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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에 대하여 , 2006년 삼성월드, 3월 14일
오늘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내가 지루할 때 마다 해보는 꽤 괜찮은 놀이 중의 하나다. 사랑, 연인, 술, 여행, 바다, 산, 꽃...이렇게 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흘러가면, 그 단어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오늘은 어느 단어에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어린 아이처럼 참지 못하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까 ? 단어들이 하나씩 강물처럼 흘러가다 ‘놀이’라는 단어에서 멈추어 섰다. 놀이, 놀이라. 갑자기 내 주위의 공기부터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놀이’ 라는 단어 속으로 빠져 들어 보자.
놀이와 함께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친구’라는 단어였다. 친구는 생활의 일탈을 가볍게 서로 돕는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혼자 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 하게 한다. 삶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어려서 아이들이 친구네 집 앞에 가서 이름을 부르며, “ 길동아. 노올자 “ 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해 보라. 서로에게 아무 부담도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것이 좋다.
친구들 사이에는 이해가 끼면 안된다. 비즈니스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다. 그러나 진짜 친구와는 오직 즐거움을 서로 나누는 것이 좋다. 마치 우리가 무대 위에 올려 진 비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듯이, 비극조차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좋다. 술을 한 잔 하고 하소연도 하고, 다른 놈들 흉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높은 이상을 떠들어 대고, 현실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속없는 만남, 함께 마누라 없는 곳으로 손잡고 떠나기도 하는 순수한 놀이 집단이 친구들이다.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 해서도 안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삶의 어두움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함께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인생의 짐이 무거울수록 함께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친구이기 때문에 간혹 부담을 주기도 하고, 친구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두 번은 좋다. 그러나 한 두 번으로 해결되는 어려움이란 별로 많지 않기 마련이다. 종종 되풀이 되고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서로의 관계는 멀어진다.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좋다.
시인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놀 때 가장 인간답다’ 라고 말했다. 사르뜨르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쓰고 싶어 하는데 ... 그때 하는 것이 바로 놀이다’ 라고 말했다. 놀이가 친구라는 단어와 찰떡궁합인 것은 자유란 고독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어야 하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남들로부터 단절 되어서는 진정한 희열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놀이는 함께 어울리는 경험의 공유이다. 산속을 거닐고 바다를 홀로 산책할 때 느끼는 그 자유스러운 고독 역시 홀로 있기 때문에 느끼는 열락이 아니라 나를 둘러 싼 생명과 혼연 일체가 된 순간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내 것을 쌓아두고 담을 쌓아 보호함으로써 지켜지는 사유가 아니라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함으로써 배가되는 것이다. 이제 ‘놀이’라는 단어는 저 혼자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 ‘자유’와 ‘친구’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단어들과 연결됨으로써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네델란드의 역사가 호이징하다. 그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명명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회생활은 ‘한없는 놀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인간 활동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 혹은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은 난감해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생활은 일하는 시간 보다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농노들의 시대였던 서양 중세의 기독교 달력에는 일 년의 절반은 공휴일과 축일, 그리고 안식일의 명목으로 노는 날이었다. 일이 인간을 제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 난 것은 인간의 역사가 산업시대로 진입해서 부터다. 그리고 이제 산업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놀이는 다시 중요한 일상 활동으로 복귀하고 있다.
놀이란 간단히 말하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놀이가 없으면 문화도 없다. 문화가 없다는 것, 그것은 문화 자본주의의 시대 상업의 바탕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주 잘 놀아야 한다. 놀이의 특징은 놀이 자체가 바로 목적이라는 점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놀이의 즐거움 자체가 보상이라는 점이 놀이의 순수성이다. 문화의 상업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명심해야할 것은 돈 되는 문화만 남고, 돈을 벌 목적으로 문화를 수탈할 경우 우리는 다양성이 고갈된 문명 속에서 살게 될 것이고, 인간의 본질은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친구야 놀자’가 ‘놀아 주면 얼마 줄래’인 사회에서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열쇠 몇 개가 전제된 상업적 결혼이 아닌 사랑이 인도한 결혼, 이해관계가 없는 우정, 즐거움 자체가 보상이고 목적인 놀이로서의 삶, 몰입하는 놀이로서의 일과 열정, 앞으로 정말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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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건 내가 지루할 때 마다 해보는 꽤 괜찮은 놀이 중의 하나다. 사랑, 연인, 술, 여행, 바다, 산, 꽃...이렇게 이 세상을 빛나게 하는 아름다운 단어들이 흘러가면, 그 단어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되살아나곤 한다. 오늘은 어느 단어에서,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어린 아이처럼 참지 못하고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올까 ? 단어들이 하나씩 강물처럼 흘러가다 ‘놀이’라는 단어에서 멈추어 섰다. 놀이, 놀이라. 갑자기 내 주위의 공기부터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놀이’ 라는 단어 속으로 빠져 들어 보자.
놀이와 함께 가장 먼저 연상되는 것이 ‘친구’라는 단어였다. 친구는 생활의 일탈을 가볍게 서로 돕는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혼자 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 하게 한다. 삶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어려서 아이들이 친구네 집 앞에 가서 이름을 부르며, “ 길동아. 노올자 “ 라고 불렀던 것을 기억해 보라. 서로에게 아무 부담도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서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것이 좋다.
친구들 사이에는 이해가 끼면 안된다. 비즈니스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하면 된다. 적당한 거리 적당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은 비즈니스 파트너들이다. 그러나 진짜 친구와는 오직 즐거움을 서로 나누는 것이 좋다. 마치 우리가 무대 위에 올려 진 비극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듯이, 비극조차도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좋다. 술을 한 잔 하고 하소연도 하고, 다른 놈들 흉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높은 이상을 떠들어 대고, 현실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속없는 만남, 함께 마누라 없는 곳으로 손잡고 떠나기도 하는 순수한 놀이 집단이 친구들이다.
친구들에게는 결코 아쉬운 소리를 해서는 안된다. 또한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 해서도 안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삶의 어두움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함께 같은 길을 가는 것이다. 인생의 짐이 무거울수록 함께 즐거움을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친구이기 때문에 간혹 부담을 주기도 하고, 친구이기 때문에 그 부담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 두 번은 좋다. 그러나 한 두 번으로 해결되는 어려움이란 별로 많지 않기 마련이다. 종종 되풀이 되고 반복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되면 열 번 중 아홉 번은 서로의 관계는 멀어진다.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좋다.
시인인 프리드리히 실러는 ‘사람은 가장 인간다울 때 놀고, 놀 때 가장 인간답다’ 라고 말했다. 사르뜨르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자유를 쓰고 싶어 하는데 ... 그때 하는 것이 바로 놀이다’ 라고 말했다. 놀이가 친구라는 단어와 찰떡궁합인 것은 자유란 고독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어야 하는 것이라는 뜻일 것이다.
남들로부터 단절 되어서는 진정한 희열을 느끼기 어렵기 때문에 진정한 놀이는 함께 어울리는 경험의 공유이다. 산속을 거닐고 바다를 홀로 산책할 때 느끼는 그 자유스러운 고독 역시 홀로 있기 때문에 느끼는 열락이 아니라 나를 둘러 싼 생명과 혼연 일체가 된 순간을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유는 내 것을 쌓아두고 담을 쌓아 보호함으로써 지켜지는 사유가 아니라 공유하고 공감하고 포용함으로써 배가되는 것이다. 이제 ‘놀이’라는 단어는 저 혼자 존재하는 단어가 아니라 ‘자유’와 ‘친구’라는 또 다른 아름다운 단어들과 연결됨으로써 빛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네델란드의 역사가 호이징하다. 그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으로 명명했다. 그는 인간의 모든 문화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회생활은 ‘한없는 놀이’라고 말한다. 노동이 인간 활동의 가장 본질적인 행위라고 주장하고 싶은 경제학자나 경영학자들 혹은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은 난감해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인간의 생활은 일하는 시간 보다 노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농노들의 시대였던 서양 중세의 기독교 달력에는 일 년의 절반은 공휴일과 축일, 그리고 안식일의 명목으로 노는 날이었다. 일이 인간을 제배하고 놀이가 뒷전으로 밀려 난 것은 인간의 역사가 산업시대로 진입해서 부터다. 그리고 이제 산업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놀이는 다시 중요한 일상 활동으로 복귀하고 있다.
놀이란 간단히 말하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놀이가 없으면 문화도 없다. 문화가 없다는 것, 그것은 문화 자본주의의 시대 상업의 바탕이 고갈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아주 잘 놀아야 한다. 놀이의 특징은 놀이 자체가 바로 목적이라는 점이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놀이의 즐거움 자체가 보상이라는 점이 놀이의 순수성이다. 문화의 상업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명심해야할 것은 돈 되는 문화만 남고, 돈을 벌 목적으로 문화를 수탈할 경우 우리는 다양성이 고갈된 문명 속에서 살게 될 것이고, 인간의 본질은 황폐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친구야 놀자’가 ‘놀아 주면 얼마 줄래’인 사회에서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열쇠 몇 개가 전제된 상업적 결혼이 아닌 사랑이 인도한 결혼, 이해관계가 없는 우정, 즐거움 자체가 보상이고 목적인 놀이로서의 삶, 몰입하는 놀이로서의 일과 열정, 앞으로 정말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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