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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6월 6일 15시 13분 등록
샘터-가끔 며칠 굶어 보는 것에 대하여, 2004, 4월호

작은아이와 함께 짧은 포도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주어진 기간 동안 포도만 먹는 것이지요. 단식을 하면 늘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주 조금만 먹고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너무 많이 먹었나 봅니다. 이 기간 중에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이 쓸데가 없습니다. 먹는 것을 단순하게 하면 이상하게도 일상의 다른 욕심들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진기한 물품을 가지고 싶다든가 좋은 옷을 입고 싶다든가 하는 생각들은 먹고 싶은 욕망에 밀려 어디론가 밀려나게 됩니다. 먹는 것은 그만큼 진지하고 강력한 본능입니다. 늘 아무 때나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게 합니다. 배가 고프면 무엇을 먹을까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약속한 정해진 기간동안 스스로 단식을 하게되면 먹는 것 생각만 하며 지내지는 않습니다. 그 동안의 너무도 철철 넘쳤던 낭비들을 버리고 조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자기 수련의 며칠을 가질 수 있게 해 줍니다.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며칠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가끔 내가 단식을 하는 이유입니다.

단식은 약간의 용기와 몇 가지 요령을 익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건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체중을 줄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모든 수련이 그렇듯이 단식의 기본 정신은 엄격함입니다. 정해진 기간 동안 허용된 것 외에는 다른 것은 절대 먹어서는 안된다는 것과 단식 이후 반드시 방만했던 식생활의 개혁이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과거보다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어디서나 변화의 모델은 비슷합니다. 우연한 계기가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위대한 개인적 결단에 이르게 하고, 그것을 실행하고, 이윽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지켜 가는 과정이 없이는 변화가 일상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갑자기 음식을 끊고 물과 포도만으로 며칠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상의 혁명인 셈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어 진 일상으로부터 여러 가지 압력을 받게 됩니다. 우선 배가 고프니까요. 이윽고 그 기간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새로운 원칙에 의한 새로운 식생활 즉 보식이 시작됩니다. 보식 기간이 끝나고도 그 식단을 계속 유지할 수 있다면 과거와는 다른 ‘소박한 식사’라는 원칙이 일상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지요. 단식이 개혁이라면 웰빙식단은 개혁의 일상화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식의 장점은 하루하루 가장 원초적인 욕망을 참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매순간 싸우고 있다는 현장감을 갖게 합니다. 이 박진감 있는 싸움이 체중의 감량이라는 가시적 성과를 통해 힘들지만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더하게 됩니다. 단식은 식생활의 개혁을 위한 드라마틱한 전환의 순간이라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보식의 과정을 통해 일상의 식단을 바꾸는 것이지요. 일상이 바뀌면 비로소 개혁이 정착된 것이지요. 그래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어떤 변화도 실천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가끔 단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를 꽤 특별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은둔자도 아니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늘 세상과의 적절한 거리와 간격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세상이라는 외부세계와 구별되는 나라고 하는 내면세계를 가지고 싶어 할 뿐입니다. 말하자면 세상이라는 넓고 넓은 대해 속에 떠 있는 나만의 세계라는 배를 타고 있는 셈입니다. 세상이 바다처럼 나를 받쳐주고, 나는 작은 배로 세상을 항해해 갑니다. 바람과 파도들이 종종 나를 흔듭니다. 위험하리만큼 흔들 때도 있습니다. 커다란 파도와 물결 속에서 곤두박질 치듯 내 배가 난파하게 될 지경에 이를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가 지나면 또 밝은 태양을 받으며 유유히 자신의 항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식기간은 내게 항구에서 지난 항해를 돌아 보게하는 짧은 휴식기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종교들이 금식일을 가지고 있는 이유와 흡사하기도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세상의 가장 큰 즐거움인데, 그 일을 잠시 그치고 삶을 관조하게 하니까요.

이 짧은 휴식이 끝나면 먹어 둘 것을 머리 속에 적어 두었습니다. 현미에 검은 콩, 수수그리고 보리를 조금 섞은 뜨거운 밥 반 공기쯤이 제일 먹고 싶습니다. 브로콜리와 싱싱한 야채에 들깨가루와 올리브유를 소싱한 샐러드 한 접시, 고구마와 가지 구은 것 한쪽, 그리고 심심한 된장에 듬뿍 들어간 우거지 조림을 먹고 싶습니다.

때때로의 결핍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큽니다. 그것은 희망을 가지게 하고 꿈을 꾸게 하며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IP *.229.14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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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2 11:20:28 *.123.13.88

한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단식'

이 글을 읽으니,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 같아요^^

언젠가는 꼭 한번 시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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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7 13:58:52 *.70.59.66

단식을 시도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 쯔음에서

위장과 관련하여 절식을 시작했었지요.

그동안 즐겨하던 야식을 끊고,

과식을 줄였습니다.


단식만큼의 드라마틱한 변화는 아니겠지만,

몸무게가 줄고 몸이 더 가벼운 느낌이 들었지요.


아직은 단식보다는 이런 절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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