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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12일 06시 56분 등록
관자, 김필수 외 번역, 소나무, 2007년, 이코노믹 리뷰

나는 이 책을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그 동안 몇 군데서 ‘관자’를 출간하기도 했지만 86편 전체를 번역하여 내 놓은 것은 처음이다. 독자들은 10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의 두께에 주눅이 들어서는 안된다. 실제로는 별로 두꺼운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선 한자로 된 원문이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글자가 크기 때문에 이를 감안하면 대략 300-400 페이지 정도의 약간 볼륨이 있는 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두껍다고 여길지 모른다. 걱정마라. 그나마 1/3 이상은 가장 읽기 쉬운 대화체로 되어 있다. 더욱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는 별로 없다. 보면 금방 이해되는 아주 많은 사례로 꾸며져 있다.

그래도 책의 두께에 질릴까봐 빨리 몇 가지 단도직입적인 소개를 시도해 보자. ‘관자’는 중국 역사상 백미로 꼽히는 춘추전국 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인물 중의 하나인 관중(管仲)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관중은 춘추시대 제(齊)나라 사람이며, 공자보다 약 150년 전 사람이다. 관중이 제나라의 정치를 맡게 되자 보잘것없는 나라가 부유하게 되었고, 군대가 튼튼해졌으며, 백성들과 더불어 좋고 나쁜 것을 나누게 되었다.

결국 그를 등용한 제나라 환공(桓公)은 천하의 우두머리가 되어 제후들을 이끌었다. 삼국지 속에서 마치 신처럼 묘사되는 제갈공명의 모델에 되었던 사람이다. 가장 현대적인 사람이며, 가장 종합적인 사람이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관포지교’라는 고사를 통해 이미 이 인물에 대하여 조금은 알고 있다.

관중은 젊었을 때, 포숙(鮑叔)과 사귀었다. 그는 가난하여 늘 포숙을 속였지만 포숙은 그에게 잘 대해 주었고 속인 것을 따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현명함을 알아주었다. 관중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난했을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했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는 포숙을 위해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 벼슬길로 나갔으나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모자라는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다. 아직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가 세 번 다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모시던 공자 규(糾)가 왕권을 놓고 다투다 져서 죽었다. 함께 그를 모시던 소홀(召忽)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 따라 죽었다.

그러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작은 일로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포숙이 보좌하던 공자 소백(小白)이 왕위에 올라 환공이 되었다. 포숙은 환공에게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그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이 아름다운 일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 포숙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음을 더 찬미한다.

세월이 흘러 관중이 중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는데, 환공이 찾아와 관중이 불행한 일을 당하면 포숙에게 정사를 맡기는 것이 어떨지를 물었다. 관중이 대답했다.

“포숙은 군자입니다.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하더라도 정당하게 주는 것이 아니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사를 맡기기에는 적당치 않습니다. 그 성격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칩니다. 그래서 하나의 악을 보면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합니다.”

평생 포숙의 도움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뜻을 펼치게 되었지만, 정작 기회가 되어 포숙을 추천해야할 자리에서 관중은 포숙을 추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관중을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관중은 포숙이 그 자리와 지위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중은 ‘그 사람에게 맞는 적절한 자리’가 어디 인지 알고 있었고, 적합한 사람이 적합한 자리에 있지 못하면, 결국 개인은 몸을 망치고, 조직은 일을 망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관중은 이해관계에 밝은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공자는 그를 크게 칭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문인들이 관중을 ‘소인’이라고 부를 때는 공자는 크게 꾸짖었다. 먹고 사는 일에 있어 사람들이 관중의 덕을 본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상을 가진 정치가였으며 매우 종합적인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의 계보를 법가와 잡가로 분류한다. 법가를 기본으로 하되 그 속에 유가 도가 병가 음양가를 두루두루 섞어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관중이 기본적으로 정치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한 가지의 사상과 이론으로 나라는 통치되지 않는다. 폭넓은 이론이 받아들여진 정책이야 말로 실질적인 것이다. 법을 근간으로 하되 법에 머물러 각박해지는 것을 피하고 유가의 예의와 도덕의 중요성으로 현실로 인식하고 보완 했다.

관중의 가장 커다란 능력은 인물의 기용에서 오는데, 그는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큰 인물이었다. 설혹 도덕적 결함이 있더라도 능력이 있으면 적재적소에 기용하였다. 작은 이익 보다는 장기적으로 큰 이익을 위해 신뢰를 중시하였다. 이웃 나라와 한 약속은 설사 당장 손해가 있더라도 반드시 킴으로써 국제적 신뢰를 잃지 않았다.

유가와 달리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해 갔다. 주역이 변화의 책이며 수시변통의 변화를 중시했는데 관중의 국가 경영론 역시 현실 속에서 능란한 수시변통의 길을 걸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으나 설정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정한 상벌제도를 만들어 성과를 높이고, 시스템을 구축하여 언제나 주어진 프로세스와 제도에 따라 일사 분란하게 일상적 일과가 수행되도록 했다.

춘추시대의 거칠고 다이내믹한 환경 속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수행해야했고, 동시에 전쟁 지친 백성을 보살피고 다스려야 했던 정치가였기 때문에 그는 꿈과 현실, 이론과 실제, 부국과 부민, 냉정한 법과 인간의 예의와 도덕을 결합시키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융합에 성공한 가장 훌륭한 정치적 리더가 될 수 있었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꿰뚫어 보고 소신에 따라 실천하는 실행력을 갖춘 정치적 지도자였다는 점 때문이다.

이 책 ‘관자’에 대한 학설은 분분하다. 다 알 필요는 없다. 다만 관중이 관자의 저자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이 책은 관중이 직접 쓴 책이 아니며, 그의 제자들과 후대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기술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면 된다. 한나라 대에 이르러 유향이라는 사람이 당시 유포되었던 관자 564편을 모아 중복된 것을 정리하여 86편으로 편집하였다.

이 책 역시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에 의해 쓰여졌기 때문에 논리적 체계가 약하고 잡다한 편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관자’는 국가 경영에 대한 백과전서라고 불릴만하다. 매우 자세하고 정교하다.

이 책 ‘관자’는 제 1편 ‘목민’으로 부터 시작한다.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의 제목 역시 부민을 통한 부국을 지향한 관자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구입하여 서가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음미해 볼 만한 책이다.

IP *.116.34.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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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 12:23:02 *.212.217.154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진리를 고전이라 하겠지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실속에서,

변치않는것에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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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17:20:35 *.212.217.154

길을 잃을때

그 어둠을 밝혀주는 고전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겠지요.

그런 좋은 글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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