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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12일 15시 26분 등록
아주 유명한 보험 사기 사건, 2004년 11월 1일

얼마 전에 나는 생명보험 하나를 해약했다. 당연히 손해를 보았다. 납부한 돈의 극히 일부만 되돌려 받았으니 속이 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 생명이 보장받았다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해야했다.

그러니까 처음 1인 기업을 시작했을 때 나는 아무런 울타리도 없는 곳으로 나왔고, 나 혼자 벌어먹고 살아야 했다. 그 해가 저물고 있었는데 나는 불안해 졌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면 가족은 먹고사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죽으면 가족 역시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거액의 생명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이리저리 보험업에 종사하는 후배가 찾아오기도 하고 아는 친지가 찾아오기도 하여 내 보험의 구성은 복잡해졌다. 그래서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었다. 정리 과정에서 나는 이 생명 보험이 아무짝에 쓸모 없는 거의 소멸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장 해약했다. 유명한 사례 하나가 이 때 문득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1993년 플로리다주는 생명보험회사인 메트라이프(MetLife: Metropolitan Life)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메트라이프의 플로리다주 탐파 영업소 직원들이 고객에게 1,100만 달러에 해당하는 사기를 쳤다는 것이 조사의 이유였다. 사기를 당한 고객들은 수천 명의 간호사들이었다. 그들은 ‘그 어느 것보다 안전한 노후생활계획’이라는 보험회사 영업사원들의 말에 속아넘어갔다. 이들이 노후생활연금이라고 생각하고 가입한 것이 사실은 생명보험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객들을 우롱한 이 사건의 중심에는 릭 어소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회사에 입사한 지 3개월만에 영업소장으로 승진하였고, 탐파영업소를 메트라이프에서 가장 크고 수익을 많이 내는 영업소 중 하나로 성장시킨 주인공이었다. 어소가 이끈 탐파영업소는 1990년과 1991년 연달아 ‘최고판매상’을 받았다. 놀라운 실적과 성공 스토리로 인해 그는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메트라이프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어소의 굉장한 실적 뒤에는 더욱 놀라운 거짓이 숨겨져 있었다.

어소는 영업소의 실적을 높이려면 ‘종신생명보험 상품’을 많이 판매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종신생명보험은 생명보험과 저축보험을 결합한 성격의 상품이었지만, 저축성 보험이라기보다는 소멸성 생명보험에 가까웠다. 영업사원이 종신생명보험 상품을 판매하면 첫해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의 55%를 수당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연금보험의 판매 수당은 첫해에 고객이 내는 돈의 2%도 채 되지 않았다. 메트라이프 영업사원들은 높은 수당 때문에 이 보험을 집중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소는 또한 간호사들이 표적으로 삼기 쉬운 계층이라는 사실도 파악했다. 간호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죽음의 현장을 자주 목격하고, 노년에 편안하게 살기 위해 는 젊어서부터 경제적 안전장치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잡혀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어소는 간호사를 집중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 영업소 내에 ‘간호사 전담 영업팀’을 구성했다. 이 특수 영업팀은 플로리다주에서 일하는 간호사들뿐만 아니라 미국 37개주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종신생명보험을 마치 은퇴연금인 것처럼 속여 팔았다. 어소의 전략은 적중했고 보험 판매량은 날로 증가했다. 보험 판매에 따라 커미션을 받는 어소의 수입도 영업소의 매출 증가와 더불어 크게 증가했다. 1989년 그가 받은 커미션은 27만 달러였는데, 1993년에는 1백만 달러를 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와 어소 모두 행복했다.

그러나 어소와 탐파영업소의 교활한 판매 수법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1990년 텍사스 보험관리공단은 메트라이프에게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기행각을 그만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회사는 뛰어난 실적을 올리고 있는 담당자들에게 두 차례의 경고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넘어갔다. 1991년에는 메트라이트 자체 감사에서도 문제가 제기되었다. 감사부서에서 불법행위에 대해 경고를 내렸지만, 마케팅 부서에서는 탐파영업소가 회사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며 오히려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메트라이프와 탐파영업소는 관계 당국과 사내의 경고 목소리를 묵살하고 사기행각을 계속했다.

1993년 조사에 착수한 플로리다 보험관리당국은 메트라이프를 법률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리고 메트라이프에 벌금형을 부과하는 것 외에도 어소와 86명의 영업사원들을 사기판매행위로 고소했다. 보험관계당국은 ‘이번 사건은 한 두 명의 영업사원이 일부 고객들에게 사기를 친 행위가 아니라, 많은 영업사원들이 담합하여 생명보험 상품을 연금저축인 것처럼 속여 팔아 수많은 고객들을 우롱한 조직적인 사기행위’라고 말했다.

릭 어소는 해임됐고 탐파영업소는 문을 닫았다. 탐파영업소의 간부사원 7명과 상당수 영업사원들은 해고되었다. 메트라이프 최고경영진의 방관자적인 자세와 비윤리적인 판매를 종용해 온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계속 확대 됐다. 궁지에 몰린 메트라이프는 전사적인 차원에서 문제해결에 나서야 했다. 회사는 사내에 ‘윤리문제 해결부서’를 신설하고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직원 연수 및 모든 법적 문제를 본사가 관할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러나 매트라이프의 이러한 문제 해결 조치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보험회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나빠졌고,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규제는 강화됐다. 1994년 9월 통계자료에 따르면, 매트라이프의 개인고객에 대한 생명보험 상품판매는 전년 대비 25%가 떨어졌고,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다드 앤 푸어스(Standard & Poor's)는 메트라이프의 신용등급을 낮춰 버렸다.

1999년 8월 18일, 메트라이프는 이 사건에 대한 최종 재판에서 600만명에 달하는 보험 계약자들이 무료로 1년 ~ 5년 동안 생명보험 가입혜택을 볼 수 있도록 합의했고, 17억 달러를 물게 되었다.

물론 나는 사기를 당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보험 영업사원은 나를 도와 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을 추천하고 개인적 잇속을 챙겼다는 불쾌감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내 요구를 듣고, 나같이 덜렁거리는 고객을 위해 최선의 상품을 찾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나는 그와 평생 고객의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고, 고마워했을 것이고, 이 보험 회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마치 막 노랑 불이 켜진 사거리에서 느끼는 갈등을 겪게 된다. 노랑 불이 켜질 때 어디 있었느냐에 따라 설 수도 있고 건널 수도 있다. 노랑 불은 서야하는 경고지만, 노랑 불만 보면 오히려 질주하는 차량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노랑 불이 가속을 해야하는 사인이며, 빨리 통과하지 않으면 넋놓고 다음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는 경고며 강박관념인 셈이다. 그러나 노랑 불에 액셀레이터를 밟고 질주하다 보면 빨강 신호를 넘게 되는 경우가 온다. 그 때는 이미 후회하게 된다. 메트라이프는 결국 빨강 불에 사거리를 지나고 말았다.

어디에나 릭 어소 같은 인물들이 있게 마련이다. 성과에는 탁월하지만 좋은 기업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인물들, 이런 인물들이 늘 경영자를 시험한다. 윤리경영이란 단순히 한 회사가 윤리 위원회를 가지고 있거나 윤리 강령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릭 어소같은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단기적 성과와 현실적 기여 속에서 윤리적 위험을 읽어 내고, 그 방식을 거부하는 수동적 방어 뿐 아니라, 고객에게 도움을 주는 적합한 방식이 아니면 택하지 않는다는 적극성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적극성 때문에 윤리경영은 ‘적법경영’을 넘어 한 기업이 본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훌륭한 시민 기업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 메트라이프의 사례는 '피말리는 마케팅'에 수록된 것이며, 홍승완님이 정리해 놓은 것을 사용하였습니다.
IP *.229.14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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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2004.12.01 04:34:38 *.123.83.226
안녕하세요? 구본형 선생님 감히 선생님이라 부릅니다.(소장님대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각자라 생각되기때문입니다. 얼마전 세종문화회관 컨벤셜홀에서 신간도 사서 읽고 장장3시간이상의 선생님 강연을 듣고 너무 좋은 시간을 저희 아내와 공유하였습니다. 저도 외국계생명보험에 다니는 한사람으로서 보험사기와같은 일에 대해 직업적 책임감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아 참! 강연회때 마지막 질문을 하려다 선생님께서 홈페이지에 남겨놓으라고 하셨죠? (질문) 내년 변화경영연구소 최초 연구원을 1년과정으로 모집하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시기와 채용방법및 그밖에 나온 사실이 있으면 알고 싶습니다. 관심이 많아서요? 우선 그날 말씀하신 것처럼 A4용지에 Me이야기를 쓰고있습니다만.........My E-Mail: kbglife@prudential.co.kr 김병규 애독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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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4.12.16 22:54:29 *.229.146.17
정리되는 대로 홈페이지를 통해 공고하려 합니다. me- story 는 잘 써 두도록 하세요. 기간을 정하여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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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7 20:24:20 *.212.217.154

첫 연구원 모집이 이 즈음이셨군요^^ 시간이 참 빠르게 가는것같습니다.

노란불에 선 차에 탄 사업가.

그의 마음이 꼭 남의 일 같지는 않네요^^

감사합니다, 좋은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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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16:05:41 *.32.9.56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어느 유명한 드라마의 이 구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리로써 다가옵니다.


돈을 따르지 않고

마땅함을 따를때,

부는 그 결과로써 보상받는것이겠지요.


새삼스럽게

다시한번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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