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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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한 여자가 쓰러지듯 말한다.
"아, 내가 마침내 당신에게 내 사랑을 허락하고 말았군요"
남자가 이 말을 비웃는다.
" 마침내라고 ? 천만에. 다시 한 번 더 라는 말이겠지"
그리고 그는 다른 여자에게 간다. 한 여자에게 이미 포만(飽滿)했기 때문이다.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는 왜 여러번 사랑하면 안되는 것인가 ?
성자이고자 하는 사람은 사랑의 질(質) 을 추구한다. 그러나 돈 쥬앙의 사랑은 양(量)의 윤리학이다. 따라서 그는 사물의 깊은 의미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가 한 여자와 사랑을 할 때는 매번 똑 같은 열정과 자신의 모든 것을 가지고 그녀를 사랑한다. 이 때문에 그녀 역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는 것처럼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다. 그러나 그는 그때 그 여자를 떠난다. 그 여자를 바라지 않아서가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는 항상 탐나는 것이니까. 그가 떠나는 이유는 다른 여자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한 사랑으로 가득 찼다가 이내 그것을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여자들과 함께 삶을 소모한다.
오랫동안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팔아 버린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또 하나의 다른 사랑' 인 것이다. 그는 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 쥬앙은 천형을 받은 미치광이이며 또한 위대한 현인이다.
사람들은 이 색마를 죽여야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윤리학은 그를 용납할 수 없다. 종교는 그가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한다. 몰리나의 '색마'는 지옥의 협박에 대하여 이렇게 대꾸한다. " 왜 그렇게 긴 여유를 내게 주는 것이요 ?" 죽음 후에 오는 것은 쓸데없는 것이며, 살줄 아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란 얼마나 긴 날들의 연속인가 ?
나는 오늘 생각한다. 우리는 얼마나 복잡한 동물인가 ? 우리의 마음 속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과 패러독스와 딜레마와 부조리를 안고 있는가 ?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위대한가. 정신적 지평은 끝없이 넓은 것이니 만일 끝이 보이는 경계를 가진 편협함을 버리지 않으면 우주로 가는 길은 뚫리지 않을 것이니. 우리는 운명의 괴로움을 고통스러워 할 때만이 삶이라는 시(詩)를 받아 들일 수 있다.
『 벚꽃이 흩날릴 때 』
최흥식
벚꽃이 흩날릴 때
그 빛깔이 갈색이 아니어서 좋다
그 빛깔이 영원히 사랑하겠다는듯이
푸른 빛으로 뽐냈다가
가을에 칙칙한 갈색으로 변심하며
처량하게 흩날리는
낙옆의 색
배신의 색이 아니어서 좋다
사랑이 흩날릴 때
그 빛깔이 벚꽃색이었으면 좋겠다
꽃이 피듯이 아름답게 피었었던 사랑이
시들어 버려질 때
사랑의 상처없이
아름다운 벚꽃잎 흩날리는 빛깔처럼
눈물대신 하얀 벚꽃같은 미소한번 지어 보이며
사랑을 흩날려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흩날릴 때
믿었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해도
하얀 미소의 벚꽃을 보고
다시 낡은 연장을 집어 들어
묵묵히 인생의 밭을 가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눈물이 흩날릴 때
그녀의 눈물이
하얀 벚꽃잎과 함께
바다로 흩날려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녀의 눈물이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담고도
늘 푸른 빛을 띠며 파도치는 바다로 흩날려가
슬픔을 바다에 묻고
다시 파도치는 바다처럼
푸른 웃음을 지어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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