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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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다." 이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쾌락은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격렬하고 어두운 열정이라는 악마를 대동하지 않는다. 그의 쾌락은 온화한 형평 상태속의 평화로움 같은 것이다. 모든 건강한 위(胃)는 음식을 좋아한다. 그러나 탐식을 해서는 안된다. 그저 늘 적당히 먹는 상태를 유지하고 식욕이 왕성해 지는 것을 막으며 조용히 사는 것이 미덕이다. 에피쿠로스는 실제로 물과 빵만으로 주로 살았고, 잔치날에나 치즈를 조금 먹었을 뿐이다. 그에게 부와 명예는 무익하고 헛되다. 왜냐하면 만족할 수 있을 때 조차 인간을 불안하게 만들어 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쾌락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이 우정이라고 믿었다.
그에게 가장 특별한 점은 종교와 죽음에 대한 철학이다. 그에게 종교는 위안이 아니라 두려움의 근원이다. 그래서 현세의 삶을 평가하여 지옥에 처넣는 무서운 내세를 없애 버리고, 영혼은 육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해 버리는 유물론을 주장한다. 영혼도 물질이기 때문에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이것이 육체의 원자와 만나 연결될 때, 육체의 감각능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죽으면 영혼의 원자들은 육체의 원자와 연결될 수 없기 때문에 감각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죽은 육체는 감각하지 못하고, 감각하지 못하는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죽음이란 우리에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에피쿠로스가 죽은 지 200년이 지나 루크레티우스는 그의 철학을 시로 표현에 두었다. 그 속에서 그는 에피쿠로스를 자신의 위대한 스승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간의 생명이 땅에 엎드려
종교의 잔혹성 아래
무참히 짓밟혀 처참하게 부서지고
...........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야할 인간을 짓누를 때,
처음으로 한 그리스인이 용감히
종교에 맞서 도덕의 눈을 치켜떴네
분연히 일어나 종교에 도전한 최초의 인간이었네
그러나 인간의 본성 중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너무도 뿌리 깊은 것이고, 종교는 나약한 인간의 마음이 위안과 진무를 찾는 곳이었기 때문에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어려웠다. 그저 언제나 교양을 갖춘 소수인의 취향으로 남고 말았다. 그의 철학은 18세기 혁명의 시대, 프랑스 계몽철학자들이 그와 유사한 학설을 주장할 때 까지 대중의 망각 속에 묻혀있을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생각한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격렬한 자아몰입이며, 질주하는 감정의 폭발이라는 파괴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한,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하는 악의적 묘사인 듯하다. 나는 그를 쾌락주의자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사려깊은 삶의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추구한 유물론자 정도면 적절한 평가가 아닐까 한다. 평화로운 삶의 기쁨을 그리워 한다는 점에서 나는 그를 매우 소중한 생각의 동지로 받아들인다. 햇빛이 찬란하다. 오늘 내 삶도 작은 기쁨과 감탄으로 가득하고, 마음의 평화가 잠들기 전까지 떠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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