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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30일 09시 56분 등록
우리 속의 나, 삼성 에세이


한국의 대기업에서 1년 정도 근무한 한 외국인은 이 재벌 기업이 가지고 있는 유교적 가치관은 무늬만 그럴 뿐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연공서열, 집단적 조화등은 개인들이 자신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따져 사용하는 껍데기 명분이라는 것이다. 젊은 직원들 보다 나이든 직원들이 더 이런 생각에 긍정적인 이유는 그들이 더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신봉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런 명분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말로는 ‘우리’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나’가 우선적인 사회, 즉 공동체주의로 포장된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가 한국사회라는 소감이다.

왜곡과 편견이 있는 소견이다. 그러나 ‘우리 속의 나’라고 하는 관찰은 틀림없이 한국적 특성을 담고 있다. 한국적 특성의 가장 바람직한 발전 모델은 판소리의 노랫꾼이 자기를 실현해가는 과정과 비슷해야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판소리는 판이라고 하는 관중을 필요로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무대예술이다. 관객이 없으면 판이 이루어 지지 않는 노래다. 공연자는 소리꾼과 반주자인 고수 두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는 단출한 공연팀이다. 공연팀이 단출하다는 것은 굿판이 어디서나 쉽게 이루어 질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굿판이 아무데나 벌어질 수 있다고 하여 노랫꾼이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랫꾼들은 좋은 역량을 타고 나야 하며 오랜 기간의 수련을 통해 공력을 쌓아야 한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전문가 음악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알기 쉽고 좋아하는 장단구조와 노랫말 그리고 사설의 내용을 통해 가장 대중적인 음악으로 폭넓게 발전해 왔다.

서양음악에서는 가수가 노래를 부르면 청중은 숨을 죽이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판소리에서는 청중이 ‘얼씨구’, ‘좋다’등의 추임새로 흥을 돋아주지 않으면 판이 살아나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꼽는 판소리의 멋은 가슴에 와 닿는 이야기, 청중을 웃고 울리는 해학과 골계, 변화무쌍한 장단, 능청스러운 연기, 1인 연주와 1인 독창, 그리고 청중의 참여와 어울림등을 꼽는다.

한국의 판소리 음악에는 여러 가지 유파가 있다. 무슨 무슨, 혹은 누구누구의 ‘제’라고 하는 전통음악의 유파는 기본 골격은 같으면서 노랫꾼이나 지역에 따라 미세한 맛차이가 나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동일한 대본의 ‘춘향가’를 노래하더라도 그 소리와 맛의 감흥이 다르다. 판소리의 고장 전라도만 하더라도 섬진강을 경계로 하여 그 소리 맛이 다르다. 운봉, 구례, 순창 등 섬진강 동쪽 지역에서 유행하던 동편제는 웅혼하고 장쾌한 남성적 맛을 지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섬진강 서쪽의 광주, 나주, 보성, 강진등에서 널리 불리던 판소리는 서편제이며 애련하고 섬세하여 매우 여성적이다. 똑 같은 판소리지만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하여 서로 다른 이름을 얻게 되었다. 크게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작게는 개인적 특기가 가미되어 개성적인 명창들이 유파를 만들어 내었다. 판소리뿐 아니라 한국 음악의 개인적 유파의 예를 들라면 요즘 많이 유행하고 있는 가야금 산조도 예외가 아니다. 가야금 산조라는 하나의 틀 속에 최옥산류, 김죽파류, 김병호류, 함동정월류, 성금련류등 잡다한 유파가 병존하고 있다.

왜 한국의 음악에는 이렇게 지역적으로 개인적으로 유파가 많은 것일까 ? 서양음악은 박자하나를 놓쳐서도 안되고 음표하나를 고쳐서도 안된다. 서양음악은 작곡가의 의중과 감정을 표현해야 명연주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서양음악은 작곡자 위주의 음악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악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판소리는 대략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연주자와 노랫꾼에 따라 얼마든지 변용이 허용되며, 청중의 어울림에 따라 그 창법이 변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는 작곡자의 음악이 아니라 노랫꾼과 반주자의 음악이다. 개인이 어떤 스승을 만나 배우게 되었는지, 그리고 스스로 수련을 해 가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 낸 득음의 경지에 따라 무한한 가변성을 가지는 것이 바로 판소리다. 따라서 수없이 다른 맛을 가진 노랫꾼들이 생겨나고 그 밑에 다시 이를 배우기 위한 제자들이 추종하게 되고 이윽고 그들이 스스로 득음하여 또 다른 개인 유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노랫꾼 중심의 판소리는 판에 따라 그 즉흥성까지 더해져 판마다 그 버전이 달라지는 미세한 변곡과 변주가 가능한 음악이다. 나는 이것이 한국음악의 다양성이며 창조성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에 따라 동편제와 서편제로 갈라지고 스승에 따라 또 계보가 갈라지고 이윽고 자신이 커나가면서 스스로의 계보를 하나 더 만들어 나가는 이 증식성이 한국인의 개인주의적 방향과 목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공동체는 자궁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성장한다. 그리고 자신을 품어 준 집단의 탯줄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고, 실험하면서 그 집단을 빛내게 될 또 하나의 전문가로 성장해 간다. 그리하여 스스로 훌륭한 추종자를 보유하는 또 하나의 유파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 속의 나’가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을 가장 잘 활용한 경력 과정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한 기업 속의 작은 기업가가 되어 자신의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처럼 행동하다가 이윽고 때가 되면 자신의 기업을 차려 나오고, 모기업과 좋은 우호관계를 맺고, 훌륭한 동지와 파트너로서 관련 영역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비즈니스 클러스터를 만들어 가는 것은 기업에게나 개인에게나 훌륭한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나‘로 행동하는 한국인들이 위선적인 것은 아니다. ’나‘와 ’우리‘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서로 다가서게 하여 화해시키는 방법은 나와 우리의 공존, 나와 우리의 상생이라는 코드로 풀어 줄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립적이지만 소외되지 않고, 집단에 속하지만 갇히지 않는‘ 화해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이것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우리 속의 나‘라는 한국성의 건강한 발전 모습이다. 마치 판소리의 노랫꾼처럼 저마다 다양한 유파에서 비롯되지만 그 젖줄을 따라 스스로 조련하여 이윽고 자신만의 원숙한 노래 맛에 접근해 가야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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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06:11:01 *.139.108.199

우리다운것이란 무엇일까요?

그 외국인이 말한 가짜 유교는 정말 그들만의 오해였을까요?

그들이 가슴아프게 지적한 부분이, 우리들이 정말 고쳐가야하는 우리들의 상처가 아닐까요?

타인의 충고를 그져 문화의 몰이해로만 이해한다면,

정작 우리들이 지켜야 할 바른 문화를 고칠 수 있는 기회마져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마 그가 말했던 가짜 유교라는 부분은

우리사회에 잘못 뿌리내린 계급주의가 아닐런지요?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서열이 높아서 혹은 직급의 높 낮이로써.

모든 불합리를 합리화 시키는 개인주의.

그것은 본래 유교가 가지고있는 가치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겠지요.

다가오는 새해에는 이런 거짓된 가치를 벗겨내고,

본래 우리사회, 문화안에 숨겨져있던 진짜 가치를 

더욱 빛내고 발견할 수 있는

발전된 한 해 될수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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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6 12:09:37 *.212.217.154

우리만의 유교적(적이라 생각되는 잘못된 계급) 문화의 문제점과

그 한계,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런 한계에서 나오는 평등성.


이런 독특한 우리문화적 특성들 속에서

우리는 어떤 문화적 유산을 만들어 내어야 하는가?


그 고민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셨던 것은 아니실지.


딱 맞는 정답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그런 진심있는 고민들이 쌓여가면서

진실성 있는 시간이 더해져갈때,

우리는 결국 답에 가까이 갈 수 있겠지요.


그 근본적 질문을 멈추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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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0 20:45:16 *.133.4.111

선생님의 칼럼을 읽다보면, 쓰신 책들의 생각의 뿌리를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서 '코리아니티'가 이 글 속에서 보이네요. 

칼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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