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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2월 25일 13시 43분 등록
동아일보 - 2001년 4월 28일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주머니 속의 대장경 101)
호르헤 보르헤스 外 , 김홍근 역, 여시아문, 1998

깨달음을 뜻하는 그리이스어 알레테이야(aletheia)의 어원은 '촛불을 끈다'라는 뜻이다. 이 상해 보이는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하려면 9세기의 중국 선승 덕산과 용담의 유명한 예화를 기억하는 것이 좋다. 덕산은 금강경에 달통한 스님인데, 선승 용담을 찾아가 금강경을 강해했다. 용담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밤이 늦어 덕산이 쉬러가려는데 밖이 너무 어두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용담에게 등불을 청했고, 용담은 그에게 등불을 전해 주었다. 덕산이 받아들고 떠나려하자 용담이 그를 불러 세운 후 등불을 불어 꺼 버렸다. 망연히 어둠 속에 서있던 덕산은 어두움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된다. 그리고 깨우친다. 이성의 작은 촛불을 불어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작은 지식은 늘 큰 지식을 가리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보르헤스(Jorge L. Borges)는 아르헨티나인이다. 그는 만년에 이르러 지나친 독서로 실명하게된다. 그가 일부러 실명한 것은 아니지만 육체의 눈은 잃음으로써 마음의 눈은 더욱 밝아진 것 같아 보인다. 마치 촛불을 끈 것처럼. 오랜 동안 불교를 공부하며 그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으려고 했다. 그가 쓴 '불교 강의'는 아주 얇은 책이다. 그러나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풍부한 사례가 있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하고, 서양의 철학자들를 간간이 대비시켰지만 기름 낀 비계하나 없이 불교의 정수를 담아낸다. 과연 대가는 복잡할 수 없고, 어려울 수 없다는 것을 깨우치게 해 준다. 아무런 예비동작 없이 단번에 심장을 찔러낸다. 편역을 맡은 성천문화재단 김홍근의 보르헤스 소개도 친절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책 속에 기원전 2세기경 서북 인도를 지배했던 그리스의 왕 밀린다(메난드로스)와 인도의 학승 나가세나 사이의 문답이 나온다. 나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의 오묘한 관계에 대한 좋은 비유 하나를 얻었다. 왕이 학승에게 물었다. " 윤회가 사실이라면 죽은 자와 새로 태어난 자는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 " 학승이 반문했다. " 어릴 때의 그대와 지금의 그대는 같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 여기 등불이 있습니다. 이 등불은 밤새도록 탈 것입니다. 초저녁의 불꽃과 한 밤중의 불꽃은 같은 불꽃입니까 ? 아니면 다른 불꽃입니까 ? 같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죽은 자와 새로 태어난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지속되는 것입니다" 또 프루타크의 말도 나온다. "어제의 인간은 오늘의 인간 속에서 죽고, 오늘의 인간은 내일의 인간 속에서 죽는다" 신은 주기적으로 우주를 파괴하고 또 창조한다. 이것은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초파일이 가까워 오면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관용적이고 실천적인 종교와 만난다. 오직 자신과 진리만을 가지고 떠나는 길 - 언젠가 나도 정신의 광야에 서서 하늘의 별빛을 보게될 수 있으려나 ?
IP *.208.14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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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6 21:28:44 *.139.108.199

역설이 주는 진리의 맛.

다름과 다름 아닌것이 챗바퀴처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묘미.

그런 조화로음을 음미해볼수있는 여유.

잠시, 눈을감고 느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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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6 08:46:12 *.72.83.150

한번은, 촛불을 밝히면서 스스로가 최고라는 환상에 즐거워 하고,

하루는, 보잘것 없는 촛불을 끄고 세상천지 빛나는 수천억 별빛에 경이로워 하고,

이 두가지 일들을 자유룝게 왕례하며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자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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