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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9일 09시 49분 등록
빈곤의 종말, 제프리 삭스, 2006년 7월, 21세기북스
에코노믹 리뷰에 소개 (2006년 10월 25)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아도 괜찮을까 ? 이 책의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콜린 파월은 ‘테러와의 전쟁은 빈곤과의 전쟁과 단단히 결부되어 있다’ 고 말했다. 9.11 테러범들의 온상은 미국의 적대 국가가 아니라 결국 정치와 사회가 무너져 빈곤에 찌든 아프가니스탄이었다. 세계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은 2005년 4500억 달러를 군비에 지출 했다.

그러나 테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최빈국의 곤경을 돕는 데는 150억 달러를 썼다. 군비의 1/30에 불과한 돈을 평화에 투자했을 뿐이다. 저자는 부자들의 방치, 이것이 바로 인류의 1/6에 해당하는 10억의 인구가 절대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며 세계가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주장한다. 가장 부유한 나라라 할지라도 ‘세계적인 빈곤과 경제적 실패의 바다에서 안정과 번영을 누리는 섬’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절대적 빈곤에 처한 10억의 인구를 구하고, 하루 1-2 달러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도와 진보와 발전의 첫 번째 사다리를 오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 이 책은 경제학이 바로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한 실천적 경제학자의 프로젝트 보고서이며 빈곤의 종말을 겨냥한 제안이다. 이 책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장면을 대비시켜 볼 필요가 있다.

(장면 1)

폴란드 바르샤바의 소시지 가게에는 소시지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고기와 소시지를 사기 위해서 암시장을 헤매야했다. 아니면 텅 빈 가게 앞에서 원하는 상품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하루 종일 기다려야했다. 상품은 시장으로 나오지 않았다. 더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한 뒷거래를 위해 암시장으로 숨겨졌다. 실제로 쇠고기 1 키로 그램의 공식 가격은 폴란드 화폐로 1000 즐로티였다. 그러나 즐로티화는 심한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받고 있는 불안정한 화폐였다. 오직 운 좋은 사람들 일부 외에는 누구도 정해진 가격에 원하는 상품을 살 수 없었다. 즐로티화는 휴지처럼 되어갔다.

개혁이 절박했다. 당장 즐로티화를 안정시키고 상품 가격을 현실화 하는 것이 급했다. 쇠고기 1 kg은 1000 즐로티에서 5000 즐로티로 인상되었다. 무려 5배가 올랐다. 그러나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것 보다는 훨씬 싼 가격이었다. 즐로티화에 대한 안정화 기금이 조성되었고,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해소 되었다. 그러자 즐로티는 화폐로서의 기능을 되찾았다. 물건들이 다시 시장 속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개혁이 시작된 지 몇 주가 지나자 소시지 가게에는 하루 종일 소시지가 남아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언제고 원하는 물건을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개혁의 핵심은 인플레이션을 종식시키기 위해 즐로티화를 태환가능한 통화로 안정화 시키는 것이었고, 사적인 경제활동을 합법화시켜 자유화 하고, 사적 소유권을 인정하며 노인과 빈민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확충하고 다른 나라와의 연합과 유대를 위해 서유럽의 경제적 절차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자유화/세계화/안정화로 상징되는 이런 노력은 성공적인 변화를 만들어 냈다. 이윽고 폴란드는 2004년 5월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장면 2)

우리는 말라위의 수도에서 1 시간 쯤 떨어진 은탄디르 마을에 도착했다. 우리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젊은 남자들은 찾을 수 없었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죽었다. AIDS 가 마을을 휩쓸었고 마을 전체에 힘을 쓸 수 있는 남자는 겨우 다섯 명이 남았을 뿐이다.

한 할머니가 고아가 된 15명의 손자와 손녀를 돌보고 있었다. 오두막 옆에는 작물이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고, 토양은 황폐되었고, 병이 만연하고, 먹을 것은 없었다. 벌레가 먹고 반쯤 썩은 옥수수 몇 알갱이가 15명의 아이들이 먹을 그 날의 유일한 식사의 재료였다. 4살 짜리 아이 하나는 말라리아에 걸려 있었다. 그 전날 할머니는 손녀를 등에 업고 10여 킬로를 걸어 진료소에 도착했지만 키니네는 떨어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열이 펄펄나는 아이를 업고 되돌아와야 했다. 치료 받지 못하고 하루 이틀 지나면 이 아이는 곧 혼수 상태에 빠져 죽고 말 것이다. 해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이들이 이렇게 수 백만명씩 죽어 가고 있었다. 죽음은 저항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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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의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폴란드에서 성공한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좋은 방법일까 ? 아니다. 안정화/세계화/자유화의 카드를 가지고 말라위의 위기를 구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폴란드의 위기를 구하는 데는 효과적이었지만 말라위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라위가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음식과 약이다. 지금 그들은 부유한 나라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발전의 가장 아래쪽 사다리를 밟을 수 있는 원조와 도움이 지금 가장 절실한 위기 해소 방법인 것이다.

“심각한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도와 주어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의 내용이면 핵심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지나치게 이론적이었고, 냉정했고, 모호했고, 작동해야할 현장과 유리되어 있었다.

제프리 삭스는 이런 경제학을 비난했고, 증세에 따라 다른 진단과 처방이 가능한 임상 경제학 ( clinical economics) 을 주창하고 나섰다. 마치 의사가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즉각적으로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학자 역시 각기 그 증상에 따라 적합한 처방을 내려 실제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IMF가 이러한 특수한 경제적 질병에 대해 몇가지의 표준화된 권고안을 만병통치의 처방전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바로 한국의 경우도 적절치 못한 처방의 희생자였다. 1997년 당시 국제적 금융 질서의 왜곡에서 비롯된 한국의 외환위기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과정에서 IMF는 지나치게 가혹하고 부적절한 권고를 했다고 비판했던 대표적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저자인 제프리 삭스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 교수다. 하버드대를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하고 28세에 정교수가 되어 평생직장을 보장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갇히지 않았다. 어디고 빈곤이 사람의 목을 움켜지고 있는 곳에 나타났다.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초인플레이션의 볼리비아에 나타났고, 사회주의국가에서 서유럽의 자유시장 경제 속으로 편입되고 싶어하는 폴란드에 나타났고, 기아와 질병이 매일 목슴을 앗아가는 아프리카에 나타났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1954년생이다. 나와 동갑이다. 그의 얼굴을 보면 선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만년에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질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이 책을 보지 않았다면 반드시 봐야할 책이다. 한꺼번에 다 볼 필요도 없다. 그저 마음에 드는 곳을 펴서 한 덩어리씩 읽어도 좋다. 그리고 주머니에 있는 몇 푼의 돈을 꺼내 유니세프에 보내면 된다. 그러면 그 돈이 어떤 아이의 목숨을 살리는 결정적 돈이 될 것이다.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 한 마리를 다시 그 둥지에 올려놓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세상을 헛되이 살지 않은 것인지 모른다. 가을에 애를 써 꼭 읽을 만한 책이다.
IP *.116.3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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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수
2006.12.25 04:39:24 *.18.196.42
선생님 잘 들어가셨지요?
아마 늦은밤에 술한잔 더하셨을 텐데
끝까지 자리못해 죄송합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못다읽은 이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스스로가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옳은지를 밝힌 책이었습니다.

저에게 권한 두권의 책(포스트 모던 마케팅과 빈곤의 종말)이
너무나 대비되는 듯 했습니다.

하나는 인간의 겉만 생각하는 책이었다면
이 책은 인간의 속을 밝히는 책이었습니다.

성실한 리뷰로 선생님의 뜻에 보답하겠습니다.
좋은 책 감사드리며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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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훈
2006.12.26 06:46:04 *.173.139.94
잘 읽고 갑니다. 책 꼭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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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13 12:12:58 *.212.217.154

좋은책 한권 알아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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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09:46:44 *.241.242.156

제프리 삭스의 그 미소는 알지 못하지만,

선생님의 그 선하신 웃음은 많이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어디서나 그 아름다움을 감출수 없는가 봅니다.


삭스 못지않은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책이니

분명 읽을만한 가치가 있겠지요.

추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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