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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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많다. 무수히 많다. 평범한 것들 속에서 보물을 고르듯이 고를 때는 '진실에 진실한 작가'의 것을 선택해야한다. 패스트 푸드로는 골수가 찰 수 없듯이 시시한 잡서로는 정신이 그윽해 질 수 없다. 교양인이라면 자신의 육체를 위해 좋은 음식을 가릴 줄 알고 영혼을 위해 좋은 책을 고를 줄 아는 사람이다. 내 인생에 여러 권의 멋진 책이 있었으니 사마천의 '사기열전'이 그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인간이 하나하나 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사마천은 가장 비겁한 사내도 그 벌을 받게 되면 자결하여 자존심을 지킨다는 궁형에 처해졌으나 자신을 죽이지 않았다. 그 일을 하지 않고는 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바로 '사기' 한 권을 써내는 것이었다. 삶을 다 건 투자다. 그러니 이 책이 진실에 진실할 수 밖에 없다. 그는 운명과 사명을 글에 다 바친 사람이다. 그래서 그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땀과 피로 보여준다.
나는 수 십년간 이 책을 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때때로 나는 아무 곳이나 펼쳐 읽는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이 책을 덮는다. 그렇게 내 삶은 이 책과 함께 했다. 왜 그랬을까 ?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가장 비천한 자에서 가장 고귀한 자에 이르기 까지 모두 살아 있기 때문이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신문에 난 사람들 속에서, 20세기와 21세기를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나는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의 편린을 매일 만나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이고 나 또한 그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이 책을 손으로 더듬어 책 속의 영혼들이 내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기이한 황홀을 느껴본다.
책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다. 나의 체험이 그들의 경험에 두 개의 물결처럼 합해져 증폭되도록 읽어야 한다. 이 너울을 타고 삶이 파도타기처럼 흐를 때 온 핏줄이 전율하며 삶의 황홀을 고함치게 한다. 독서란 그런 것이다.
(교보를 위한 원고, 2012년 10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