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6784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월간 에세이(1999. 6)-계절의 뒤끝에서
이제 5월이 막 시작했건만 봄은 벌써 지나 가려한다. 봄은 꽃이 예쁜 계절이다. 그래서 봄은 꽃처럼 짧다. 어떤 시인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여의도의 샛강을 따라 걷다 생각해 본다. 내 안에도 바깥으로 뱉지 않으면 안될 안타까운 것이 있는가? 나도 식물처럼 꽃으로 그것을 피워 낼 수 있는가? 예쁜 것을 보면 우리는 꽃과 같이 곱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것을 고운 것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변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며칠 전 아침에 처가 아파트의 정원 어느 나무 아래서 나를 불렀다.
작은 주목처럼 생긴 나무 가지의 끝에 연두 빛으로 새로운잎이 돋고 있었다. 작년에 남아 있던 짙은 초록 빛 침엽 끝 눈으로부터 돋아난 새 잎은 침엽답지 않게 보드라웠다. 처는 그 부드러움에 놀라고 있었다. 힘은 오히려 부드러움에서 온다.
벌써 사십의 중반을 넘어 이제 젊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마흔 댓 번 보았다는 뜻이다. 이제 보니 '춘추가 얼마나 되시나?' 는 표현은 시처럼 우아한 일상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보고 사는가? 나이의 의미는 그것이다.
사십이 넘어 스스로 닦아 갖추어야하는 덕성 중의 최고는 관용이다. 그리고 관용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샛강을 걸으며, 개미취가 자란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도 새로 올라와 의젓하게 서 있는 것도 보았다. 보라색 붓꽃이 약간 볼록한 둔덕 위에 피어 돋보인다.
서로 다른 작은 들꽃 들이 모여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다른 것 보다 못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모두 가슴 속 가득 '뱉어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연을 안고, 한 자락 진실을 붙들고 산다.
인간만이 쑥부쟁이로 태어나 벚꽃이 되지 못하는 것을 서러워한다. 혹은 이름도 없는 들풀로 태어나 사람이 가꾼 장미처럼 곱지 못한 것에 분개하고 좌절한다.
인간만이 자신이 무엇으로 세상을 태어났는 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신,사회가 무엇을 원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탈을 뒤집어쓰고 남이 되어 산다.
속은 곪아 터지는데, 그 아픔을 고운 꽃으로 피워내지 못한다.
노랑 들꽃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확신이 보인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분명하고 확고한 힘이 전해진다.
IP *.208.140.138
이제 5월이 막 시작했건만 봄은 벌써 지나 가려한다. 봄은 꽃이 예쁜 계절이다. 그래서 봄은 꽃처럼 짧다. 어떤 시인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이 피어난다'고 말한다.
여의도의 샛강을 따라 걷다 생각해 본다. 내 안에도 바깥으로 뱉지 않으면 안될 안타까운 것이 있는가? 나도 식물처럼 꽃으로 그것을 피워 낼 수 있는가? 예쁜 것을 보면 우리는 꽃과 같이 곱다고 한다. 고통스러운 것을 고운 것으로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변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며칠 전 아침에 처가 아파트의 정원 어느 나무 아래서 나를 불렀다.
작은 주목처럼 생긴 나무 가지의 끝에 연두 빛으로 새로운잎이 돋고 있었다. 작년에 남아 있던 짙은 초록 빛 침엽 끝 눈으로부터 돋아난 새 잎은 침엽답지 않게 보드라웠다. 처는 그 부드러움에 놀라고 있었다. 힘은 오히려 부드러움에서 온다.
벌써 사십의 중반을 넘어 이제 젊다고 할 수 없게 되었다. 봄에 꽃이 피는 것을 마흔 댓 번 보았다는 뜻이다. 이제 보니 '춘추가 얼마나 되시나?' 는 표현은 시처럼 우아한 일상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생을 살며 우리는 얼마나 많이 봄의 꽃과 가을의 열매를 보고 사는가? 나이의 의미는 그것이다.
사십이 넘어 스스로 닦아 갖추어야하는 덕성 중의 최고는 관용이다. 그리고 관용의 시작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다양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샛강을 걸으며, 개미취가 자란 것을 보았다. 쑥부쟁이도 새로 올라와 의젓하게 서 있는 것도 보았다. 보라색 붓꽃이 약간 볼록한 둔덕 위에 피어 돋보인다.
서로 다른 작은 들꽃 들이 모여 꿈이 되고 희망이 된다. 어느 것 하나 다른 것 보다 못나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모두 가슴 속 가득 '뱉어내지 않고는 못 견디는' 사연을 안고, 한 자락 진실을 붙들고 산다.
인간만이 쑥부쟁이로 태어나 벚꽃이 되지 못하는 것을 서러워한다. 혹은 이름도 없는 들풀로 태어나 사람이 가꾼 장미처럼 곱지 못한 것에 분개하고 좌절한다.
인간만이 자신이 무엇으로 세상을 태어났는 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대신,사회가 무엇을 원하는 지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탈을 뒤집어쓰고 남이 되어 산다.
속은 곪아 터지는데, 그 아픔을 고운 꽃으로 피워내지 못한다.
노랑 들꽃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확신이 보인다.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분명하고 확고한 힘이 전해진다.
댓글
3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43 | 년초에 세상의 변화를 엿보자 [2] | 구본형 | 2007.02.12 | 6752 |
542 | 사생활 키워줘야 기업도 큰다 [2] | 구본형 | 2002.12.25 | 6758 |
541 | 선수를 똑바로 보세요. 승리의 신화가 보일 테니 - HR 스코어카드 [2] | 구본형 | 2002.12.25 | 6758 |
540 | 부서의 벽 넘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3] | 구본형 | 2005.10.01 | 6760 |
539 | 모두가 승자되는 길 [3] | 구본형 | 2002.12.25 | 6762 |
538 |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이름을 찾아야한다 - 페이스 플로트킨에서 페이스 팝콘까지 [2] | 구본형 | 2002.12.25 | 6763 |
537 | 쟁취하지 말고 부드러운 혁명을 시도하라. [2] | 구본형 | 2002.12.25 | 6763 |
536 | 흑과 백 사이에는 여러가지 색이 있다 [3] | 구본형 | 2002.12.25 | 6765 |
535 |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푸른숲 [2] | 구본형 | 2002.12.25 | 6765 |
534 | 한 번의 미소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7] | 구본형 | 2006.06.23 | 6767 |
533 | 일, 여행, 그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3] | 구본형 | 2002.12.25 | 6773 |
532 | 직장 민주주의 실험 [2] | 구본형 | 2010.12.05 | 6773 |
531 | 건망증에 대하여 [3] | 구본형 | 2003.12.07 | 6774 |
530 | 내가 멈추고 돌아보는 이유, [4] | 구본형 | 2005.07.11 | 6774 |
529 | 인간은 건축을, 건축은 인간을 만든다 [2] | 구본형 | 2002.12.25 | 6778 |
528 | 한정된 자원을 통한 경제의 지속적 성장 [2] | 구본형 | 2002.12.25 | 6779 |
527 | 아름다운 비지니스 [2] | 구본형 | 2002.12.25 | 6779 |
526 | 이땅에 사는 나는 누구인가?(1999.1) [2] | 구본형 | 2002.12.25 | 6780 |
525 | 시간과 삶 그리고 경영 [2] | 구본형 | 2005.04.01 | 6780 |
» | 계절의 뒤끝에서(1999.6) [3] | 구본형 | 2002.12.25 | 67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