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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8일 08시 45분 등록

시간, 새로운 부의 원천, 2006년, 삼성에세이

유럽은 늦은 시간대에 머물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느린 시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나는 두 가지 대칭점에 있는 감정이 가운데로 몰려와 부딪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문화적 시간감각의 충돌이었고, 그것에서 오는 정서적 불편이었다.

어딜 가나 그들은 느렸다. 내 근육 속에 숨어 있던 ‘빨리빨리’들이 그 꾸물거림을 참아내기 어려웠다. 어디를 가나 줄을 서야했고, 길지 않은 줄은 쉽게 줄지 않았다. 점원들은 ‘천천히 손이 보이게’ 움직였다. 그들은 마치 구식 기계처럼 육중한 몸과 몽땅한 손가락으로 계산기의 자판을 찍었고, 영수증을 주고, 잘 가란 말을 했다.

한국에서 나는 절대로 빠른 사람이 아니다. 나의 어슬렁거리는 발걸음도 그렇고 말의 속도도 그렇고 일을 처리하는 것도 대단히 늦은 사람 축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주 느린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내가 유럽에서 느낀 것은 그들의 시간의 흐름을 견딜 수 없다는 점이었다. 나는 이미 초고속의 문화적 DNA로 장착된 인간이었다. 저 답답한 사람들은 이제 곧 우리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리라. 한국은 곧 유럽인들을 뛰어 넘어 앞으로 질주해 갈 것이라는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그들의 과거의 방식 속에는 그들의 미래가 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미래가 다가오는 방식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대칭점에 서 있는 다른 가치가 나를 난처하게 했다. 그들은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미래의 삶에 대응하는 데 우리보다 미숙할지 모르지만 그들의 삶의 속도가 사람이 살기에는 더 없이 쾌적해 보였다는 점이다.

넓은 초원 위에 세월이 고즈넉이 내려앉은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그들, 할아버지 대부터 물려온 가옥을 대대로 손질해 가며 살고 있는 그들을 20년도 안된 아파트를 부수고 어떻게 해보려는 우리와 겹쳐볼 때, 그들의 삶의 방식이 부러워지기도 했다. 그들의 도시 역시 사람이 늘어나면서 팽창하고, 그러다 보면 뉴타운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뉴 타운과 올드 시티가 병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강북을 볼 때처럼 올드 시티를 낙후된 곳으로 보는 시각은 없어 보였다. 구시가지는 역사가 숨쉬고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 가득한 매력적인 시가로 남아 있었다. 그들은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둘 줄 알았고, 그 누적된 세월을 즐기며 살고 있었다.

실제로 유럽은 늙은 대륙만은 아니다. 유럽은 차세대 신경망서비스인 그리드 컴퓨팅에서 미국을 앞서 있다. 인공위성 분야에서 프랑스의 경쟁력은 미국에 버금간다. 항공우주 산업 역시 미국과 견줄만하다. 더욱이 이제 유럽은 EU로 재편되면서 미국만큼의 경제단위가 되었다. 유럽의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옥스퍼드 대학의 티모시 애쉬 교수는 이제 유럽은 ‘낡고 고전적인 민족국가’가 아니라 ‘초국가적 벌률에 기초를 둔 범국가적 조직’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미국은 더 이상 확장할 수 없지만 EU는 회원국의 수가 늘어나면서 점점 더 커지는 성장조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앨빈 토플러는 이 점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EU를 지배하는 원칙이 낡은 산업주의적 기반 위에 세워져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산업주의의 핵심은 표준화, 중앙 집중화, 규모의 극대화로 볼 수 있는 데, EU를 움직이는 패러다임은 낡은 산업주의 원칙에 매여 있어 지식기반 경제의 시대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제품과 서비스가 탈대중화의 시대로 가고 있는데, 유럽은 이를 뒷받침해 줄 문화적 다양성의 배경이 되는 국가적 차별성을 없애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위한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유럽국가의 통합을 위해 지나칠 정도로 각 국의 준수 사항과 규칙을 엄격히 해 두었다. 비평가들은 ‘미국 헌법은 10 쪽도 안되는 데, 유럽의 헌법은 400 쪽에 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관료주의적 과잉성을 꼬집었다. 유럽은 탈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지식이라는 근본 요소를 자신의 미래와 연결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이 보였다.

이번 여름에 유럽을 어슬렁거리며 그 일상의 현장에서 만난 유럽은 늦고, 관료적이며, 과거의 원칙에 매여 살고 있었다. 한때 공산주의 국가들의 어려움을 상징할 때 늘 떠 올리는 장면, 빵을 배급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서야 했던 줄을 연상했다. 내가 유럽에서 본 것은 바로 그 줄이었다. 그것이 배급을 기다리는 줄이 아니라는 것 뿐이지 유럽에서는 줄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기준이었다. 그것은 한 사회의 기회균등을 위한 상징적 문화 부호였다.

그러나 한 사회를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우리는 길고 무기력하게 서 있는 그 긴 줄 외에도 시급함에 따라 별도로 처리할 수 있는 유연성과 경중에 따라 달리 줄을 세울 수 있는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의 속도는 앞으로 우리에게 아주 많은 기회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 생활 속에서 안락하고 기분 좋은 게으름과 여유를 빼앗아 갈 것이다. 이제 지식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자.

빠름과 늦음, 이 두 가지 대칭점을 모두 일상 속으로 끌어 들이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자. 일에는 가속을 붙여보고, 생활에는 기아를 두 단계 줄여 저속운행을 해 보자. 과제를 처리하고 주어진 일을 끝낼 때는 손이 보이지 않게 하자. 그러나 인간관계를 쌓아가고, 자신의 내면생활을 즐길 때는 의도적인 여유와 늦음의 미학을 즐겨보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처음에는 서툴고 모든 것을 의식하여 행동을 취해야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음악을 듣고, 도로 상황을 다 둘러 보며 마치 한 몸인 듯이 통제할 수 있듯이, 이제 시간 흐름을 관리할 수 있는 통제력을 우리의 삶 속에 탑재해 보자. 느리게 가야할 때 달리지 말고, 달려야 할 때 쉬지 말자. 언제가 기아 변속점인지를 익혀두자.
IP *.116.3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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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bul20
2006.12.18 16:42:13 *.43.53.27
덧글을 써 봅니다. 좋은 글 잘 보고 있읍니다만 비판입니다. 순수함이 퇴색한 느낌입니다. 우선 첫번째. 서두 문장이 너무 어렵고 현학적입니다. 대칭점에 있는 감각은 무엇이고 정서적 불편은 무엇입니까. 두번째. 삼성 엣세이라고 어중간한 결론입니까. 빠름을 선택할지 느림을 선택할지 난처하다고 쓰면 되지 않을까요. 어중간함을 택하기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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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2007.01.01 07:25:51 *.173.139.94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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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2007.04.25 07:18:44 *.226.216.101
디지탈 시대에 있어서 시간도 양자 택일이 아니라 , 양쪽 다 ( both all) 취함에 대한 말씀이군요..느린것과 빨리 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줄 아는 혜안이 저에게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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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2 11:17:36 *.212.217.154

그들의 '시간을 쌓아가는' 행위와

우리들의 '효율적' 시간쓰기 사이에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 세대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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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31 12:08:44 *.223.162.130

유럽의 속도와 미국의 속도,

그리고 한국의 속도.

각기 저마다의 색으로 움직입니다.


유럽의 느림이 뒤쳐짐을 의미하지 않듯이,

우리나라의 빠름이 늘 과속과 여유없음을 의미하지는 않겠지요.


선생님의 말씀처럼

때에 따라 각각의 속도로 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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