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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6시 01분 등록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 2002년 신동아 1월 호
장파(張法)지음, 푸른숲

나는 2년 전 한 일간지에, 20세기를 보내며 보고 가야할 책들 중 하나로 이 책을 추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만한 책 한 권을 쓰고 싶다고 말했었다. 저자인 장파는 공교롭게 나와 동갑내기인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번역자 중의 한 사람인 유중하 교수도 같은 나이였다 - 나는 평생 쉬엄쉬엄 이 책을 뒤적이며 살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고백했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 때 그 예감이 실제로 이루어 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책의 원제목은 '중서미학과 문화정신'이다. 한국어 제목에 '동양'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책 속의 동양은 중국을 의미한다. 서양은 더욱 복잡한 개념이지만 이 책에서 서양의 의미는 '그리스 로마 문화 위에 기독교 문화를 융화하여 성장해온 서양문화'라고 보면된다. 저술 의도는 현대 이전의 중국의 문화를 서구문화와의 비교를 통해 밝혀보려는 시도였다.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비교학이란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내용을 규명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자는 여자와의 비교를 통해 독특한 특징이 분명해진다. 상병은 일등병과 병장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다른 계급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분명하게 할 수 있다. 즉 사물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가는 무엇을 자신의 참조 체계로 삼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할 수 있다.

장파가 사용한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자. 서양의 화가는 감각이 이끄는 대로 풍경을 마주하고 본 것을 화폭에 옮겨 그린다. 그러나 전통적인 동양의 화가는 '마음에 잘 쌓아두었다가, 한참 익은 후에 그린다'. 당연히 이 두 그림은 다를 수 밖에 없다. 중국의 그림은 이런 비교적 관점을 통해 그 특징적 차이점이 잘 규명된다. 이것이 그가 이 책에서 사용한 방법이다.

중국과 서양 문화의 차이점 중 매우 두드러진 요소 중의 하나인 명료함과 모호함에 대한 대비를 통해 조금 더 들어 가보도록 하자. 서양인들은 누군가가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면 얼른 '증명해 보라'고 한다. 증명하지 못하면 헛소리로 간주한다. 서양의 문화 이론은 명료함을 특징으로 한다. 적어도 19세기까지 이 명료함에 대한 신봉은 거의 절대적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클리트의 기하학,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식논리는 중세에 이르러서도 토마스 아퀴나스로 이어지며 명료한 논리 체계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했다. 17 세기에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수학적 증명의 엄밀성을 모든 지식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18세기는 말할 것도 없이 이성의 세기였고, 19세기는 명료한 헤겔의 변증법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20 세기에 들어와 우주의 총체적인 모호함은 과학과 철학, 문예등 각 방면에서 명료함을 표방하는 서구세계에 커다란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런 당혹감은 물질적 도구, 즉 과학 기술을 통해 세계에 대한 명료한 인식을 확대하고 심화 시킬 수 있었다. 적어도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무엇이 진리이고, 어떻게 진리를 추구해야하는 지' 등을 알게 되었다. 명료성에 대한 의지는 과학의 빛 속에서 찬란한 현대 서구문화를 만들었다.

중국은 다르다. 중국 문화는 '주역'에서 부터 모호한 것이었다. 장자는 '입으로 말할 수 없고, 그 마음 속에 비결이 있다'라고 말한다. 즉 마음으로 알고 있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인도 글과 말이 아니면 사물을 묘사하지 못하고 뜻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국인이 도달하려는 것은 사물자체에 대한 인식이며, 언어는 그곳에 이르기 위한 순수한 도구로 간주 되었다. 장자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은 필요없다......말이라는 것도 뜻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뜻을 얻으면 말은 필요없게 된다."

중국인에게 기술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이해되었다. 얻으려고 하는 것은 도(道)지 기술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모든 기술은 예술이 되었고 신비화 되고 말았다. 즉 모든 기술은 정신적인 것으로 변하고 말았다. 서양과 달리 '도구의 경시와 정신의 중시'에 맞추어 중국인의 인식론은 유가의 실용적 이성과 도가의 직관 사이의 상호 보완 관계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이 좋은 이유는 방법이 새롭기 때문이 아니다. 비교문화는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이 책의 장점은 두가지이다. 우선 비전문가들에게는 비교를 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가져온 아름담고 중요한 인용들이 감동적이다. 복잡한 논리적 전개를 다 따라갈 필요도 없다. 그가 사용한 절묘하고 절제된 인용들을 읽으면, 중국의 중요한 고전들의 진수를 조금씩 골고루 맛볼 수 있다. 가벼움을 즐기는 독자들은 이 책이 아주 훌륭한 해설을 담은 문학적 발췌문임을 직감할 수 있다. 두 번째는 그가 비교를 위해 역사와 철학, 종교 그리고 기술이라는 전체의 맥락에 충실하여 단순한 인용의 나열을 넘어 총체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구적 통합방식으로서의 세계화'에 대한 적절한 의식과 비판이 중요한 시점에서 이 책은 일반인 특히 경영인들에게도 요긴하다. 동양 문화로서 중국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그리고 동아시아 여러나라의 문화적 공통성과 차이에 대한 인식은 서구문화에 대한 새로운 문화적 보완과 대안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즉 동아시아의 경험과 사유의 체계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의의 찾아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가야한다는 말이다.

21세기 경영의 키워드는 인간이다. 인간을 다루는 테크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개인으로부터 가치를 이끌어내는 일이 경영의 요체이다. 그리고 글로벌 경영은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다. 함께 만날 수 있는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파는 것이 경영이 아니다. 그 시대는 지나갔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경영이다. 보편적 문화와 정신을 담은 제품과 서비스만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인식할 수 있다. 이 책은 장사꾼이 아니라 경영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책꽂이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읽어 볼만한 인문서이다.

장파 : 중국 런민(人民)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미학사', '중서미학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다. '미학연구소' 소장과 '전국심미문화연구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있는 장파는 중국 미학계를 이끄는 리더 중의 한 사람이다. 1954년 말띠이며, 중국 충칭(中慶)시에서 태어났다. 베이징 대학 대학원에서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다. 전해들은 말에 의하면 얼굴이 신통치않게 생겨 '아름다움을 헤아리는' 미학을 한답시고 강의록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의 근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1990년에 탈고 되었으나 1994년에 출간되었다. 술은 별로 자주하지 않지만 한 번 먹으면 꽤 하는 모양이다. 기타 주요 저서로는 1998년 중국도서상을 수상한 '중국 예술학'을 비롯한 9권의 공동저서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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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12 15:39:49 *.139.108.199

흥미로운책 꼭 읽어보고 싶어

주문 걸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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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9:54:15 *.212.217.154

물건을 만들어 내다 파는 것이 경영이 아니다.

그 시대는 지나갔다.

마음을 전하는 것이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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