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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7일 07시 34분 등록

  
   개가 죽었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그 개를 돌구라고 불렀다. 풍산견이고 백구인데 늠름한 수놈이었다. 간혹 먼 곳을 응시하는 놈을 볼 때는 멋진 기상이 엿보인다. 그 놈이 처음으로 울타리를 넘어 뒷문을 통해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밤새 산을 휘젓고 다니다 먼동이 튼 다음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음식을 끊고 앓더니 3일 만에 죽고 말았다.  나는 개의 눈을 감겨주었다. 서둘러 떠난 황황한 죽음이었다. 며칠이 지난 다음 나는 그 죽음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건강하게 잘 지냈고, 마지막 하고 싶고 뛰놀고 싶은대로 마음껏 노니다가 탈진하듯 오랜 고통없이 간 것이니 행복한 죽음이다.

  오래전에 써 두었던 글의 한 구절을 바꾸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 온전히 나를 바쳐 기쁘게 참여한 인생이었으니. 그러나 죽음을 오래 끌지 않을 것이다. 침대에서 오래있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치명적으로 아프기 시작하면 나는 스스로 먹지 않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그대는 억지로 먹이거나 영양분을 주사하지 말기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까지 사랑했기에, 이제 이것으로 되었기에. 그대를 위해 낯선 곳에서 불을 밝히고 미리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종종 사람들은 유서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마치 죽음이 삶의 끝인 것처럼. 그리고 가능하면 죽음을 삶에서 떼어 놓으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나는 유서를 삶의 마그나 카르타라고 부른다. 그것을 볼 때 마다 나는 아직 생명이 붙어있을 때,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낸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처럼 깊은 애정과 기쁨으로 말이다. 나는 그것을 볼 때 마다 내 마음을 괴롭히거나 우울하게 하는 일들이 참으로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삶은 스스로의 운명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이 우주적 일은 '이미 쓰여져' 있다. '연금술사'에서 코엘료는 노인의 입을 통해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에게 이것이 '마크툽' 이라고 일러둔다. 소설가는 귀엽게도 스피노자의 생각을 훔쳐와 자신의 소설 속 깨달음으로 만들었다. 그렇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미래 역시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미 고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살 것처럼 꿈을 꾸고, 내일 죽을 것처럼 지금을 즐겨 실천하라. 얼마나 좋은 철학인가 ! 이 모든 것의 끝에 죽음이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먼 곳의 등대처럼 삶의 길을 밝혀준다. 쓸데없이 어두운 탐욕과 게으름의 숲 속에서 뒹굴지 말라고 말이다.

내가 개인 대학원을 만든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매년 신입생을 열 명 남짓 뽑는다. 그리고 매년 4월이 되어 벚꽃이 피면, 첫 수업을 하게 된다. 그동안 졸업했던 모든 선배 연구원들도 첫수업에 참관한다. 이 자리에서 신입생들은 '자신의 죽음' 에 대하여 10분 정도 미리 준비된 원고를 낭송하게 된다. 말하자면 유서를 읽는 것이다. 우리들은 장례식에 참여한 조객이 되어 그 목소리를 듣는다. 읽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눈물짓는다. 삶은 결국 누구와 무엇을 하며 살았는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사람만이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봄에 거기 참석한 사람들은 또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유서를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이해하게 되었다.  봄이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일 때, 우리는 죽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새로운 삶은 언제 커다란 각성에 이르러 '유레카'를 외치게 하는가 ? 신기하게도 삶의 긴급함과 숙제로부터 잠시 평화로와졌을 때 깨달음은 찾아온다.  케쿨레는 꼬리를 물고 있는 뱀의 꿈을 꾸고 나서 벤젠이 둥근 고리를 풀어냈다. 리차드 파인만은 코넬 대학의 구내식당에서 접시가 돌아 가는 모습을 보고 양자역학에 대한 이론을 떠올렸다. 조앤 롤링은 맨체스터와 런던을 기차 여행하다가 헤리 포터의 캐릭터를 생각해 냈다. 그 후 모든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갔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모든 위대한 아이디어와 각성은 여유로운 시간의 산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가장 창조적일 때는 가장 비생산적일 때다. 그때 뮤즈는 신비로운 키스를 던져준다. 바쁜 사람들, 그들은 결코 연결되지 않는 것들이 연결되고,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조합되는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다. 바쁘지 않은 사람들만이 마음을 풀어 놓고 삶과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함은 삶의 여유이며 평화로운 물러섬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조급한 삶의 긴장감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객관적 관찰자가 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우아한 '그만두기'와 '생략하기'를 뜻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생활의 여백이다.  그러므로 종종 삶에서 물러나 고요히 삶의 필요들을 물리치고, 우아한 버림과 생략을 떠올려 지금 가진 것들의 지나침을 부끄러워 해 보는 것도 적합한 우주적 조화를 모색하는 방법이다.

  애초에 기뻐하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우주의 기본이다. 그러나 사람은 이미 그럴 수 없으니 희로애락의 조화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자세다. 지금의 관점에서만 한 사건을 지켜 본다면 그 감정적 편중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러나 멀리 끝에서 지금을 조망한다면 지금의 들끓는 감정도 평안과 고요를 찾기 쉬울 것이다. 내 경우,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늘 나의 삶을 도와 주었다. 미래 때문에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덜어 주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므로 나는 미리 근심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러나 미리 쓰여 있듯, 우리집 개 돌구는 법정 스님이 입적한 날, 함께 죽었다. 스님은 내 마음의 속의 영웅이었는데, 가는 길이 쓸쓸하지 않도록 크고 멋진 흰 개가 동행하게 되어 다행이다.

IP *.160.3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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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10.04.17 10:24:04 *.253.6.153
컹컹하고 잘 짖는 녀석이었는데 다신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 없게 되었군요. 늦게나마 돌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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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4.17 14:04:25 *.67.223.107
돌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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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10.04.17 19:19:42 *.34.156.47
사부님 댁이 좋았던 것은 풍광도 풍광이려니와
듬직하면서 귀여운 돌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돌구야~ 돌구야~ 잘 가레이.
문득 백구 노래가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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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
2010.04.17 20:56:00 *.131.41.34
제가 이 글을 두번 읽었습니다.
처음 건너건너 읽었다가 다시 들어와
읽었습니다.
두번째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겨우 마흔을 넘겼는데,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 몇가지들이
어느 순간 신기하게도 변해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기들이 한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이게 된 것 하나.
다른 하나는 동물이라면, 살아있는 것들이라면 무엇이든지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곁에 가지도 못하고 무서워했던 제가...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
고양이 한마리를, 개 한마리라도 곁에 두어 볼까 싶은 맘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
혹여 어느날 그들이 목숨을 버리고 떠나버릴까봐 두려워서였습니다...

여전히 그 두려움은 제게 있고
아마 쉽게 떨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므로
나는 미리 근심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는 말씀에 큰 용기를 얻어 갑니다,

제게 가장 큰 병은 두려움입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다...
큰 스승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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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10.04.17 21:16:16 *.131.23.85
스님 돌구 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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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10.04.18 13:35:25 *.72.153.43
돌구의 명복을 빕니다.

일어날 일은 이미 쓰여진 일이라고 하니 삶이 밋밋하게 느껴지네요. 사부님은 그런 뜻으로 쓰신 게 아닐텐데 ... 그래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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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2010.04.19 03:08:04 *.29.105.130
자신의 유서를 읽으며 조금더 커져있을 연구원들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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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2 11:37:26 *.212.217.154

아, 그 돌구가 법정스님의 입적날 죽은것이었군요,

이것도 어찌보면 돌구의 운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법정스님과 함께 길을 떠날 운명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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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11:35:42 *.212.217.154

내 안에 쓰여진 미래,

그 길을 걸어갑니다.

이루어져야 할 일들이 이루어지듯,

그 길이 너무나도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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