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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여행, 그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 도베, 2002년 2월호
여행은 자유로움이다. 사실은 자유로움을 향한 환상이다. 여행은 선술집이다. 그곳에 홀로 앉아 있는 나그네다. 술잔이며, 잔 속에 반쯤 담긴 술이다. 시장 골목 안에 있는 순대국집이고 왁자하게 떠드는 낯선 사람들이다. 떠도는 바랍이며, 그 바람 속의 추억이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온 고향이고 여인의 뒷모습이다.
나는 2년 전 20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1달 반 동안 여행을 떠났다. 남도의 바다를 훑으며 해안과 섬들을 넘나들었다. 배낭을 메고 하루 20킬로미터씩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20년 동안 내 속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조직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버리려고 했다.
오랜 조직 생활은 나를 철저한 조직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에 익숙해져있었다.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파트 주위를 더부룩한 얼굴로 산책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에 안심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인생에 대하여 유한한 책임 밖에 질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사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던져 벗어야할 헌 옷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던 그 젊은 방법 그대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여행 중의 메모를 모아 '떠남과 만남'이라는 책을 썼다. 그곳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어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어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은 또한 비장하지 않다.
여행처럼 설레이는 것은 없다. 지도처럼 매혹적인 것은 없다. 여행은 마음 속의 더 먼 변경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가장 작은 글씨를 손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으로 혹은 아주 순수한 하나의 꿈으로 그곳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
나를 찾아 떠난 내 일생의 가장 긴 내면의 모험을 마친 후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나는 그 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 적어도 내가 아닌 것들에 대한 동경과 미련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삶은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매순간 눈부신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가치들을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여가가 없었던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짧은 휴가조차도 전투처럼 치루어야 하는 몸에 밴 조급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일 - 그것도 스스로 택한 일이 아니라 지시 받고 명령받은 일- 을 처리하느라고 대부분을 보낸 인생이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아 있는 날들을 잘 쓰고 싶었다. 나는 인생을 전략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의 자기 경영 수칙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소개해 보자.
첫 번째는 우선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늘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자유의 양을 늘이는 것과 같다. 자유시간은 무엇을 위해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시간이다. 바로 내 마음대로 쓰는 나의 인생이다. 얼마나 자유로운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배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비례한다.
자유시간을 늘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쓸데없는 약속을 줄이는 것이다. 쓸데없는 약속에 끌려 다니는 가장 큰 원인은 '혼자 자신을 위해 즐길만한 놀이'를 가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바로 놀이다. 산에 가고 가끔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놀이다. 자신이 즐겨하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윤택하게 해 준다.
쓸데없는 약속을 줄이는 요령이 있다. 마음이 가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대안을 찿아라. 전화나 e-mail 로 대신할 수 있는 지 알아내라. 카드나 꽃다발로 가능한지도 알아내라. 만나는 것 보다 더 좋은 만남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 몇 개를 터득하라. 그리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식을 알아내라.
나는 원고 청탁을 많이 받는다. 우선 급하게 써달라는 원고는 거절한다. 원고를 쓰게되는 시점은 대개 원고마감일 며칠전일 때가 70% 이상 되지만 넉넉한 기간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게 되면 1/3 정도는 준다. 약간의 긴 호흡이 원고 속에 알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시간을 별도로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의 2/3 내외는 일에 쓰게된다. 일이 지겹거나 의미와 보람을 찾기 어려우면 깨어있는 2/3의 인생이 날아가게 된다. 일은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나 출세와 성공의 수단만은 아니다. 일이란 전체적 인생 설계의 일부인 것이다.
그 동안 개인은 계층구조에 종속된 부속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인생 창업가로서 스스로 전략적 설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이라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다.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가능하려면 '놀이정신'을 일 속에 부어 넣을 수 있어야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일 속에 채워 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향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 속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을 크게 확장하는 것이 좋다. 전화하고, e-mail을 보내고 직접 사람을 만나 자신의 직무에 대한 피이드 백을 듣고, 고객의 입장을 반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작업의 양을 늘이면, 지금하고 있는 지루한 서류작업이 재미있어 진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 만일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라. 성과도 있고 자신도 즐기게 된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또 어떤 사람은 구경꾼들에게 떡을 팔고 마실 것을 팔기 위해 이 축제에 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으로 이 축제에 참석했다. 그들만이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마음이 기뻐하는 대로 가면 인간은 타락하지 않는다. 돈 몇 푼에 자신을 팔지도 않을 것이고, 약한 사람을 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어 두고 학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만이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들만이 사회를 밝게 할 수 있다.
인생은 여행과 같고 우리는 나그네들이다. 그래서 '떠남과 만남'에서 다시 이렇게 썼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식기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의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햇빛을 쏘이며 바다가를 걷는 것이다. 다른 사람 속으로 파도처럼 들어 갈 수 도 있다. 아아, 파도 처럼 하나의 물결에 다시 또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일을 즐기면 인생의 대부분을 즐기는 셈이다. 거기에 여가를 즐길 수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인생을 즐긴 셈이다. 세상에는 '부유한 노예'와 '성공한 실패자'들도 많다. 돈이 그대를 괴롭히면, 돈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이 좋다. 내가 아는 돈은 쫓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일에 놀이처럼 빠진 사람들에게 제 발로 찾아가는 것이 바로 돈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모두가 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 중에 못 먹어 굶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 하나는 어떤 기업의 박물관에서 근무한다. 그는 그 일을 즐긴다. 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 속에서 책을 읽고, 묵직하고 조용한 방안의 침묵과 창가로 비치는 햇빛을 즐긴다. 한문을 배우고, 오래된 고서와 고미술을 감정하고 감상한다. 그것이 그의 오랜 동안의 인생이었는데 ,그는 아주 잘 어울린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데, 이 사람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술을 좋아하고 유쾌하고 선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넉넉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는 30분 정도 얕은 산을 걸어 넘어 출근하고, 일주일에 2번 정도 단소를 배우고 또 몇 번은 몇 킬로미터씩 달린다.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도 이 선생님을 찾아온다. 그래서 좋은 선생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어떤 때 그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학교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그 아이들 속에서 찾아낸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은 결국 자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또 최근에 어떤 사람이 낸 책에 발문을 써 준 적이 있는데, 이 분도 재미있는 삶을 사는 분인 듯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서 밭을 일구고, 꿀벌을 치고 민박집을 운영한다. 그리고 수묵화를 그린다. 이런 삶 또한 도대체 어떻단 말인가 ? 서울을 떠나지 못할 수많은 이유들은 떠남으로써 결국 아무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살다 힘들면 인생의 다른 밝은 면을 쳐다보는 것이 좋다. 여행은 늘 내면의 빛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물리적 장소를 바꾸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잠시 나만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여행은 잠시 소파에 누워 자는 것이다. 여행은 잠시 설거지를 멈추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모짜르트를 듣는 것이다. 그것은 잠시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기를 읽고, 만년필에 새 잉크를 넣어 '2002년 1월 15일 맑음'이라고 추가하는 것이다.
여행은 마음으로 하여금 공간과 시간을 넘어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정신을 풀어놓고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다.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고 무리와 대세로부터 한 걸음 옆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또 나를 보는 것이다. 이 객관성을 구경꾼의 마음이라 부른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참담한 집착과 교활한 모습을 발견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세상으로 들어가 하루하루를 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행은 그래서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
오늘은 노는 날이다. 이 말이 그 동안 그대를 얼마나 편하게 해 주었는가 ? 이제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노는 날이다. 오늘은 늘 노는 날이다. 일 보다 더 좋은 놀이가 있겠는가 ? 일은 어른들이 매일 놀기 위해 고안해 낸 놀이다. 여럿이 모여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놓고, 약간의 심리전을 벌리고, 짐짓 화를 내고,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미워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놀이터 - 바로 그 곳에 가기 위해 그대들은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고 혹은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놀이터에 웃음이 없으면 안 된다. 일에 웃음을 넣어라. 조용하고 심각한 일터는 일사분란하게 일이 추진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은 일터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어서 나와 자신의 시간을 찾아가려 한다. 그래서 퇴근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여기게 된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먹기 위해 사는 인생을 만들고 만다.
마법사들이 쓰는 주문처럼 자신의 주문을 하나 만들어 쓰는 것도 좋다. 가난한 이혼녀가 식당 창가에 앉아 꾸물꾸물 써댄 글이 전 세계에 팔리고 팔려 이제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영화는 앞으로도 몇 개 더 시리즈로 나올 예정이다. 그녀가 갑부가 된 것은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속 깊이 들어 있는 그 주술의 원형을 찾아 그대 하루를 변형시킬 마음의 기원으로 만들어 보라.
탐욕스러운 상사의 엉덩이에 돼지꼬리를 하나 달아 줘라.
그래도 변함이 없으면 하나 더 달아 줘라.
착해지면 하나 떼어내라.
거친 말을 하면 입에 자물쇠를 채워줘라. 철커덕.
입술에 귀걸이처럼 자물쇠를 덜렁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도 아직 화가 나는가 ?
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마다 자물쇠가 막 덜컥거리며 그의 눈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도 ?
그대의 마음이 울적하면 몰디브의 해안으로 매직 카펫을 타고 날아가라
새처럼 산호바위에 앉아 파란 바다를 보고 와라.
주술조차 걸지 못할 만큼 마음이 피폐해 있으면 아주 먼 과거로 가라.
그대가 아직 행복했던 아주 작은 아이였던 때로.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그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늘, 그대 부디 오늘 눈부신 하루를 보내시길
IP *.208.140.138
- 도베, 2002년 2월호
여행은 자유로움이다. 사실은 자유로움을 향한 환상이다. 여행은 선술집이다. 그곳에 홀로 앉아 있는 나그네다. 술잔이며, 잔 속에 반쯤 담긴 술이다. 시장 골목 안에 있는 순대국집이고 왁자하게 떠드는 낯선 사람들이다. 떠도는 바랍이며, 그 바람 속의 추억이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온 고향이고 여인의 뒷모습이다.
나는 2년 전 20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1달 반 동안 여행을 떠났다. 남도의 바다를 훑으며 해안과 섬들을 넘나들었다. 배낭을 메고 하루 20킬로미터씩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20년 동안 내 속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조직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버리려고 했다.
오랜 조직 생활은 나를 철저한 조직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에 익숙해져있었다.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파트 주위를 더부룩한 얼굴로 산책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에 안심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인생에 대하여 유한한 책임 밖에 질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사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던져 벗어야할 헌 옷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던 그 젊은 방법 그대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여행 중의 메모를 모아 '떠남과 만남'이라는 책을 썼다. 그곳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어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어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은 또한 비장하지 않다.
여행처럼 설레이는 것은 없다. 지도처럼 매혹적인 것은 없다. 여행은 마음 속의 더 먼 변경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가장 작은 글씨를 손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으로 혹은 아주 순수한 하나의 꿈으로 그곳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
나를 찾아 떠난 내 일생의 가장 긴 내면의 모험을 마친 후 1년 반 정도가 지났다. 나는 그 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가 ? 적어도 내가 아닌 것들에 대한 동경과 미련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더욱 애착을 느끼게 되었다. 삶은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매순간 눈부신 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가치들을 믿고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동안 여가가 없었던 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짧은 휴가조차도 전투처럼 치루어야 하는 몸에 밴 조급성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일 - 그것도 스스로 택한 일이 아니라 지시 받고 명령받은 일- 을 처리하느라고 대부분을 보낸 인생이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만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남아 있는 날들을 잘 쓰고 싶었다. 나는 인생을 전략적으로 경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의 자기 경영 수칙을 만들어 지키고 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만 소개해 보자.
첫 번째는 우선 자기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의 양을 늘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자유의 양을 늘이는 것과 같다. 자유시간은 무엇을 위해 쉬는 시간이 아니다. 그 자체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런 시간이다. 바로 내 마음대로 쓰는 나의 인생이다. 얼마나 자유로운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배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에 비례한다.
자유시간을 늘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쓸데없는 약속을 줄이는 것이다. 쓸데없는 약속에 끌려 다니는 가장 큰 원인은 '혼자 자신을 위해 즐길만한 놀이'를 가지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나에게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바로 놀이다. 산에 가고 가끔 여행을 하는 것이 나의 놀이다. 자신이 즐겨하는 것을 찾아내게 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를 윤택하게 해 준다.
쓸데없는 약속을 줄이는 요령이 있다. 마음이 가면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대안을 찿아라. 전화나 e-mail 로 대신할 수 있는 지 알아내라. 카드나 꽃다발로 가능한지도 알아내라. 만나는 것 보다 더 좋은 만남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 몇 개를 터득하라. 그리고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식을 알아내라.
나는 원고 청탁을 많이 받는다. 우선 급하게 써달라는 원고는 거절한다. 원고를 쓰게되는 시점은 대개 원고마감일 며칠전일 때가 70% 이상 되지만 넉넉한 기간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게 되면 1/3 정도는 준다. 약간의 긴 호흡이 원고 속에 알 수 없는 차이를 만들어 낸다.
두 번째는 일을 즐기는 것이다. 일을 하는 사람이 자유로운 시간을 별도로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현실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의 2/3 내외는 일에 쓰게된다. 일이 지겹거나 의미와 보람을 찾기 어려우면 깨어있는 2/3의 인생이 날아가게 된다. 일은 단순히 생계의 수단이나 출세와 성공의 수단만은 아니다. 일이란 전체적 인생 설계의 일부인 것이다.
그 동안 개인은 계층구조에 종속된 부속물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인생 창업가로서 스스로 전략적 설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이라는 자각이 확산되고 있다. 일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어야 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이 가능하려면 '놀이정신'을 일 속에 부어 넣을 수 있어야한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일 속에 채워 넣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향적이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일 속에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는 대목을 크게 확장하는 것이 좋다. 전화하고, e-mail을 보내고 직접 사람을 만나 자신의 직무에 대한 피이드 백을 듣고, 고객의 입장을 반영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작업의 양을 늘이면, 지금하고 있는 지루한 서류작업이 재미있어 진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라. 만일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처리하라. 성과도 있고 자신도 즐기게 된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경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또 어떤 사람은 구경꾼들에게 떡을 팔고 마실 것을 팔기 위해 이 축제에 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경꾼으로 이 축제에 참석했다. 그들만이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마음이 기뻐하는 대로 가면 인간은 타락하지 않는다. 돈 몇 푼에 자신을 팔지도 않을 것이고, 약한 사람을 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어 두고 학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행복한 사람들만이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들만이 사회를 밝게 할 수 있다.
인생은 여행과 같고 우리는 나그네들이다. 그래서 '떠남과 만남'에서 다시 이렇게 썼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식기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의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햇빛을 쏘이며 바다가를 걷는 것이다. 다른 사람 속으로 파도처럼 들어 갈 수 도 있다. 아아, 파도 처럼 하나의 물결에 다시 또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 갈 수 있다.'
일을 즐기면 인생의 대부분을 즐기는 셈이다. 거기에 여가를 즐길 수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인생을 즐긴 셈이다. 세상에는 '부유한 노예'와 '성공한 실패자'들도 많다. 돈이 그대를 괴롭히면, 돈에서 조금 떨어지는 것이 좋다. 내가 아는 돈은 쫓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가지 않는다. 일에 놀이처럼 빠진 사람들에게 제 발로 찾아가는 것이 바로 돈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모두가 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 중에 못 먹어 굶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 하나는 어떤 기업의 박물관에서 근무한다. 그는 그 일을 즐긴다. 보수가 많지는 않지만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그 속에서 책을 읽고, 묵직하고 조용한 방안의 침묵과 창가로 비치는 햇빛을 즐긴다. 한문을 배우고, 오래된 고서와 고미술을 감정하고 감상한다. 그것이 그의 오랜 동안의 인생이었는데 ,그는 아주 잘 어울린다.
내가 아는 또 다른 사람이 있는 데, 이 사람은 고등학교 선생님이다. 술을 좋아하고 유쾌하고 선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가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넉넉하다고도 할 수 없다. 그는 30분 정도 얕은 산을 걸어 넘어 출근하고, 일주일에 2번 정도 단소를 배우고 또 몇 번은 몇 킬로미터씩 달린다.
아이들은 졸업을 하고도 이 선생님을 찾아온다. 그래서 좋은 선생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어떤 때 그는 아이들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학교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그 아이들 속에서 찾아낸다. 아이들에 대한 믿음은 결국 자신을 믿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는 또 최근에 어떤 사람이 낸 책에 발문을 써 준 적이 있는데, 이 분도 재미있는 삶을 사는 분인 듯했다. 서울을 떠나 강원도 산골에서 밭을 일구고, 꿀벌을 치고 민박집을 운영한다. 그리고 수묵화를 그린다. 이런 삶 또한 도대체 어떻단 말인가 ? 서울을 떠나지 못할 수많은 이유들은 떠남으로써 결국 아무 이유도 되지 못한다.
살다 힘들면 인생의 다른 밝은 면을 쳐다보는 것이 좋다. 여행은 늘 내면의 빛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물리적 장소를 바꾸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잠시 나만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여행은 잠시 소파에 누워 자는 것이다. 여행은 잠시 설거지를 멈추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모짜르트를 듣는 것이다. 그것은 잠시 거리를 산책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래된 일기를 읽고, 만년필에 새 잉크를 넣어 '2002년 1월 15일 맑음'이라고 추가하는 것이다.
여행은 마음으로 하여금 공간과 시간을 넘어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게 하는 것이다. 정신을 풀어놓고 마음을 열어 놓는 것이다.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고 무리와 대세로부터 한 걸음 옆으로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또 나를 보는 것이다. 이 객관성을 구경꾼의 마음이라 부른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참담한 집착과 교활한 모습을 발견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세상으로 들어가 하루하루를 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여행은 그래서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더 담아 올 수 있겠는가 ?
오늘은 노는 날이다. 이 말이 그 동안 그대를 얼마나 편하게 해 주었는가 ? 이제 이렇게 생각하라. 오늘은 노는 날이다. 오늘은 늘 노는 날이다. 일 보다 더 좋은 놀이가 있겠는가 ? 일은 어른들이 매일 놀기 위해 고안해 낸 놀이다. 여럿이 모여 회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놓고, 약간의 심리전을 벌리고, 짐짓 화를 내고, 때로는 냉정하게, 때로는 미워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놀이터 - 바로 그 곳에 가기 위해 그대들은 아침에 일어나 면도를 하고 혹은 화장을 하고 집을 나서는 것이다.
놀이터에 웃음이 없으면 안 된다. 일에 웃음을 넣어라. 조용하고 심각한 일터는 일사분란하게 일이 추진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은 일터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어서 나와 자신의 시간을 찾아가려 한다. 그래서 퇴근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여기게 된다. 놀이가 되지 못하는 일은 먹기 위해 사는 인생을 만들고 만다.
마법사들이 쓰는 주문처럼 자신의 주문을 하나 만들어 쓰는 것도 좋다. 가난한 이혼녀가 식당 창가에 앉아 꾸물꾸물 써댄 글이 전 세계에 팔리고 팔려 이제는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영화는 앞으로도 몇 개 더 시리즈로 나올 예정이다. 그녀가 갑부가 된 것은 스스로에게 주술을 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마음에 속 깊이 들어 있는 그 주술의 원형을 찾아 그대 하루를 변형시킬 마음의 기원으로 만들어 보라.
탐욕스러운 상사의 엉덩이에 돼지꼬리를 하나 달아 줘라.
그래도 변함이 없으면 하나 더 달아 줘라.
착해지면 하나 떼어내라.
거친 말을 하면 입에 자물쇠를 채워줘라. 철커덕.
입술에 귀걸이처럼 자물쇠를 덜렁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고도 아직 화가 나는가 ?
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마다 자물쇠가 막 덜컥거리며 그의 눈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데도 ?
그대의 마음이 울적하면 몰디브의 해안으로 매직 카펫을 타고 날아가라
새처럼 산호바위에 앉아 파란 바다를 보고 와라.
주술조차 걸지 못할 만큼 마음이 피폐해 있으면 아주 먼 과거로 가라.
그대가 아직 행복했던 아주 작은 아이였던 때로.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그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늘, 그대 부디 오늘 눈부신 하루를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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