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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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정해진 바가 없다.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꾼다. 한 번도 그것을 거부한 적이 없다. 그러나 물이 아닌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느 그릇에 담겨 있던 그 그릇과 하나가 되지만 결코 물이 아닌 적이 없다. 그래서 자유롭다.
물은 사방팔방으로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어디든 흘러 갈 수 있고 어디는 스며들 수 있다.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갈 수 있으니 자유롭다. 그러나 늘 아래로 흐르는 원칙을 저버리지 않는다. 간혹 억지로 물을 위로 퍼 올리지만 그 억지가 사라지면 물은 다시 스스로 아래로 흐른다. 물은 스스로 그러하다. 그래서 바로 '자연'(自然)이다.
그래서 노자의 도를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이 물이다. 물은 미리 정해진 바가 없으니 모호하고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그보다 분명한 존재는 없다. 물은 어디로든 흘러 자유롭지만 늘 아래를 향한다. 도(道) 역시 그러하다. 규정하면 더 이상 도가 아니지만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다. 물고기가 물 속에 살 듯 우리도 도 속에 산다. 그래서 나는 도가 무엇인지 더 이상 묻지 않으려 한다. 그저 물고기에게 물 같은 것으로 알면 그 보다 명확한 이해는 없을 것이다.
공자가 물이 된 것은 그가 인생을 마칠 때쯤이었던 것 같다. '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 不踰矩)란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뜻이니 그가 이른 살에 이르러 다다른 경지인 듯하다. 그릇에 담겨 그 모양으로 한 몸이 되지만 그 모양과 관계없이 자신일 수 있는 물이야 말로 마음가는 대로 해도 거리낄 것이 없는 자유로운 경지의 상징이 아닐 수 없다. 노자는 이미 늙어 공자 보다 먼저 그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세상을 등지고 함곡관을 떠나며 윤희에게 도덕경을 남길 때 그는 이미 물이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열심히 구하여 때가 되면 서로 같은 것을 깨닫게 되는가보다. 공자는 논어의 '술이' 편에서 스스로를 '날 때부터 알았던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그것을 구한 사람'으로 평했다. 성실함이 우리를 구할 것이다.
나는 종종 마음을 따르는 삶을 동경한다. 종심(從心)의 삶. 부디 진정 바라건데 마음대로 해도 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자유를 꿈꾼다. 그러나 마음대로 하면 늘 탈이 나고 만다. 청년기를 지났지만 여전히 색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젊음의 충동을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년기이니 한참 혈기가 강성할 때다. 늘 싸우지 못해 안달이다. 투쟁적이다. 그리고 노년기를 앞에 두고 있으니 앞으로 방만한 혈기는 사라지겠지만 노회한 노욕의 욕심으로부터 시달릴 것이다. 작은 일에 화를 내고 자식과 제자들이 배은망덕하다고 투덜거리며 서운해 하고 불평 속에서 화를 자주 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지런히 구하다 보면 언젠가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될 것이다. 공자는 열심히 구하는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을 군자라고 불렀다. 나는 군자라는 말을 싫어한다. 고리타분하고 칙칙해서 싫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 마음을 따르지만 도에 어긋나지 않는 그 자유가 얼마나 그리운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 조금 더 자유로워 질 수 있기를. 자유의 크기, 그 보다 중요한 성숙의 기준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나도 물이 되고 싶구나.
화학선생님은 물 예찬론자였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많은 것을 녹일 수 있는 용매가 물이다.
그 포용력을 우리는 찬양해야 한다.
그래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거나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할 경우에 물에 빠드리고는 했지요.
그리고 생물선생님은 사람은 70%가 물이다 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흔히 사람들을 무시할 때 물로 보냐? 라고 하지만 냉정하게 봤을 때 사람은 물인 것 맞나 봅니다.
선생님께서 소풍때 아이들과 어울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하는 생각을 했더랍니다."물"의 상징을 마음에 품고 사시는 분 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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