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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19일 23시 32분 등록
두 번째 스무살, 이프, 2007 , 이코노믹 리뷰

이 책에는 ‘여자 나이 마흔, 그 주홍빛 서글픔과 쪽빛 희망의 이야기’ 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리고 ‘저기 내 치마가 걸려있다’라는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가져다 표지 그림으로 썼다. 시가지 한복판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떡하니 빨래줄을 매고 그곳에 대롱거리며 걸려있는 자신의 치마를 한 켠에서 쳐다보는 여인의 모습이 이 책의 내용을 가늠해 보게 한다.

평상시 같으면 나는 분명히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 스타일의 책도 아니고 즐겨보는 분야의 책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었고, 조심스럽게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졌다.

저자는 한 명이 아니다. 사십 줄을 넘나드는 7명의 아줌마들이 함께 한 권의 책을 만들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지난 1년 동안 내 객원연구원이었다. 그녀는 두 딸의 어머니였고, 무슨 책이든지 읽어대는 반 독서광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부엌 이야기라고 부르기를 바라는 눈이 큰 마흔에 다가서는 여인이었다.

연구원들은 1년간 함께 매주 책을 읽고 정리하고 10번 쯤 얼굴을 대면하고 만나 수업을 하고 함께 놀았다. 그렇게 1년간 지적인 흥청거림을 가진 다음 나머지 1년 동안은 한 권의 책을 써내야 한다. 그래야 연구원으로 자격이 인정된다. 말하자면 나는 그녀의 불완전한 숙제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읽게 된 셈이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그러므로 객관적 서평이라 보기 어렵다. 문득 매우 주관적 서평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다. 서평이 주관적이면 안되는 것일까 ? 시도해 보자. 과도한 편중을 자제하되, 오히려 충분히 감정을 이입하여 서평을 써 보면 어디 덧나기라도 할까 ? 나는 새로운 실험과 모색이 좋다. 내 직업이 변화경영 전문가이니 일부러라도 해 볼만 하다.

결혼은 성인들에게 가장 일상적인 일 중의 하나다. 나이가 차고 남자가 생기고 함께 어울려 좋은 시간들을 보내고 사랑의 감정이 생기거나 사랑을 믿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것이 결혼이다. 그렇게 시작한 결혼 생활은 굽이굽이 긴 들을 지나 강처럼 흘러간다. 때때로 그것은 불행처럼 어두운 그림자 속을 흐르기도 하고 어떤 때는 행복으로 가득 빛나는 햇살을 싣고 찬란히 달려가기도 한다.

결혼 이야기는 생활이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논다. 아이를 키우고, 성적 때문에 고민하고, 지지고 볶는다는 점에서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결혼은 사랑이라는 점에서 모두 특별하다. 그래서 생활로서의 결혼과 사랑으로서의 결혼은 서로 얽히고 섞여 누구나의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다 털어 내 놓지 못하는 은밀한 침대 위의 사건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느 가정도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며 그 가족의 구성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속에 닫혀진 문 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종 상처가 너무 커 참기 어려워지면 결혼의 매듭은 풀리고 서로 정리하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이 책은 7명의 결혼 생활이야기다. 결혼 생활의 지긋지긋함에 대한 이야기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 이야기로 마무리 지은 것도 있고, 칠흑을 이기고 다시 그 바닥을 짚고 일어 선 이야기이도 있다.

우선 이 책의 1/7에 해당하는 미영의 이야기 Happy Rebirth to Me 를 중심으로 들여다 보자. 그녀의 결혼 전 생활은 술 취한 아버지의 고함과 폭력, 그리고 얻어맞는 어머니 속에서 어찌 할 줄 모르는 어린 아이의 수많은 졸도로 상징된다. 보기 싫은 장면을 거부하는 괜찮은 방법은 정신을 놓는 것이었다. 기절은 외부적 아픔 모두에 대한 만능 처방이었던 것 같다.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기절하고, 책상 모서리에 팔꿈치가 부딪쳐도 기절하고, 문틈에 손가락이 끼어도 기절’했다. 기절은 무력함이 찾아낸 훌륭한 도피처처럼 보였다.

그녀는 서둘러 아버지와 그 가장으로부터 도망쳤고, 남편은 술로 아버지를 이긴 멋진 영웅이었다. 그를 사랑했고, 그리하여 그들은 결혼하여 멋지게 독립했다. 그러나 그녀의 영웅은 아버지 보다 더 센 술꾼이었다. ‘남편의 사랑을 놓고 나는 술과 숱하게 싸웠다’고 그녀는 말한다. 불화는 남편의 외도로 이어졌고, 싸움은 거세졌다. 남편은 폭력을 쓰게 되고,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처럼 미친 듯 소리를 질러 댔다.

그들은 아직 화해의 방법을 알고 있는 능숙한 싸움꾼들은 아니었다. 다행히 남편은 그녀의 곁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행복이 함께 온 것은 아직 아니다. 그녀는 지금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다. 일에 지쳐 삐쩍 말라 있지만 무기력하게 부엌에서 울고 있는 그녀는 더 이상 아니다.

이 책은 그녀가 자신의 길을 찾아 힘껏 걷기 위한 기점이 되어 줄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담긴 책이 나왔을 때 그녀의 얼굴은 환했다. 그녀는 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느새 여기에 있구나.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구나. 애썼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이 그녀에겐 훌륭한 위업이고 성취였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그것을 위해 싸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인생이 그렇게 쉽게 그녀를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7명의 중년 여인들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결혼 생활을 살려 내지 못했거나 아직 그 속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어둠을 벗어나 홀로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밝은 세상으로 가는 ‘용감한 출발’ 이야기들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여성의 일방적 핍박으로 읽지 않았다. 그저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로 읽었다. 개인은 우리를 양육한 사회의 의도적 왜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감정, 우리의 사고, 우리의 행동 어느 것 하나 그 사회의 문화적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없다. 사회에 맞추어 왜곡된 문화적 무의식 속에서 자라난 남편과 아내로 살아가는 ‘평범한 한 개인으로서의 여인’이라는 입장에서 쓰여진 쓰디 쓴 결혼 생활의 이야기는 독자로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허무하게 만드는 지 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언약을 깨뜨리게 하고, 무엇이 몸 안의 모멸감을 부추겨 결코 상대를 용서할 수 없도록 만들어 내는 지도 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사과할 수 없도록 하고, 무엇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하는 지도 돌아보게 한다. 결혼 생활에 지치거나 힘든 남편과 아내는 비록 마흔이 아니어도 한번 일곱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녀들의 쓴 이야기 속에 혹시 자신이 등장하여 한 배역을 맡고 있는 지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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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스므살의 꿈
2007.05.30 15:11:07 *.179.205.243
두번째 스므살들의 7삶을 읽으며, 온화한 미소로 화답할 세번째 스므살을 꿈꾸며 오늘도 순간 순간들을 숨가쁘게 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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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01 00:48:38 *.70.72.121
미영님 부분만 읽었는데 읽을 때는 저자의 입장에 몰입되어서 미쳐 발견하지 못한 부분이 사부님의 서평을 보면서는 좀 더 여유롭게 객관적이 된다. 그리고 아프고 끔찍했던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마음대로 안 되면 무조건 뒤로 너머가시던 ... 기억만 떠올려도 금새 가슴이 너무 무겁다. 커다란 돌짱이 나를 누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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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6 13:56:37 *.212.217.154

여성의 40대는 남자의 그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스스로의 아픔을 남들에게 보여준 다는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지요,

그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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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9 11:14:55 *.223.162.130

40

참 기묘한 숫자입니다.


더이상 젊지도,

그렇다고 늙은것도아닌

우리가 사는 삶에서 

가장 정점의 나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 출간된지 10년이 훌쩍 넘긴 지금,

책속의 저자들은 어떤모습으로 어떻게 변화된 삶을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한 마음 입니다.

부디 저마다의 역경을 딛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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