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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가브리엘 마르께스, 민음사, 2007년 (월간중앙)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자서전이다. 700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서지만 그의 인생을 다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그는 정말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야기 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머니가 집을 팔러 가는 데 함께 가자고 했다’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와 함께 집을 팔기 위해 같이 갔던 2박 3일 간의 여행이 젊은 마르께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 사건부터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된 그 여행 말이다.
그 당시 그는 세르반테스를 위시한 에스파냐 황금시기의 독특한 시들을 암송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법과대학에서 덧없이 여섯 학기를 보낸 후 자퇴한 상태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스물 세 살이 되는 나이였다. 이미 병영기피자였고 두 번이나 임질에 걸린 건달이었고 매일 독하디 독한 싸구려 담배를 예순 가치나 겁도 없이 피워대는 인간이었다. 밤이 되면 아무데서나 잠을 잤고, 불학실한 미래와 혼돈이 가득 찬 삶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패거리와 함께 몰려다니며 3년 전부터 구상 중이던 잡지를 아무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배짱하나로 간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대책 없는 젊은이였다. 그는 이 여행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단 이틀 동안의 단출한 여행이 내게 결정적인 사건이 될 줄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다. 현재 정확히 일흔 다섯 살이 넘은 내가 작가로 살아오는 동안 아니 내 평생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 가운데 어머니를 따라나서기로 한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여행에서 그가 겪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알게 되었고 결심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재능을 감지했고 재능이 시키는 천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재능이란 사랑만큼 신비한 것이다. 그것은 돌연 그것이 아닌 것들을 버리게 하고 아무 보상 없이도 온 몸을 바치게 한다. 그는 이때 밥벌이에 지친 지지리 궁상인 평범함 청년에서 일대 도약을 이루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여행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해 보자. 집은 팔리지 않았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역에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더위였다. 그때 그는 느끼게 된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조바심이 그를 엄습했다. 그런 감정은 예전에도 몇 번 그를 덮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는 유독 ‘조바심’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리를 휩쓸었다.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서 시간이 되면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증오스럽지만 아주 존재감 있는 그 단어’가 그를 엄습했다. 그는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썼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별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월요일 아침 새벽 잔잔한 늪 지대의 상큼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때 그들은 배안에 있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
"글을 쓰고 있어요 “
그는 그날 밤 전쟁터에서 하는 맹세처럼 스스로에게 소설쓰기를 강요했다. 소설을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때 그의 마음은 릴케가 말했듯이 “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작가가 되었다.
그에게 그 날은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는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 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 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냄새 맡았고 자신을 그곳으로 밀어 붙였다. 마침내 그는 위대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소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내 삶에 관한 소설’ 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에게 ‘삶이란 한 사람이 살았던 삶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라고 믿고 있다.
마르께스는 순수문학을 한 사람이지만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노벨 문학상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남미문학의 최고의 작가들 중 하나라는 명예도 얻었다. 그는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일 년 내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일요일 같은 삶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쓸 때 쉬지 않는다. ‘손의 열기가 식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자신의 혁명을 원하는 사람은 이 붉은 표지의 책을 뒤적일 필요가 있다. 열정과 혁명은 그것을 점화할 어떤 우연한 불꽃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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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자서전이다. 700 페이지에 달하는 번역서지만 그의 인생을 다 이야기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그는 정말 이야기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마 이야기 하지 못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일 것이다.
‘어머니가 집을 팔러 가는 데 함께 가자고 했다’ 자서전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머니와 함께 집을 팔기 위해 같이 갔던 2박 3일 간의 여행이 젊은 마르께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그는 그 사건부터 말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운명이 바뀌게 된 그 여행 말이다.
그 당시 그는 세르반테스를 위시한 에스파냐 황금시기의 독특한 시들을 암송하는 것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법과대학에서 덧없이 여섯 학기를 보낸 후 자퇴한 상태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어댔다. 스물 세 살이 되는 나이였다. 이미 병영기피자였고 두 번이나 임질에 걸린 건달이었고 매일 독하디 독한 싸구려 담배를 예순 가치나 겁도 없이 피워대는 인간이었다. 밤이 되면 아무데서나 잠을 잤고, 불학실한 미래와 혼돈이 가득 찬 삶에도 아랑 곳 하지 않고 패거리와 함께 몰려다니며 3년 전부터 구상 중이던 잡지를 아무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오직 배짱하나로 간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대책 없는 젊은이였다. 그는 이 여행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단 이틀 동안의 단출한 여행이 내게 결정적인 사건이 될 줄은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나도 예측할 수 없던 일이었다. 현재 정확히 일흔 다섯 살이 넘은 내가 작가로 살아오는 동안 아니 내 평생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 가운데 어머니를 따라나서기로 한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 여행에서 그가 겪은 일은 무엇이었을까 ?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알게 되었고 결심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자신의 재능을 감지했고 재능이 시키는 천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재능이란 사랑만큼 신비한 것이다. 그것은 돌연 그것이 아닌 것들을 버리게 하고 아무 보상 없이도 온 몸을 바치게 한다. 그는 이때 밥벌이에 지친 지지리 궁상인 평범함 청년에서 일대 도약을 이루게 되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 여행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묘사해 보자. 집은 팔리지 않았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없는 역에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인정사정없는 더위였다. 그때 그는 느끼게 된다.
죽지 않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한다는 거부할 수 없는 조바심이 그를 엄습했다. 그런 감정은 예전에도 몇 번 그를 덮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에는 유독 ‘조바심’이라는 단어가 그의 머리를 휩쓸었다.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파괴하면서 시간이 되면 스스로 사라져 버리는, 증오스럽지만 아주 존재감 있는 그 단어’가 그를 엄습했다. 그는 어머니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썼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별 이야기를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월요일 아침 새벽 잔잔한 늪 지대의 상큼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때 그들은 배안에 있었다. 어머니가 그에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
"글을 쓰고 있어요 “
그는 그날 밤 전쟁터에서 하는 맹세처럼 스스로에게 소설쓰기를 강요했다. 소설을 쓸 것인가 죽을 것인가. 그때 그의 마음은 릴케가 말했듯이 “ 글을 쓰지 않고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글을 쓰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작가가 되었다.
그에게 그 날은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는 날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 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 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지 냄새 맡았고 자신을 그곳으로 밀어 붙였다. 마침내 그는 위대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자서전이라고 하지만 소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내 삶에 관한 소설’ 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그에게 ‘삶이란 한 사람이 살았던 삶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의 문제’라고 믿고 있다.
마르께스는 순수문학을 한 사람이지만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노벨 문학상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남미문학의 최고의 작가들 중 하나라는 명예도 얻었다. 그는 ‘소설이란 쓰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이 원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삶이 일 년 내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일요일 같은 삶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쓸 때 쉬지 않는다. ‘손의 열기가 식으면 안되니까’ 말이다. 자신의 혁명을 원하는 사람은 이 붉은 표지의 책을 뒤적일 필요가 있다. 열정과 혁명은 그것을 점화할 어떤 우연한 불꽃을 필요로 하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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