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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최인철, 21세기북스, 2007 (book review), 이코노믹 리뷰
돈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지 마라. 몰락으로 가는 길이다.
쉽고 재미있는 책이다. 한 자리에서 다 읽고 말게 한다. 내용의 잡다함, 완성도의 결여라는 여운을 지우지는 못했지만 더운 여름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기에 적격이다. 친구들과 카페에 앉아 가벼운 농담과 즐거운 지적 유희의 소재로도 적격이다. 책 맛을 보기 위해 빠르고 경쾌한 책 속의 내용으로 문제를 하나 내볼까 ?
상황 1 ) 100만원짜리 TV를 사러 한 가전 제품매장에 들렀다. 점원이 1시간 정도 떨어진 다른 매장에서는 3만원 더 싸게 팔고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당신은 1시간 운전해서 그 매장으로 갈 것인가 ?
상황 1-1 ) 5만원짜리 면도기를 사러 한 가전 제품매장에 들렀다. 점원이 1시간 정도 떨어진 다른 매장에서는 3만원 더 싸게 살수 있다고 귀뜸해 주었다. 당신은 1시간 운전해서 그 매장으로 갈 것인가 ?
당신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 내가 살짝 말해볼까 ? 3만원이 커보이는 짠돌이가 아니라면 100 만원짜리 냉장고를 사러 1시간 운전해서 다른 매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기름값, 수고비등을 계산하면 수지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100만원에 비해 3만원은 그저 푼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번째 상황에서는 마음이 상당히 끌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무료 60% 세일이니까 말이다. 어쩌면 1 시간 떨어져 있는 그곳 근처에 사는 친구를 떠올리며 오래동안 보지 못한 그 친구도 만날 겸 겸사겸사 가볼까 하는 ‘그곳에 가기 위한 합리적 이유’ 까지 동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지도 모른다. 5만원이 정가일 때 3만원은 대단히 큰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두 상황 모두 3만원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동일한 조건이지만 심리적 관점에서 보면 아주 다른 조건으로 받아들여진다.
똑 같은 3만원이지만 상황에 따라 그것은 ‘푼돈’이 되기도 하고 ‘큰돈’이 되기도 한다. 부르는 이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에 이름의 차이는 선택의 차이를 가져온다. 가령 이슬람 무장 세력을 어떤 사람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유의 전사’라고 부른다. 이름은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의 창을 반영하고, 그 마음의 프레임은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든다. 똑같은 돈이지만 ‘푼돈’에 매이면 좀생이고, ‘큰돈’을 놓치면 바보가 된다고 믿게 하는 프레임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2002년 다니엘 카네만 Daniel Kahneman이라는 학자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 사건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변’에 속한다. 왜냐하면 카네만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가 어떻게 경제학 부분의 상을 타게 되었을까 ? 사람들의 경제적 선택은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 즉 프레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반복적으로 증명해 냈기 때문이다. 즉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결국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합리적 사고에 기초하여 경제적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경제학의 오래된 가정에 의미 있는 수정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특히 우리의 생활 영역에서 가장 크게 이름의 영향을 받는 것이 돈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생활의 지혜로서의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조언을 한다.
* 빌려주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돈을 돌려 받았을 때, 거리에서 돈을 주었을 때, 책갈피 속에서 옛날 감추어 두었던 비상금을 찾아 내었을 때 ‘공돈’이 생겼다고 하지마라. ‘공돈’이라고 부르는 순간 쓰게 된다. 공돈이 생기면 무조건 2주 동안 예금해 두어라. ‘공돈’에서 ‘예금’으로 전환하는 돈 세척 과정이 필요하다. ‘공돈’이 ‘예금’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면 아까워 쉽게 쓸 수 없다.
* ‘원래가격’에 속지마라. 특히 세일 기간에 벌어지고 있는 심리적 덫에 걸리지 마라. 원래 가격이 50만원 이던 것을 20 만원에 사들고 들어오면서 30만원 벌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냥 그 물건을 사기 위해 20 만원이 지출된 것이다. 지혜로운 부자는 계좌에 입금되지 않으면 수입으로 보지 않는다. 지불한 돈과 원래 가격 사이의 차이, 즉 30 만원은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의 구좌에 절대로 입금되지 않는다. 따라서 번 게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돈의 심리학만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는 마라. 오히려 저자는 돈으로 가득 찬 마음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재테크에 미치라’는 천박한 상술에 물들지 말고 ‘돈은 있어도 이상이 없는 사람들은 결국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라는 수없는 연구 결과를 믿어 보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맨 마지막 장에서 저자가 다룬 ‘지혜로운 사람들의 10가지 프레임’ 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몇 가지를 간단히 소개할까 한다.
*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을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라. 이것저것 해야할 의무와 책임으로 가득한 가두어진 일상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해가는 의미와 보람의 시간으로 프레임하라는 뜻이다.
* ‘지금 바로 여기’라는 프레임을 가져라. 현재의 시간을 포착하여 마음껏 즐겨라. 현재가 미래의 희생이 되지 않도록 하라. ‘희생하는 현재’에서 ‘즐기는 현재’로 프레임을 재구축하라.
* 비교 프레임을 버려라. 남들과의 비교는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전시적 인생에서 얻을 것은 없다. 나는 없고 남만 있는 인생이 어떻게 내 인생일 수 있는 지 자문해 보라. 비교는 오직 자신의 과거와의 비교만이 유효하다. 늘 어제보다 나아졌는지 물어라.
* 닮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거나 그런 사람이 없다면 만들어 내라. 자신의 영웅을 그려 두고 일상의 어려운 국면에서 ‘그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 라고 물어라. 이상적 자기를 만들어 두고 그의 이야기가 자신의 일상에 스미게 하라.
* 접근 프레임를 가져라. 세월이 흘러 아쉬운 것은 그때 한번 해봤어야 하는 데 하는 후회들이다. 해 본 다음에 드는 후회는 시간이 가면서 사라져 가지만 안주했기 때문에 최선을 선택하지 못했던 후회는 시간이 갈수록 간절해진다.
이 책의 주제는 저자가 자신의 여는 글에서 쓴 대로 ‘심리학으로 배운 세상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지혜란 책 한 권 봐서 쉽게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서 얻은 교훈과 깨달음을 자신의 일상으로 끌어 들일 때 비로소 그것은 살아있는 지혜로 작동하게 된다.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즐거운 이야기 거리로서의 보편적 지혜에서 나의 원칙과 나의 일상적 지혜로 개인화 될 수 있도록 가장 마음에 드는 깨달음 하나 정도는 새로운 생활의 원칙으로 받아들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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