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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3일 13시 59분 등록
어떤 자유에 대하여

나는 언젠가 마흔을 다 지내고 난 후, 나의 마흔 살 10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쓰려고 한다.

아름다운 충동이 거부할 수 없이 나를 덮쳤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나를 탄생시키는 일’이었다. 그것은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것이 이내 내 운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삶에 대하여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을 맡았다. 직접 연출했고 직접 출연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는 바로 나였다. 나는 나를 재료로 가장 그럴 듯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만을 위한 작품인지도 모른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것은 남이 살아 줄 수 없는 반드시 스스로 살아야 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우상은 없다. 열정으로 배우고 나에게 몰두하는 몇 시간을 매일 우선적으로 배정한다.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나는 배치하고 연결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는 것이다. 혹은 이것과 저것을 함께 접속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예를 들어 작가이면서 강연가이면서 경영 컨설턴트이면서 변화경영전문가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실패도 또한 성공도 없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왜냐하면 끝없는 새로움으로 아침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내 목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모순과 함께 살고 갈등을 즐기는 법을 배운다. 일은 긴장을 해소하는 활동이고 불안을 잊는 소일거리고 일상의 지루함을 메꾸는 놀이다.

나는 물어 본다. 내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 ? 무엇이 내 삶을 결정하는가 ? 가장 중요한 것을 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 이런 질문들이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매일 새롭게 자신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다양한 삶의 가장 강력한 조건이기도 하다. 어느 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늘 새로운 자신을 고안해 내야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변하지 않는 나를 갖지 않으면 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 독특한 정체성 그것이 바로 유일함이고 다양한 사회 속의 시장성이다. 자신의 특수성을 활용할 수 없다면 이미 실패한 것이다. 또한 나는 움직이는 것과 머무는 것 사이의 균형의 능력을 증진시키고 싶었다. 날개와 함께 뿌리도 지니는 멋진 변종을 조합해 내고 싶었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였다.

처음에 나는 연 같은 개념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에 매인 자유가 덧없어 보였다. 그래서 늘 푸른 바다를 이곳저곳 떠돌아 다니는 여행자이더니 알을 날 때면 갈라파고스 섬으로 찾아드는 거북을 생각하곤 했다. 알을 낳고 수 많은 새끼들이 부화되어 바다를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들지만 그 중에 살아 남아 바다까지 가는 놈들은 몇 안된다.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그리고 선택한다. 이것이 바로 자연이 ‘최선’을 골라내는 방식이다. 운을 시험하고 필사적 노력을 시험하고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시험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실험은 성공하여 푸른 그곳, 삶의 본향인 푸른 바다에 닿게 된다.

나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여유고 삶이다. 나는 바쁘지 않다. 하루에 몇 시간은 책을 볼 수 있다. 나는 정신적 여행자다. 타임머신없이 과거로 가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짐도 싸지 않은 채 유럽과 록키 산맥 속을 헤맨다. 실리콘 벨리를 날아갔다 오고, 지중해의 한 도시에 머물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책을 보는 이유다. 그리하여 나는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한다’는 모순이 병존하는 매혹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지칠 때까지 일하지 않는다. 나는 늘 나나 가족 그리고 친구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다. 난 일에 대해 늘 ‘아니오’ 라고 말할 자세가 되어 있다. 일은 늘 내일 해도 좋은 것이다.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처럼 진행되기를 바란다. 일상은 안정과 규칙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유동적이고 포괄적이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나를 실험할 수 있다는것, 노동과 사생활을 잘 조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 등을 믿고 있다. 나는 나에 대한 자기 신뢰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를 예측할 수 있다. 자아를 관찰하는 법과 나를 달래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나를 친구로 데리고 노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현실과 상상을 섞어 놓았고, 하고 싶어, 하려고 한 것과 이미 한 것을 혼합했다. 왜냐하면 그것들 모두 이루어 졌든 이루어지지 않았든 모두 내 삶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이 꿈과 같다는 의미를 나는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과 비사실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나를 만들려고 했다. 나의 사십대는 이런 실험의 10년이었다.

똑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는 것은 지루한 것이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나는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인 지조차 잘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만지고 즐기고 싶었다. 그것은 환희와 전율 같은 것이었다. 노래와 춤으로 할 수 없는, 술로 취할 수 없는, 나만의 놀이를 찾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십 년 동안 내가 살아있었다고 느끼거나 생각한 시간 속의 점들을 모아 반짝이는 목걸이를 만들어 보려했다.

나는 내 개인의 역사 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그 순간들을 찾아 모아 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 인생이기 때문에. 나는 그 순간들 때문에 살아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들이야말로 바로 반짝이는 나였기 때문에.

어려움과 불쾌함과 절망은 별이 빛나는 밤의 장막이었다. 어둡기 때문에 별이 빛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둠은 어둠 자체로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다른 아름다움에 봉사하기 위한 시녀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짝이는 별들 사이에 숨어 있는 힘이며 절제며 겸손이었다. 성공한 아들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어머니였다. 나는 이 책 속에 또한 그 어둠을 담아오고 싶었다. 어둠은 잘 익은 포도알 같다. 보라가 짙어 검정이 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연한 보라색으로 시작한 것이 점점 짙어져 검은 색과 같아져 가는 멍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포도알이 되고 밤하늘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떫고 시큼한 것이 단 것이 되는 것을 보았고, 빛나던 것이 아무 것도 아닌 침묵과 어둠이 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밤처럼 검은 분노와 원망이 점점 옅어져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해가 떠오르고 다시 살아 나는 빛나는 아침을 보았다.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어느 날 자다 일어났는데, ‘바다’와 ‘물결’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나를 엄습했다. 그 전날 나는 해운대에 있었다. 한참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늘 그렇게 바다를 하염없이 보는 사람들이 있곤 했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바다는 참으로 많은 물결로 만들어져 있다. 물결은 바다의 생존을 알리는 어떤 표상이다. 문득 내가 저 많은 물결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은 만들어지고 그것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이다가 이내 사라지듯 다른 물결로 바뀌곤 한다. 저 한 순간의 존재, 그것이 바로 나였다. 나는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이내 다른 파도로 살아난다. 변화는 일상을 지배하는 원칙이다. 하루는 물결처럼 사라지고 다시 생성된다. 모든 하루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상징이다. 우리의 하루도 물결로 왔다 물결로 사라진다. 그러나 이 속절없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물결은 부침하지만 바다는 여전히 바다로 남는다. 변화와 질서는 바다와 물결처럼 공존한다. 자유와 구속, 방랑과 정착, 애정과 미움, 의미와 무의미 같은 것들은 늘 이런 존재 양식을 가지고 있다.

마흔 살은 이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마흔살은 긴 공연이나 경기의 인터미션이다. 전반전과 후반전 사이의 휴지기다. 쉬는 것 같지만 경기 못지 않게 긴장된 준비기다. 주인공들은 후반전을 위한 반전에 정교한 마지막 리허설을 준비하고, 준비한 모든 것을 무대 위에 펼치기 위한 마지막 점검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맡겨진 배역이 없다. 그들은 무대에서 내려와야한다. 더 이상 박수는 없다.
나는 내 마흔살 10년이 끝없는 광휘로 휩싸이는 것을 상상했다. 찬란한 눈부심 속에서 내 인생이 만개하는 것을 즐겼다. 나는 내가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 태양이 빛나고 나는 아득함과 밝은 광휘 속에서 오후를 즐겼다. 인생은 아름다웠다. 비로소 나는 내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IP *.229.146.40

프로필 이미지
2019.05.07 18:19:57 *.212.217.154

젊어서는 돈을 위해 젊음을 팔고,

나이들어서는 젊어지기위해 돈을 쓴다고 하지요.


이제 시작하는 저의 40대,

선생님의 말씀같이

이분법적 선택이 아닌,

모순적이지만 조화롭고

불가능해보이지만 현실적인

그런 10년을 시작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9.05.11 22:00:49 *.170.174.217

새로이 시작하는 10년!

그 찬란한 시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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