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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3시 50분 등록
이른 아침 나를 기억하라 - 동아일보 9월 1일
틱 나트 한, 지혜의 나무, 2000

정장을 하고 타이를 맨 체 기차를 타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차창 밖으로 오후의 햇빛이 참으로 아름다운 가을 풍광을 만들어 낼 때는 더욱 그렇다. 기차는 아무 목적 없이 편한 복장으로 타는 것이 가장 좋다.

강의가 있어 광주로 가는 길이었으니 일로 가는 여행이었다.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기차를 타고 조금 흔들리며 그렇게 가고 싶었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따분한 것이니 늘 놀이처럼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 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기차 안에서 나는 이 책을 보았다. 보았다기 보다는 들고 있었고 만지고 있었다. 한 페이지를 읽고 한숨자고 다시 차창 밖의 풍광을 완상했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다. 함께 숨쉬는 책이다. 참으로 고운 책이라 '지금 이 순간 이곳'이 만져지고 느껴지게 하는 책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나무가 되게하고 그 뒤의 푸른 산이 되게하고 다시 그 위의 청명한 하늘이 되게하고 아름다운 뭉게 구름이 되게한다. 이 순간 살아 있음이 행복한 일이 되게한다.

저자인 틱 나트 한은 베트남의 승려이다. 그가 네 살 때 어머니는 장에서 과자를 사다 주셨다. 그는 항상 앞마당으로 나가 오랜 시간동안 과자 하나를 아주 조금씩 베어 먹었다. 과자를 한입 베어 먹고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그러다가 강아지를 발로 툭 쳐보고는 또 아주 조금 베어 먹었다.

그는 하늘과 땅, 대나무 숲, 고양이와 강아지, 꽃들과 함께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아무 걱정도 없었고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지도 않았고 과거를 후회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의 과자, 강아지, 숲, 고양이등 모든 만물과 함께 바로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

그가 고령이 된 지금은 네 살 쯤 된 다른 아이들의 손바닥 위에 오렌지 하나를 올려놓고 그 오렌지의 기원에 대해 명상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의 이끌음에 따라 이윽고 아이들은 손바닥 위의 오렌지 한 알 속에서 비를 맞고 햇빛을 받으며 만개한 꽃을 떠올린다. 꽃잎이 떨어지고 작은 초록색 열매가 매달린다. 햇빛이 그 작은 오렌지를 키운다. 누군가가 그것을 땄고 그 오렌지가 여기 손바닥 위에 있다.

아이들은 천천히 오렌지의 껍질을 벗긴다. 그리고 오렌지를 한 입 먹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콤한 과즙과 터지는 향기는 이렇게 지금을 행복하게 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평화협정이후에도 베트남 정부가 그의 귀국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냐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순간 이곳 우리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present'는 '현재'와 '선물'이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 현재는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는 우리에게 현재가 선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느끼게 해준다. 그것이 중요하다. 그는 인류에게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화를 내면 우리는 화가 된다. 사랑을 하면 우리는 사랑이 된다. 눈 덮힌 산을 보면 우리는 산이 된다. 이렇게 기차를 타고 가면 우리는 차창을 통해 내 무릎 위에 떨어지는 가을 햇빛이 된다. 숨을 쉬고 있는 나는 살아 있다. 그가 마음 속에 들어와 내가 되어 나즈막한 소리로 말한다.

"숨을 들이 쉬면 내 몸이 평온해진다. 숨을 내 쉬며 나는 미소를 짓는다" 서너 번 천천히 그렇게 숨을 쉬어 보았다. 아, 이 매혹적인 순간에 살아 있음의 경이로움이여.
IP *.208.140.138

프로필 이미지
2016.08.26 14:40:38 *.150.248.46

현재는 선물이다.

과거의 회한도,

미래의 걱정도 아닌

오늘의 선물을 즐기자.


프로필 이미지
2018.02.08 20:50:35 *.212.217.154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예전에 '화'란 그의 책을 사 보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떤 한 사람으로 굉장히 크게 속알이를 하고 있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그 책을 읽고 내 안의 화를 다스려볼 요량으로 책을 구입했더랬죠,

그일이 벌서 14,5년 전 일이네요!


그 후로, 여러 일을 겪으면서 참 묘하게도

그 사람과 꾀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인연이란 참 오묘합니다.

처음 인연이 끝 인연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닌 인연도 나중에 좋은 인연으로 엮일 수 있습니다.


오늘을 선물로 여기고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삶의 진한 국물맛을 맛볼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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