신이 온전할 때, 참고해두면 좋겠구나. 네가 일단 사랑에 빠져 버리면, 지혜는 멀리 도망가 사라져 버려, 그때는 이미 아무 조언도 불필요할 테니까 말이다.

  첫 번째이며 절대적 기준은 착한 놈이 좋은 놈이라는 것이다.   약간 이상한 놈인데, 착하다면 그건 나쁘지 않아. 특별하다는 뜻이니까.     착하다는 것은 일종은 지능이다.    지능은 타고난 것이지. 그러니까 그건 그냥 느껴지기도 하지만 검증이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착한 사람은 가시적으로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반드시 가지고 있다. 이건 자신을 탐험할 수 있는 힘이다.   내면 탐험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알아내고, 자신의 심리와 정서를 파악하고, 행동이 적절했는지를 묻는 능력이다.   공자 식으로 말하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바로 군자'라는 말과 같다.    예수도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면서 거의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 ?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신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악은 바로 자기성찰이 부족한 곳에서 생겨난다.   그러니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고, 세상 물정에 어둡고, 바보이고, 세상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본말이 도치된 소견일 뿐이다.   착한 사람들이야말로 자기 식으로 세상을 살아 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것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남자 고르는 두 번 째 기준은 당연히 가슴이 따뜻한 훈남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종종 멀쩡한 여자들도 내가 보기에 어리석은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건 아마 '나쁜 남자 증후군' 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차거운 인간에게서 날카로운 지성의 힘을 느끼기도 하고, 폭력적인 남자를 증오하고 두려워 하면서도 빠져들고, 이기적인 사내에게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느끼기도 한다. 그것은 악어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처럼 위태롭고, 전갈을 등에 태운 개구리처럼 불운한 운명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부류의 남자들은 '사나이다움'에 대한 강박관념에 눌려있다.   사랑은 쟁취며, 여자는 전리품이고, 섹스는 겁탈과 다를 바가 없다.   결혼조차도 합법적인 겁탈이다. 부드러움은 사나이다움의 금물이며,   여자에게 봉사하고 희생한다는 것은 굴욕이다.   사나이다움이라는 유치한 발상은 그들로 하여금 거침, 폭력, 오만함, 허풍에 경도되게 한다. 따라서 오직 힘과 권위에 굴복한다.

  열정은 우리를 예속시킨다. 자발적 족쇄를 우리 마음에 채우는 것이다. 가장 순수하고 강도 높은 열정이 바로 사랑이다. '나쁜 남자'들은 이 자발적 열정에 예속되기를 거부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증명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힘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 중에서 가장 남성적인 힘이 지배하고 있던 시대가 바로 로마였다.    남성다움이 그 시대의 미덕이었다. 사랑은 여성에게 의존하는 것이므로  남자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남자의 지배력을 감퇴시키는 나쁜 속성,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다. 당시 가장 재기발랄하고 경박한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는 '사랑의 기교'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로마식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랑은 전쟁 같은 것, 겁쟁이에게는 돌아갈 몫이 없다
.....
(아내나 애인이외의 다른 여자를 사귀다가)
그대가 아무리 잘 감추었다하더라도 혹시 발각되는 날이면,
명명백백히 들어나더라도 결단코 아니라고 맹세하라
지나치게 비굴하게도 지나치게 상냥하게도 굴지마라
그대의 유죄를 인정하는 셈이니까
필요하다면 그녀의 침대에서 그대 몸이 완전히 지칠 때 까지 움직여
입증하라. 다른 여자와 지내고 왔다면
그대가 그처럼 강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신기한 것은 이 시대 로마의 여인들은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웠다. 상류계층의 여인들은 머리 손질과 화장, 그리고 의상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고르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하고, 얼굴을 다시 매만지고 만찬회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 치장하는 것은 광고하는 것이며, 자신을 가장 매력적인 상품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표현이었다. 사나이다움이 미덕과 가치였던 남성 사회에서 열등한 존재에 불과했던 여인들은 자신의 외모에 지나친 강박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매력적인 전리품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따뜻함을 미덕으로 여기고, 스스로 열정에 예속되어, 사랑을 사랑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남자를 고르지 못하면, 여인은 인형과 노예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러니 경계해야할 일이 아니겠느냐 ?

   마지막 기준은 자신의 재능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남자를 고르라는 것이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자기다울 때다.   잘 맞는 일에 몰입하고 있을 때 사람은 아름답다. 가수가 노래할 때, 춤꾼이 춤을 출 때,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작가가 그 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이 가장 멋진 최고의 풍광 속에 놓여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젊기 때문에 충분히 꽃피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일로 유명해 지기 위해 잘 준비하고 있는 남자라면 그 분야가 무엇이든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다.

  일단 시작되면, 사랑의 운명이 어찌 풀려나갈 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랑은 사랑의 길을 갈 것이다. 결혼이 사랑의 해피 엔딩인지 아닌지는 난 잘 모르겠구나. 많은 동화와 이야기들이 '그들은 사랑하였고 그리하여 결혼했다네' 라고 말하지만,  헤어졌으나 가슴 먹먹하게 아름다운 사랑 또한 많지 않더냐. 그러니 사랑은 그 자체로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할 촛불 하나고 몸을 녹여 줄 따뜻한 난로일게다.

  그 사랑이 사랑이려면 둘이 잘 어울려야 한다. 어울림은 다양한 것이니 같은 색의 어울림도 있고, 보색의 어울림도 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 '어울림'이라는 중요한 개념에 대하여 간단히 말해보아야겠다. 잘 어울린다는 뜻이 무엇일까 ? 음이 어울려 음악이 되고, 색깔이 어울려 그림이 되고, 글이 어울려 책이 되는 것이다. 그래, 그렇다. 사람이 어울려 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 사랑이 아름답다 여겨지려면 같이 있을 때가 홀로 있을 때 보다 더 고와야 한다. 그러니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된 듯 여겨질 때 그 사랑은 빛나는 것이다. 그러니 늘 생각해라. 홀로 있을 때는 작아 보이다가도 그와 같이 있으면 그로 인해 내가 돋보여 크게 보이고, 그 또한 그러하다면, 그 사랑은 잘 어울려 행복한 사랑이다. 이때는 이 사랑을 믿고 따라라.

  서로 사랑하지 않고 아름다운 사랑이 될 수는 없다. 부디 남자를 잘 고르도록 해라.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알고,   너를 자신보다 아껴 사랑이 빛나게 하고,   스스로 가장 잘하는 것으로 유혹할 수 있는 남자는 사귀어 깊이 빠질 만 하다.  그 외의 것들은 다 허상이다.   있으면 좋은 것들이니, 그것에 기대지 마라.  허당이다. 기대는 순간 무너져 내려 쓰러지게 될 것이다.

   인생의 중반을 지나며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임을 알게 되었다.   너는 좋은 젊은이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 볼 줄 알고, 마음이 따뜻하여 상대를 소중히 여기고, 재능을 다해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려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너는 가장 소중한 가치 세 가지를 다 갖추고 있다.   다만 이제 용기만 내면 된다.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살지 마라.   재미없다.   너로 인해 세상의 한 조각이 기뻐하게 해라.   그러니 너에게 걸맞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를 기쁘게 만들어라. 잘 어울릴 것이다. 어울리지 않고 아름다운 것이 있더냐 ?   잘 만나 아끼거라. 지극한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니, 봄이 꽃을 그리워 하듯, 그리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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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월 월간 중앙을 위한 원고)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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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10.02.20 20:15:22 *.131.41.34
이 글을 꼭 기억해 놓았다가
제 딸아이가 자라서 사랑을 할 즈음이 되면
꼭 건네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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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
2010.02.20 21:04:13 *.133.240.71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도 이 글을 잘 보관했다가
세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물푸레잎처럼 여린 아이
사슴눈을 가진 아이
늘 행복하게 웃는 아이에게

가끔 마음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질 때면 선생님의 글들을
찾아서 읽곤 했지요 늘 용기가 없던 못난이인데 ..
오늘 글을 보고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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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1 09:45:20 *.141.102.143
저도 오늘 아침 내내
줄줄
눈물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가는 길에 노래방이라도 들러
펑펑 울다 집에 들어가야할 것 같습니다.

셤공부한다고 새벽부터 PC방에 앉아
훌쩍거리구 있으니...
참...

그래두 지금은 뚝 끊구
우션 공부부터 해야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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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2 04:14:13 *.66.170.136
결혼 전에는 착하고 배려심이 많은 것 때문에..
과연 저런 사람이 세상을 잘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면서..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남을 배려하는 마음때문에..
밥 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되었거든요..

그러나..결혼 하고 나서 보니..그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착하다는 것..따뜻하다는 것..
그리고 성실하다는 것..
그게 조합되니..3년을 한결같이 지냈습니다..

사부님의 글을 보고..
정말..잘 만난 사람..더 아끼면서 사랑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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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무
2010.02.22 16:32:09 *.152.51.213
역시 구본형 선생님이네요..주옥같은 글귀가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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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23 08:13:09 *.131.10.59

남자를 고르는 처자들에게 메일로 보내주었습니다.
착하다는 것이 지능일 수 있음을
같은 색과 보색과의 어울림을
지극한 사랑이 아름다운 것임을
읽고 갑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남대문 수업도 좋았습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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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잡기
2010.02.28 21:40:32 *.53.217.47
퍼갈께요^^
좋은 남자로부터 구본형칼럼을 알았어요..
덕분에 좋은 남자를 고르는 법도 알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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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제 이도원
2010.03.20 22:12:57 *.187.189.251
선생님

'저에겐 좋은 남자가 되는 법'으로 읽히네요. 

제가  제 사랑에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남자와 비스무리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자만일까요? ^^;)

밥 사주시기로 한 약속 잊지 않으셨죠?

여자친구 데리고 나갈테니 둘이 잘 어울리나 한 번 봐주셔요.

황사가 심합니다. 선생님은 손도 귀하지만 목도 귀하신 분이니 마스크 잘 챙기시고, 따뜻한 차 많이 드세요.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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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10.03.27 08:31:24 *.160.33.180

보자. 도원아.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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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30 12:27:36 *.212.217.154

남자와 여자를 바꾸더라도

적용될수 있겠지요^^

봄이 꽃을 그리워 하듯이,

그렇게 사랑하며 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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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3 10:36:53 *.170.174.217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룬다는것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는 것과 같은것이지요.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은 어떤 곳인지,

지금 사랑하는 그 누군가를 생각하며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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