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7003
- 댓글 수 2
- 추천 수 0
좋은생각- 천리포 수목원, 2002 년 8월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식물에게 그렇듯 그들은 그곳에 무심한 채로 서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다른 곳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선, 가꾸지 않았지만 꽤 매력적인 정원 정도로 생각될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동물들의 시계를 벗어 놓고 식물들의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 가 볼 수 있었다.
후배 몇 사람들과 천리포 수목원을 찾아 간 것은 평일 오후였다. 땡볕이었지만 바람이 있어 서늘하고 너무도 환한 날이었다. 작은 방문패를 목에 걸고, 그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미 다 지고 가끔 뒤늦은 꽃 한두 송이를 달고 있는 목련들 사이로 수련이 가득한 연못가를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천히 걷다 다시 멈추어 섰다. 주위를 둘러보고, 물끄러미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좋다.. 우리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었고, 이상하게 시간은 멈추어선 듯했다. 잠시 나는 수목원 가득한 나무들과 어울려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무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 사라진 듯 했다.
갑자기 회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자는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 하지 않는 사람은 군자라 할 만하다하였다. 이것이 화이부동이다. 소인배들은 서로 잘 지내는 듯하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두루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동이불화 (同而不和)라 부른다. 어째서 내가 수목원의 나무를 보며 군자를 생각하게 되었는 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서로 잘 어울렸다. 나무들끼리 서로 어울렸을 뿐 아니라 바람과 하늘과 바다와 구름과 햇빛과 새, 그리고 호수와 그렇게 어울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침잠한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같이 있어도 아름답다. 그들은 태평하고, 여유롭고,느긋하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 우리처럼 바쁘지 않다. '마땅한 때', 즉 봄이 오면 잎을 내고 이윽고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자신이 어느 때 무엇을 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바쁘다. 그래서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어진 모처럼의 휴가도 일에 쫒기듯 바쁘게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휴가는 다른 현실과의 약속' 그리고 '휴식은 틈새로 보이는 빈 공간'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그리고 올해 휴가는 동물들의 분주함에서 식물들의 일상 속으로, 바로 또 다른 현실 속으로 침투해 보자. 아주 느리게 흐르는 식물 시간의 여울 속에 몸을 담그고 그 유유한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보자. 잠시 나무가 되자. 손가락에서 줄기가 나와 잎이 달리고 발에서 뿌리가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온몸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과 잎들에 뒤덮여, 눈을 감고 조용히 혼자 자신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아마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탓임을 알게 될 것이다.
IP *.229.146.6
그곳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시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식물에게 그렇듯 그들은 그곳에 무심한 채로 서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그곳은 다른 곳들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 선, 가꾸지 않았지만 꽤 매력적인 정원 정도로 생각될 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동물들의 시계를 벗어 놓고 식물들의 시간 속으로 잠시나마 들어 가 볼 수 있었다.
후배 몇 사람들과 천리포 수목원을 찾아 간 것은 평일 오후였다. 땡볕이었지만 바람이 있어 서늘하고 너무도 환한 날이었다. 작은 방문패를 목에 걸고, 그곳에서 자원 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의 뒤를 따라 나섰다. 이미 다 지고 가끔 뒤늦은 꽃 한두 송이를 달고 있는 목련들 사이로 수련이 가득한 연못가를 천천히 걸었다. 아주 천천히 걷다 다시 멈추어 섰다. 주위를 둘러보고, 물끄러미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실린 꽃향기가 좋다.. 우리들은 즐겁게 웃고 떠들었고, 이상하게 시간은 멈추어선 듯했다. 잠시 나는 수목원 가득한 나무들과 어울려 하나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나무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 사라진 듯 했다.
갑자기 회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공자는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 하지 않는 사람은 군자라 할 만하다하였다. 이것이 화이부동이다. 소인배들은 서로 잘 지내는 듯하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할 뿐, 두루 잘 어울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를 동이불화 (同而不和)라 부른다. 어째서 내가 수목원의 나무를 보며 군자를 생각하게 되었는 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태연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서로 잘 어울렸다. 나무들끼리 서로 어울렸을 뿐 아니라 바람과 하늘과 바다와 구름과 햇빛과 새, 그리고 호수와 그렇게 어울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된다. 아름다움은 침잠한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아름답고, 같이 있어도 아름답다. 그들은 태평하고, 여유롭고,느긋하다. 그들은 조급하지 않다. 우리처럼 바쁘지 않다. '마땅한 때', 즉 봄이 오면 잎을 내고 이윽고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자리에 열매를 맺는다. 자신이 어느 때 무엇을 해야하는 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매일 바쁘다. 그래서 서둘러야할 이유가 없어진 모처럼의 휴가도 일에 쫒기듯 바쁘게 보내야 직성이 풀린다. '휴가는 다른 현실과의 약속' 그리고 '휴식은 틈새로 보이는 빈 공간'이라는 말을 기억하자. 그리고 올해 휴가는 동물들의 분주함에서 식물들의 일상 속으로, 바로 또 다른 현실 속으로 침투해 보자. 아주 느리게 흐르는 식물 시간의 여울 속에 몸을 담그고 그 유유한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보자. 잠시 나무가 되자. 손가락에서 줄기가 나와 잎이 달리고 발에서 뿌리가 나와 땅 속으로 들어가며 이윽고 온몸에서 뻗어 나온 줄기들과 잎들에 뒤덮여, 눈을 감고 조용히 혼자 자신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아마 인간의 모든 불행은 혼자 조용히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탓임을 알게 될 것이다.
댓글
2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523 | 세상은 '가능성의 장(場)이다 [2] | 구본형 | 2002.12.25 | 7012 |
522 | 어느 때 변화가 가능한가 ? [2] | 구본형 | 2004.08.31 | 7012 |
521 | 가끔 며칠 굶어 보는 것에 대하여, [2] | 구본형 | 2004.06.06 | 7015 |
520 | 자기 설득(1999.겨울) [2] | 구본형 | 2002.12.25 | 7016 |
519 | 일에 대한 헌신과 개인의 행복 [3] | 구본형 | 2005.06.22 | 7017 |
518 | 투잡스 [2] | 구본형 | 2003.01.30 | 7020 |
517 | 가정과 회사 [2] | 구본형 | 2005.05.09 | 7021 |
516 | 커뮤니케이션의 비법 6 - 신뢰 [3] | 구본형 | 2006.12.26 | 7030 |
515 | 나는 살아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없다 [3] | 구본형 | 2002.12.25 | 7036 |
514 | 일, 여행, 그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3] | 구본형 | 2002.12.25 | 7036 |
513 | 발로 쓴다 -프리드리히 니체, 생각탐험 21 [2] | 구본형 | 2010.06.22 | 7037 |
512 | 직장 민주주의 실험 [2] | 구본형 | 2010.12.05 | 7039 |
511 | 우리가 서로 강력하게 협력할 수 있는 방법 [2] | 구본형 | 2006.05.08 | 7043 |
510 | 돈이 최선인 사회에서는 조지 소로스도 살기 어렵다 [3] | 구본형 | 2002.12.25 | 7045 |
509 |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하여 [4] | 구본형 | 2011.04.07 | 7045 |
508 | 불멸의 기업의 조건 [3] | 구본형 | 2011.05.13 | 7047 |
507 | 왜 변화의 경영에 실패하는가 ? [2] | 구본형 | 2007.02.12 | 7048 |
506 | 우리는 자신의 내면의 이름을 찾아야한다 - 페이스 플로트킨에서 페이스 팝콘까지 [2] | 구본형 | 2002.12.25 | 7055 |
505 | 헌신적인 반대자가 되라 [2] | 구본형 | 2002.12.25 | 7055 |
504 | 고정관념 벗기(1999.4) [2] | 구본형 | 2002.12.25 | 70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