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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25일 22시 43분 등록
두 사람의 가이드,삼성 에세이, 8월 분 , 2006년

나에게는 약간의 방랑벽이 있다. 나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잘 견디고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멀리 가서 강연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강연을 하러가는 여정은 내게 훌륭한 여행이 되기도 한다. 마침 호주에서 강연 요청을 받게 되었다. 여름 휴가 기간과 겹쳐 나는 아내와 함께 호주로 갔다. 두 번 기내식을 먹고 한 두 개 영화를 보고 가지고 간 책의 수십 페이지를 읽고 나서 한잠 자고나니 시드니에 도착해 있었다.

10년 만에 나는 4번째로 시드니에 오게 되었다. 아침에 시드니 공항은 붐볐다. 아마 호주로 오는 비행기의 반 이상은 아침에 이렇게 겹쳐 오는 모양이다. 공항은 작고 초라해 보였다. 인천 공항을 거쳐 이곳에 오니 시드니 공항은 옛날 우리의 김포 공항처럼 느껴졌다. 시드니 올림픽 때 증설을 하고 리노베이션을 한 것이 이 정도다. 리노베이션의 기술 역시 변화의 가속성을 보이고 있었다. 1990년도의 기술과 2000년 이후의 기술은 어느 분야에서나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를 픽업해준 가이드는 내게 호주에 대한 잡학 몇 개를 얼른 말해 주었다. 호주는 2000 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 중 400만 정도는 시드니에 산다. 인구수로 최대의 도시며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이 압도적이다. 시드니 남쪽으로 해안을 따라 1000키로 쯤 내려가면 멜번이 있다. 인구는 250만 정도로 시드니 보다 적지만 호주 제 2의 도시이며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세계의 기업들이 들어서 있는 상공업의 중심지다. 호주에서 가장 유럽풍의 느낌을 주는 도시이기도 하다.

수도를 유치하기 위해 두 도시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누구도 양보하지 않았다. 유일한 해결책은 타협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 도시 사이에 인구 300 가구 정도 사는 한 마을인 캔버라가 수도로 지정 되었고, 캔버러는 수도로서의 위상을 갖추기 위하여 새롭게 개발 되었다.

호주는 땅이 넓어 대도시를 제외한 일반 국도에서는 자기 앞에 차가 2 대만 지나가도 교통이 혼잡하다고 농담을 한다고 한다. 유명한 오페라 극장 맞은 편에 있는 하버 브릿지는 1926년 만들어 진 것인데, 철교로는 세계 최대의 무게를 자랑한다고 한다. 다리의 폭은 왕복 8차선에 기차 레일을 놓아 두었으니 설계자가 그 당시 이미 100년은 내다 본 셈이다. 아직도 다리로는 가장 넓은 폭을 가진 다리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러나 시드니 시내 중심가는 아주 작다. 걸어서 20분 이내에 웬만한 곳은 다 갈 수 있다. 이것이 공항에서 호텔까지 가는 20분 동안 내가 얻어 들은 이야기다. 가이드는 30대 초반의 젊은이었고, 유학을 왔다 이곳이 좋아 눌러 앉았다 한다. 늘 웃고, 친절하고, 사분사분 말도 잘한다. 끊임없이 조용히 이것저것 말해 주는 데, 좋은 가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아내와 내가 시드니에 묵는 동안 내내 우리를 개별적으로 가이드해 주었다.

며칠 뒤 우리는 시드니 북쪽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인 골드코스트로 갔다. 공항에 내렸더니 한 젊은이가 내 이름을 쓴 종이를 입구에 서 있었다. 어두운 얼굴이다. 그는 감기에 걸려 있었다. 우리는 20분 쯤 떨어져 있는 열대과일 농장으로 갔다. 길에는 사탕수수밭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가는 동안 그는 내게 우리가 가는 농장에 대하여 말해 주었지만 본인도 잘 모른다고 했다. 별로 사람들이 방문하지 않는 곳이라 1년에 겨우 한 두 번 오는 곳이라고 한다.

농장의 카페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트랙터에 긴 관람용 끌개를 단 열차를 타고 과일 나무 사이를 구경했다. 큰 보트를 타고 물길을 따라 내리다 오리에게 먹이를 주기도 하고, 숲 속을 자유롭게 어슬렁 거리는 왕도마뱀을 보기도 했다. 햇볕으로 나오면 덥고, 그늘에 있으면 추웠다. 여름에는 40도에서 50도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데, 바닷가지만 건조하여 끈적이지 않는다. 햇볕으로 나오면 못견딜 만큼 덥고, 그늘로 들어가면 덥다는 생각을 않는다고 한다.

바닷가를 거쳐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저녁이 되어있었다. 그는 11년전 신혼 여행을 왔다가 골드코스트에 반해서 몇 년 동안 애를 써서 작년에 드디어 영주권을 받았다고 한다. 아무 대책 없이 젊은 나이에 살고 싶은 곳을 찾아 정착한 것이다. 그는 아직도 골드코스트에 대하여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사람이 살기 가장 적합한 장소’인 곳에서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왠지 그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를 괴롭힌 것은 아마 감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두 사람의 가이드를 보며, 호주에 이민 와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일상적 생활의 일부를 직접 접해 볼 수 있었다. 두 사람 다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두 사람의 행복 지수는 대단히 달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젊은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이국에 살게 되었으니,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 소수가 할 수 있는 결정을 하게 된 셈이다. 이국에서 똑같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두 젊은이가 매우 다른 행복지수를 가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 졌다.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병의 일종인 것 같다.

내가 추측한 이유 중 가장 그럴 듯한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두 사람들이 현재를 인식하는 시선이 매우 다른 것 같다는 점이다.

시드니의 젊은이에게는 현재라는 삶의 시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는 지금을 즐길 줄 알았다. 그는 웃었고, 함께 음식을 먹을 때도 맛있게 먹었으며, 친절하고, 최선을 다해 설명해 주었다.

반면 골드 코스트의 젊은이는 무엇이든 심드렁했다. 그에게는 과거와 미래만이 있었고, 현재는 어디론가 사라져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골드코스트에 눌러 살게 될 때 까지 사연에 대해 길게 이야기 할 때 그는 마치 무용담을 말하 듯 살아 있었다. 마치 현재라는 무기력한 공간에서 과거의 위대함 으로 깨어나는 영혼처럼 그는 신나 있었다. 그는 골드 코스트를 떠날 마음이 없어 보인다 그가 이곳에서 살게 될 생활은 황금 모래밭처럼 빛나 보였다. 그러나 그는 현재의 생활에 불만족이었고, 과거의 노력에 보상치 못하는 고단한 현재에 대해 허탈해 보였고, 그의 행동에서는 어딘지 꼭 필요한 만큼의 차분함이 결여되어 있었다.

반면 시드니의 젊은이에게는 현재가 있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약간 살이 쪄가며 그것 때문에 불평하는 아내와 함께 잘 살고 있었다. 그는 넉넉하지 않으나 행복해 보였다.

또 하나는 가이드라는 직업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시드니의 젊은이에게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그는 그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가이드라는 직업은 괜찮은 직업이었다. 그는 그가 안내한 곳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이드하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사람에 맞는 장소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관광지를 데려 가기도 했지만 , 자신의 가족들이 즐겨 찾는 조용한 해변가로 우리를 데리고 가 걷게 해 주었는데, 나는 갭 파크 gap park가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골드 코스트의 젊은이의 관심은 오직 자기 자신인 것 같았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2 주째 걸린 감기에 대하여 말했고, 내일 모래 찾아 오게 되는 친구에 대해 말했고, 자신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간 장소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부족했고, 지금 보고 있는 장소에 대한 설명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장소, 우리가 내일 보게 될 일정에 대한 설명만 있었다. 그에게는 ‘지금, 바로 여기’가 없었다. 그것은 가이드로서 적합지 않은 기질이었다. 아마 그의 지금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직업의 특성과 잘 맞지 않은 기질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호주에 와서 두 젊은이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기질과 일을 서로 융합시켜라. ‘지금, 여기’라는 육체의 제한을 즐겨라. 육체의 단명함을 즐기는 방법은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육체의 단명함, 바로 우리가 짧은 시간 밖에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그대들의 여름 휴가는 즐거웠는가 ? 모처럼 주어진 ‘지금, 여기’라는 살아있음을 느껴 보았는가 ?
IP *.116.3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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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6.08.29 10:50:57 *.145.231.210
아주 오랫만에 선생님의 글에 댓글을 답니다.
방황의 끝에서 만나서 그런지 선생님의 글은 주로 읽기만 하지요.
'지금, 바로 여기'
마흔의 비밀 이후에 가슴 깊숙히 폐부를 관통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마흔의 비밀을 알았을 때에는 갈 길 몰라 했지만,
지금, 오늘 여기에서는 갈 길을 알고 있다는 것의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심장이 펄떡이는 박동소리가 단명하는 삶앞에 무한한 일의 욕망을 부추김을 느낍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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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기원
2006.08.30 10:20:49 *.190.172.55
오늘, 지금, 이곳, 현제의 느낌, 생각, 감각을 최선이 되도록 할 수있도록 살아 있음을 느껴보아야 겠습니다.
여유, 전체, why, 觀, 무욕, 자연, 예방 .... open mind 등등이 생각납니다.
현제를 어떻게 기질과 연결점을 찾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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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
2006.09.04 18:27:57 *.244.218.8
지금. 여기.

인생의 빛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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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비두바
2006.09.15 09:34:16 *.129.170.192
선생님과 함께 잠시 호주 여행을 다녀 온 기분입니다.

지금, 여기를 살아라. 마음에 길게 여운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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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2007.01.01 07:28:19 *.173.139.94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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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
2007.01.02 13:24:40 *.122.170.6
심장의 박동이 뛰는 지금 이순간 한호흡 한호흡 지금을 살고있는
의미를 되새깁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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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6 13:21:37 *.212.217.154

두 젊은이, 한개의 직업, 두개의 만족감.

자신의 직업이 스스로의 기질과 맞는지 다시 확인할것.

그 기준은 스스로의 행복감, 여유,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즐길줄 알아야 한다, 

왜? 삶은 유한하기에, 다시오지않을 지금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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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 10:41:58 *.32.9.56

어제도, 내일도 아닌.

주어진 오늘 이라는 선물(Present).

그 선물을 온전히 즐기는 하루가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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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1 20:10:11 *.221.199.12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기질과 일을 서로 융합시켜라. ‘지금, 여기’라는 육체의 제한을 즐겨라."

지금 이 순간을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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